"루게릭병, 치료제보다 급한 것은… 적절한 돌봄·존엄 위하는 제도적 보완"

이슬비 기자 2024. 11. 11.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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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조선 명의 톡톡' 명의 인터뷰
'루게릭병 명의' 서울대병원 신경과 성정준 교수
눈을 떴다. 등이 너무 가렵다. 당장 긁고 싶다. 몸이 내 말을 듣지 않는다. 손은 물론 몸을 내 의지로 움직일 수 없다. 옆에 있는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고 싶지만, 목소리도 나오지 않는다. 또렷한 정신으로, 미친 듯이 가려운 감각을 느끼면서 그저 참아야 한다. 점점 호흡근마저 마비돼 가는 게 느껴진다. 숨쉬기 힘들다. 하지만 기도를 절개하고 싶진 않다. 호흡기에 의존하다간 기도에 가래가 끼거나 호흡기가 멈췄을 때, 꼼짝없이 질식으로 의식이 잠식해 가는 상황에 마주해야 한다. 무섭고, 두렵다.
정신은 또렷하지만, 의지대로 몸은 움직일 수 없는 루게릭병 환자 이야기다. 루게릭병은 운동신경 세포만 선택적으로 사멸하는, 신경 퇴행성 질환이다. 매년 400~500명의 환자가 발생하고, 현재 국내 약 2500명의 환자가 있다. 이들의 진단 후 평균 수명은 3~4년밖에 되지 않는다. 현재 루게릭병 치료 동향을 서울대병원 신경과 성정준 교수에게 물어봤다.
서울대병원 신경과 성정준 교수​가 루게릭 병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서울대 병원 제공
-루게릭병, 많이 들어봤지만 여전히 생소하다. 어떤 병인가?
"운동 신경세포만 선택적으로 사멸하는 질환이다. 운동 신경세포가 사멸하니 움직일 수 없게 된다. 서서히 팔다리가 쇠약해지고 위축되는 것을 시작으로, 병이 진행되면서 결국 호흡근까지 마비돼 수년 내에 사망에 이르는 치명적인 병이다."

-지금까지 밝혀진 루게릭병의 원인은?
"치매를 비롯한 신경 퇴행성 질환은 전부 원인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루게릭병도 마찬가지다. 매우 다양한 환경·유전적 요인이 합쳐져 발병하는 질환이다. 단지 환자 중 96%에서는 RNA 결합 단백질인 TDP-43 응집이 발견되긴 하는데, 이 자체가 병의 원인이라고 보기에는 아직 검증이 더 필요하다. 또 일관적으로 운동 신경의 지속적인 과흥분이 사멸을 촉진하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 때문에 걸프전에 참전했던 군인, 격렬하게 운동을 지속한 축구·야구 선수에게 일반인보단 호발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고 '운동을 많이 하면 루게릭병에 걸린다'고 단정할 순 없다. 유전에 대해서도 많이 궁금해 하는데, 루게릭병 환자가 자녀에게 루게릭병을 대물림할 확률은 10% 정도 된다. 유전자 이상에 의한 루게릭병은 약 30%다. 20% 정도는 우연히 발생한 산발형 루게릭병이다."

-'루 게릭' 선수, '스티븐 호킹' 박사 모두 젊은 시절 루게릭병을 진단받았다. 젊은 나이에 호발하나?
"아니다. 신경 퇴행성 질환이므로, 고령층 환자가 많다. 환자 평균 연령은 50대 후반이고, 가장 많이 발생하는 연령대는 60~70대다. 10%는 젊은 연령에서 발병한다. 이 경우 유전적 요인이 원인일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

-초기 의심 증상이 있나?
"누구든 겪을 수 있는 흔한 증상이라, 말하기 조심스럽다. 이런 증상이 나타나더라도 과도하게 걱정하진 않았으면 좋겠다. 손가락과 발가락에서 힘이 빠지고, 근육이 '움찔움찔' 튄다. 흔히 '쥐'라고 부르는 근육 경련이 자주 생긴다. 힘이 빠질 땐, 다시 좋아지지 않고 일관성 있게 힘이 빠진다. 특정 부위 근육이 마르기도 한다."

-운동 신경 퇴행성 질환인데, 성격 변화·인지 기능 저하 등도 나타난다던데?
"그렇다. 40~60% 그런 변화가 나타난다. 성격 변화·인지 기능 저하는 전두엽 치매 증상인데, 두 질환은 같은 종류의 질환 선상에서 고려된다. 두 질환이 같이 나타나기도 하고, 루게릭병이 먼저 나타났다가 전두엽 치매가 나타나기도 한다. 물론 반대도 가능하다. 대표적인 성격 변화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무기력증이 심화하는 것이다."

-루게릭병은 어떻게 진단되는가?
"코로나19처럼 딱 확인할 수 있는 검사가 있으면 좋겠지만, 그런 게 없다. 혼동되는 질환을 지워나가는 식으로 진단한다. 일차적으로 신경학적 진찰이 가장 중요하다. 운동 신경만 선택적으로 약화됐는지, 다른 신경계는 이상이 없는지 본다. 근전도 검사, MRI(자기공명영상) 검사, 혈액 검사 등으로 다른 병을 배제해 간다. 대표적으로 혼동되는 질환이 일명 디스크라고 알려진 추간판 탈출증이다. 루게릭병처럼 힘이 빠지는 증상이 나타나는데, 추간판 탈출증일 때는 추간판 내부 수핵이 탈출해 신경이 눌리는 게 원인이다. 이 외에도 뇌졸중, 말초 신경병, 근감소증 등 감별해야 하는 질환의 종류가 매우 많다."
서울대병원 신경과 성정준 교수​가 루게릭 병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서울대 병원 제공
-증상만 들었을 땐, 정형외과에 가는 환자가 많을 것 같다?
"루게릭병 환자의 진단이 늦어지는 이유다. 평균 진단 기간이 1년 이상이다. 여러 병원에 다니고, 다른 치료를 받다가 오는 환자가 많다. 중장년층 환자가 많다 보니 실제 추간판 탈출증도 있는 사람이 많아서, 수술을 받고도 호전이 안 돼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루게릭병으로 확인되는 사람도 있다. 이를 줄이기 위해 진단을 위한 바이오 마커, 검사 방법 등을 개발하고 있는데, 아직 확실한 것은 없다."

-완치가 불가능하다고 들었다. 어떻게 치료하나?
"진행을 늦추고 환자가 불편해하는 여러 가지 증상을 완화하는 치료가 주를 이룬다. 평균 생존 기간이 증상 발생 시점으로부터 3~4년인데, 아직은 수개월 정도밖에 연장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치료법을 찾고 있지만, 원인이 여러 가지라 오랜 시간이 걸릴 듯하다. 루게릭병은 무엇보다 제도가 고쳐져야 할 측면이 더 많다."

-어떤 제도 변화가 필요한가?
"루게릭병에 걸리면 점점 상·하지를 움직이지 못하고, 말을 하지 못하고, 삼키지 못하고 호흡근까지 약해져 숨도 쉬지 못하는 여러 장애가 중첩해서 나타난다. 의식과 정신은 멀쩡하다. 그러다 보니 24시간 전적인 돌봄이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나라 활동 지원사 제도를 보면 제대로 된 돌봄을 받기 어렵다. 먼저 활동 지원사는 약 1주일 매우 간단한 훈련과 교육을 받고 될 수 있다. 전문성이 부족하다. 이 활동 지원사마저 모든 질환의 급여가 같다 보니 루게릭병 같은 최중증·장애 환자는 기피한다. 루게릭병 환자는 기도가 절개돼 있어 인공호흡기를 챙겨야 하고, 위로 식사를 줘야 하는 등 같은 시간 내에 돌봐야 할 게 더 많다. 많은 환자 가족이 장애인 활동 지원 서비스를 받기 어려워, 직접 돌본다. 환자 대부분이 50~60대에 발병하다 보니 보통 20~30대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자녀가 돌봄에 뛰어들게 된다. 빈곤이 대물림될 수 있는 병이다. 얼마 전부터 가족이 활동 지원사 자격을 따고, 한 달 최대 400시간 정도의 활동 지원사 지원 비용을 가족에게 주는 지원이 일부에서 시작됐다. 다만 여전히 문제가 있는데, 가족 활동 지원을 하면 다른 활동 지원사는 부르지 못한다. 가족이 급한 약속이 있거나,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도 가족 활동 지원사로 활동하면 다른 활동 지원사를 부를 수 없다. 게다가 65세 이상일 때 루게릭병에 걸리면 활동 지원사 서비스는 못 받는다. 무조건 장기요양보험 제도로 이행된다. 장기요양보험은 요양보호사가 파견 나오는데, 하루 3~4시간밖에 지원되지 않는다. 장애 중증도에 따라 제공하는 돌봄 서비스가 달라야 하는데, 우리나라 제도는 너무 천편일률적이다. 또 루게릭병은 다학제 진료가 필요하다. 생존을 늘리는 데 가장 검증된 방법이다. 하지만 현재 루게릭병 환자는 다학제 치료를 받을 수 없다. 모든 과에서 다시 예약을 하고 오랜 시간 대기해 진료를 받고 있다."

-'스티븐 호킹' 박사는 루게릭병을 진단받고도 오래 살았다. 이유가 무엇인가?
"10%가 장기 생존한다. 아직 그 이유를 잘 모른다. 다만 나이 들어 발병했을 때 진행 속도가 빠르다. 병의 초기 진행 속도가 생존 기간을 좌우한다."

-조기 진단 후 초기 진행 속도를 늦추면 생존 기간도 길어질까?
"그렇다. 현재 나온 약물들의 공통적인 효과가 초기에 개입할수록 생존 기간이 늘어나는 것이다. 일찍 진단해서 빨리 약을 쓰는 게 바람직하다. 지금 우리나라에 나와 있는 진행 속도를 늦추는 약으로는 릴루졸, 에다라본 등이 있다. 줄기세포 치료제인 뉴로나타알주도 조건부 승인을 받아 사용이 가능하다. 이 중 생존 기간이 확실히 늘어난다고 확인된 약재는 릴루졸이다. 다만 에다라본, 뉴로나타알주 모두 초기 진행 속도를 늦추는 효과가 있고, 이 약제를 사용하면 생존 기간이 늘어날 것이라고 미뤄 짐작하고 있다."
서울대병원 신경과 성정준 교수​가 루게릭 병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서울대 병원 제공
-기억에 남는 환자가 있다면?
"기도 절개를 정말 원하지 않는 환자가 있었는데, 할 수 밖에 없던 사례가 기억이 난다. 호흡근이 약해져 숨을 못 쉬게 되면 호흡기를 달아야 하는데, 이때 환자 본인이 연명 치료를 결정할 수 있다. 이 환자는 더 이상 연명치료를 받지 않겠다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했고, 기도 절개는 원하지 않았다. 환자가 임종기에 접어들었을 때 두 의사 이상이 말기로 판단해야 연명 치료가 중단된다. 이 환자는 호흡 마비가 심해서 혼자 숨을 쉴 수 없지만, 팔다리 움직임이 약간 있었다. 완화의료팀은 말기라고 판단하지 않아 결국 환자가 원하지 않은 기도 절개를 할 수밖에 없었다."

-기도 절개를 하면 삶의 질이 많이 떨어지나?
"기도 절개를 하면 간병만 제대로 이뤄진다면 수명을 다 채울 수 있다. 다만 간병이 힘들고, 환자 본인의 삶의 질도 떨어진다. 많은 환자가 목이 졸려 사망에 이르기 직전까지 가는 경험을 두세 번 하다가 사망에 이른다. 자다가 가래가 기도를 막거나, 인공호흡기가 갑자기 멈추는 등으로 죽기 일보 직전까지 가다가 발견되면 살아나는 식이다. 그러다 보니 다른 나라는 존엄사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는 기도 절개율이 매우 높은 편이다."

-아직 밝혀질 게 많은 루게릭병 관련해, 두각을 보이는 연구가 있나?
"최근엔 유전자 이상이 있는 루게릭병에 한해서 유전자 치료제가 나오고 있다. 이 환자들은 완치까지는 아니더라도, 진행을 멈추는 게 가능하진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아직 원인을 모르는 루게릭병은 여러 약이 개발되고 있지만, 완치는 어려울 것으로 본다. 보통 약물은 한 가지 기전을 해결하는 걸 목표로 개발되는데, 루게릭병을 유발하는 메커니즘이 8~10가지나 돼 동시에 치료하는 물질이 나오기는 어렵다. 다만 삶의 질을 높이는 분야는 발달하고 있다. 최근에는 애플리케이션이 많이 발달해, 핸드폰으로도 눈의 움직임을 파악해 환자 의사를 확인할 수 있다. 많은 환자가 이용하고 있다."

-곧 국내 첫 루게릭요양병원이 완공된다. 어떻게 보는지?
"최중증 장애를 동시에 갖는 환자를 돌볼 수 있는 병원이 필요했다. 그런 의미에서 루게릭병 요양병원이 들어온 것은 좋지만, 현 의료 시스템에서 수익을 내기 어려워 유지가 될지 걱정이다. 잘 됐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루게릭병 환자에게 한마디.
"루게릭병만큼 힘든 병이 없다. 제도 변화와 치료제 개발을 위한 연구 지원 등으로 하루빨리 환자가 적절한 돌봄을 받고, 치료의 길도 열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서울대병원 신경과 성정준 교수​가 루게릭 병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서울대 병원 제공
성정준 교수는...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를 취득했다. 현재 서울대병원 신경과학교실 교수다. 루게릭병 환자가 좀 더 편안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을 지속해서 찾고 있다. 연구실에서는 세포유전자치료제를 개발하고, 진료실에서는 환자의 의사를 최우선으로 존중하며 치료한다. 다양한 학회 활동도 하고 있다. 현재 한국루게릭병연구협회·대한 루게릭병연구학회·대한퇴행성신경질환학회 회장이며, 세계분자신경퇴행학회 조직 위원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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