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자의 V토크] KB 황택의 "충성! 봄 배구 진출 명받았습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챔프전 직행이 목표입니다."
멋진 거수 경례를 선보인 '예비역 병장' 황택의(28)의 포부는 컸다. 군 복무를 갓 마치고 민간인이 됐지만, '수사불패(雖死不敗·죽을 순 있어도 지진 않는다)'의 상무 정신이 느껴졌다.
지난 시즌 최하위 KB손해보험은 올 시즌을 개막 5연패로 시작했다. 컵대회를 마친 뒤 미겔 리베라(스페인) 감독이 건강 문제로 사퇴했고, 마틴 블랑코 코치가 대행을 맡았지만 힘없이 무너졌다. 2년 전 FA(프리 에이전트)로 영입한 나경복이 상근 예비역 복무를 마치고 합류했지만, 연패가 길어졌다.
그런 KB손해보험이 1라운드 마지막 경기에서 첫 승을 거뒀다. 지난 9일 안방 의정부체육관에서 열린 경기에서 선두를 달리던 한국전력을 잡는 파란을 일으켰다. 개막 5연승을 거둔 한국전력은 한 세트도 따내지 못했다. 외국인 선수 엘리안이 빠진 걸 감안해도 KB의 완승이었다.
승리의 주역은 황택의였다. 지난 7일 국군체육부대(상무)에서 전역한 황택의는 이틀 만에 주전 세터로 나섰다. 그리고 빠르고 과감한 패스로 한전 블로커들을 따돌렸다. 안드레스 비예나와 나경복은 황택의의 토스를 받아 상대 코트를 폭격했다. 그 전까지 보기어려웠던 중앙후위(파이프) 공격도 나왔고, 미들블로커들을 활용한 속공도 빛을 발했다. 황택의의 합류로 KB손해보험은 완전체가 됐다.
KB손해보험 훈련장이 있는 수원에서 만난 황택의는 "팬들 앞에서 뛸 수 있어서 기뻤다. 기다려주신 분들을 위해 열심히 뛰었다"고 말했다. 그는 "늦은 나이에 입대했는데 시간이 길더라. 이제는 홀가분해진 마음"이라고 했다.
성균관대 2학년 때 프로에 뛰어든 황택의는 2016~17시즌 전체 1순위로 KB에 지명됐다. 입단 후 곧바로 주전을 차지하며 신인왕에 올랐다. V리그 최고 세터 한선수를 제치고 연봉킹에 오르기도 했고, 2021~22시즌엔 노우모리 케이타(말리)와 함께 KB손해보험을 창단 첫 챔피언결정전에 올려놓았다.
황택의는 지난해 5월 상무에 입대했다. 군 생활은 터닝포인트가 됐다. 배구계에선 "예전보다 철이 들었다"고 입을 모았다. 상무와 국가대표팀 주장을 맡으면서 책임감도 커졌다. 실력도 여전하다. 지난 9월 컵대회에선 임재영과 함께 맹활약하며 상무의 사상 첫 4강 진출을 이끌기도 했다.
황택의는 "어릴 때부터 주목받고, 배구만 하다 보니 성격이 예민해졌다. 상무에선 성적에 대한 스트레스를 덜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기분을 이해하지 못하는 편이었는데, 이제는 그런 노력을 하게 됐다. (상무가 있는)문경 공기도 좋았다"고 웃었다.
황택의는 입대 전까지 무릎과 허리가 자주 아팠다. 그래서 몸을 틀어서 올리는 백토스를 어려워하기도 했다. 이젠 아니다. 한국전력전을 앞두고 "아픈 데가 없다. 바로 경기에 들어가도 문제가 없다"고 한 황택의는 자신의 말대로 완벽한 경기력을 발휘했다.
말년 휴가를 나와 팀과 함께 훈련할 당시 황택의는 주로 B코트(후보 팀)에서 연습했다. 그렇지만 예전부터 손발을 맞춘 선수들이 많았다. 새로 팀에 합류한 나경복, 차영석도 대표팀에서 함께 뛴 적이 있다. 그래서인지 큰 어려움 없이 복귀전을 치렀다. 황택의는 "공격수들이 많이 도와줬다"고 했다.
황택의는 세터지만 득점력도 있다. 긴 팔을 살린 블로킹을 잘하고 강한 서브를 구사한다. 한국전력전에서도 블로킹 1개, 서브 에이스 2개를 기록했다. 최근 남자 배구에선 서브의 중요성이 커졌는데, KB는 나경복, 비예나, 황택의, 차영석 등 스파이크 서브를 구사하는 선수들이 즐비하다.
공격수 못잖은 서브를 구사하는 황택의는 "국가대표팀에서도 이사나예 라미레스(브라질) 감독이 네트는 맞추지 말되, 아웃되는 건 괜찮다고 해서 열심히 연습했다. 그러다 보니 점점 잘 들어갔다"며 "우리 팀 서브가 최하위였다. 요즘 배구는 서브가 중요하다. 나도 적극적으로 때리겠다"고 했다.
KB손해보험은 1라운드 승점 4점에 그치며 6위에 머물고 있다. 하지만 황택의는 포스트시즌 진출 이상을 꿈꾸고 있다. 그는 "우리 팀 구성원이 절대 다른 팀과 비교해서 실력으로 처지지 않는다. 선배들도 있지만 세터로서 공격수들을 적극적으로 이끌겠다. 앞만 보고 가면 챔프전까지 갈 수 있을 것"이라고 패기있게 말했다.
수원=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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