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윤제 "트럼프 원하는 것 파악, 줄 건 주고 받을 건 받아야" [트럼프 2기 시대]

박현주 2024. 11. 11.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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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무역을 강조하는 트럼프 당선으로 글로벌 교역량이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경제에 적신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으로 한국 정부의 대응이 바빠진 상황에서 국제경제학자인 조윤제 전 주미대사는 10일 인터뷰에서 "'미국 우선주의'라는 물줄기가 더욱 확고해졌다"며 이렇게 내다봤다. 워싱턴에서 2년간 '트럼프 1기'를 상대했던 조 전 대사는 "지난 30년간 한국의 경제성장을 담보했던 요인들이 더 위협받게 됐다"고 크게 우려했다.

또 대사 시절 두 차례 북·미 정상회담을 현장에서 조율했던 그는 "트럼프 1기의 외교안보 주요 인사들은 북한에 대한 불신이 굉장히 깊었다"며 "2기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김정은은 새 출구를 찾고자 할 것"이라며 "북·미 대화가 시작된다면 한국이 배제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인 2017년 10월부터 2019년 10월까지 주미대사를 지낸 조윤제 전 대사. 중앙포토

Q : 트럼프가 박빙이라던 선거에서 압승했다.
A : 2016년 대선과 이번 대선이 달랐던 건 미국민들이 트럼프 1기와 재판 과정을 통해 그를 속속들이 알게 됐는데도 다시 그를 선택했다는 점이다. 그 의미는 간단하지가 않다. 트럼프가 나아가겠다고 한 방향에 국민도 지지를 보낸 셈이다. 게다가 공화당은 차기 대통령을 배출했을 뿐 아니라 상원에 이어 하원까지 장악할 가능성이 커졌다. 트럼프의 색깔이 훨씬 강력해진 트럼프 2기를 보게 될 것이다.

Q : 트럼프가 나아갈 방향은.
A :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세계 평화, 자유, 다자 간 협력 등에 기초해 세계 질서를 주도했다. 그러나 트럼프는 다르다. 모든 사안을 이념과 가치가 아닌 '미국 우선주의'로 풀어나갈 전망이다. 다자주의도 미국이 필요할 때만 이용하는 개념이 될 것이다.

Q : 트럼프가 아니라면 달랐을까.
A : 아니다. 2010년대 중반 이후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의 기류가 이렇게 변해왔다. 조 바이든 행정부도 트럼프 1기 때 시작된 흐름을 바꿔놓지는 못했다.

Q : 한국의 대응 방향은.
A : 국제질서를 주도하는 미국의 구심력이 약화하면서 '각자도생'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미 외교의 공백을 뚫고 올라오려는 세력도 갈수록 늘고 있다. 한국 외교의 다변화가 필요한 때다. 브릭스(BRICS·중국, 러시아가 주도하는 경제협력체), 유럽연합(EU),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등 국가와 접점을 넓혀야 한다.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인 2017년 10월부터 2019년 10월까지 주미대사를 지낸 조윤제 전 대사. 중앙포토

Q : 트럼프가 이미 타결된 '한·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 재협상을 요구할 것이란 우려도 있다.
A : 트럼프의 스타일상 가능한 일이다. 만약 재협상 요구를 한국이 거부하면 다른 사안으로 압박을 넣을 가능성도 있다.

Q : 한·미 경제 협력에 어떤 변화가 있을까.
A : 지난 30년 동안 한국은 중국의 고속 성장과 자유무역 질서 덕분에 지속적인 성장세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트럼프의 당선으로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되고 글로벌 교역량이 위축될 것으로 보여 한국경제에는 적신호다. 또 주요 전략 산업 분야에서 미국에 대한 직접 투자를 요구하고, 이에 응하지 않으면 관세 등 다른 불이익을 줄 수도 있다. 바이든 행정부에서 등장한 이른바 '칩4'(한·미·일·대만 등 반도체 협력체) 등 미국을 중심으로 한 전략적 산업 협력은 오히려 강화될 수도 있다.

Q : 미·중 갈등은 더욱 격화될 텐데.
A : 그렇다. 한국 외교의 중추(backbone)인 한·미 동맹을 공고히 유지하는 동시에, 중국과 관계 관리도 필수다. '피크 차이나'(peak china·중국 경제가 고점을 찍고 하락할 것이란 전망)라는 말도 나오지만, 중국의 잠재력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미·중이 충돌보다는 협력하는 상황이 한국에게 훨씬 유리하다. 트럼프는 중국과 경제 외 다른 이슈에 대해선 '딜'(deal·협상)을 할 수 있다. 한국이 양국 간 협력을 유도하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9월 노스캐롤라이나에서 대선 유세를 하는 모습. AP=연합뉴스

Q : 트럼프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협상을 또 시도할까.
A : 공화당의 매파와 트럼프 1기 당시 국무부·국방부 주요 인사들은 북한에 대해 불신이 굉장히 깊었다. 2기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트럼프 개인은 '김정은을 비롯한 모든 이와 협상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강하고, 다른 사람들이 못한 일을 해냈다는 점을 과시하고 싶어하기에 협상을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Q : 김정은도 미국과 직접 협상을 노릴 텐데.
A : 김정은은 트럼프 2기에서 새 출구를 찾고자 할 것이다. 러시아의 지원이 얼마나 이어질지 장담할 수 없고, 중국은 불신하기 때문이다. 북·미 대화가 시작된다면 한국이 배제돼선 안 된다.

Q : 트럼프가 북한과 비핵화 협상이 아닌 군축 협상에도 응할까
A :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를 무너뜨릴 수 없기에 '군축'이라는 말을 적어도 공개적으로 쓰진 않을 것이다. 미국이 북한과 군축 협상에 응한다면 다른 국가의 핵무장을 막을 명분도 사라진다. 다만 미국 안보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 협상에 응할 수도 있다. 북한이 더 이상 핵능력을 고도화하지 않고 중장기적으로 핵을 포기(abandon)하기로 약속한다면 트럼프는 이를 일단 협상 승리로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2018년 6월 싱가포르에서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나 정상회담을 하는 모습. AFP=연합뉴스

Q : 북한이 파병까지 한 우크라이나 전황도 주목된다.
A : 트럼프는 '취임 후 24시간 안에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겠다'고 말했지만 그리 쉽게 마무리될 문제는 아니다.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줄이고, 가뜩이나 경제 상황이 어려운 유럽의 부담이 가중되면서 휴전을 위한 절충점을 찾게 될 전망이다. 전쟁이 끝나면 경제난을 타개하기 위한 방편으로 러시아에 파병하고 있는 김정은의 딜레마도 깊어질 것이다.

Q : 트럼프 취임 전 대미 외교 전략을 어떻게 짜야 할까.
A : 트럼프를 상대할 땐 그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해서 줄 건 주고 받을 건 받아야 한다. 손익계산서 내지는 대차대조표를 그리듯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트럼프의 여러 요구에 대해 수용 가능한 선을 미리 그어둬야 한다. 무엇보다 정상 간 관계가 중요하다. 때로는 참모진의 조언에도 아랑곳 않는 트럼프의 특성 상 정상 간 신뢰를 쌓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가능한 빠른 시일 내 정상회담이 이뤄지길 바란다.

윤석열 대통령이 10일 대통령실에서 열린 '대외여건 변화에 따른 긴급 경제·안보 점검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이날 회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 출범에 따른 경제 및 안보정책 변화와 영향을 점검하기 위해 열렸다. 연합뉴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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