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 철수" 대놓고 외친 그리넬, 트럼프 외교안보 1순위 [뉴트럼프 파워엘리트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2기 행정부 인사가 본격화하는 가운데 누가 외교·안보 분야를 이끌지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누가 국무장관과 국가안보보좌관을 맡느냐에 따라 대북 정책에 큰 변화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9일(현지시간) 소셜미디어(SNS)에 “행정부에 니키 헤일리 전 (주유엔)대사와 마이크 폼페이오 전 (국무)장관은 부르지 않을 것”이라며 외교·안보 분야에 인사가 진행되고 있음을 시사했다. 특히 트럼프가 발탁 배제 의사를 밝힌 두 사람이 과거 트럼프와 이견을 노출했던 적이 있어 이들에 대한 배제 선언은 '충성파'들로만 외교·안보 라인을 구축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선두주자는?…‘나의 책사’ 리처드 그리넬
현재 외교안보 분야의 수장 후보로는 리처드 그리넬 전 주독 미국대사, 로버트 오브라이언 전 국가안보보좌관 등이 우선적으로 거론된다. 더그 버검 노스다코타 주지사, 마르코 루비오·빌 해거티 상원의원도 국무장관 후보군에 들었다.
트럼프의 ‘충성파 기용’ 원칙을 적용할 경우 “동맹국이 안보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트럼프의 주장을 강력히 뒷받침해 온 그리넬 전 대사와 오브라이언 전 보좌관이 선두권에 나선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트럼프 스스로 “나의 책사”라고 부르며 주한미군 철수 등을 공개 언급한 그리넬 전 대사가 트럼프 2기의 외교·안보를 총괄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그리넬 “간단하다. 돈을 내면 된다”
지난 7월 그리넬은 공화당 전당대회가 열린 위스콘신 밀워키에서 진행된 외신기자클럽 브리핑에서 “트럼프 외교 기조는 동맹국 및 파트너국들이 제대로 된 비용 분담을 하는 것”이라며 “정당한 비용을 지불할 때 (동맹의) 역량이 강화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전 세계 (회원제)클럽 중 회비를 안 내고 시설을 쓸 수 있는 곳은 한 곳도 없다”며 “간단하다. 청구서에 대한 돈을 내면 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가 생각하는 동맹은 회비를 내야 미국의 ‘안보 서비스’를 제공받고, 회비를 내지 않으면 회원 자격이 박탈된다는 개념이란 설명이다. 앞서 그리넬은 지난 3월 팟캐스트에 출연해선 “전쟁을 피하고 싶다면 국무장관으로 ‘개XX’를 두는 게 낫다”며 “강한 국무장관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런 그를 두고 트럼프는 여러 차례 “위대한 파이터”라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주한미군 철수” 발언의 출발점
그리넬은 2020년 6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인터뷰에서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군을 철수할 계획을 갖고 있다”고 밝혀 파문을 일으켰다. 미국의 고위 관료 중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을 직접 언급한 이는 그가 처음이었다. 트럼프는 퇴임 이후인 2021년 11월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재임 중 가장 아쉬웠던 점’에 대해 “독일차에 관세를 제대로 부과하지 못한 일과 한국으로부터 방위비 분담금 50억 달러를 받아내지 못한 것”이라며 “백악관에 들어가서 마무리할 생각”이라고 답한 적이 있다.
그리넬은 트럼프가 중점을 두겠다는 두 가지 모두와 관련이 있다. 그는 주독 대사 부임 직후 “유럽 우파에 힘을 싣겠다”는 발언으로 내정 간섭 논란까지 일으키면서 독일 압박의 총대를 멨다. 독일이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의 2%를 써야 한다고 주장하며 주독 미군 3분의 1의 철수 방침을 통보한 역할도 그리넬의 몫이었다.
그런 그가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을 직접 언급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트럼프는 이번 대선 기간 중엔 한국을 ‘머니 머신(money machine·현금지급기, 계수기)’이라고 칭하며 “내가 대통령이었다면 한국은 연간 100억 달러(약 13조 3000억원)를 (분담금으로) 지불하고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마크 에스퍼 전 국방장관의 회고록 『신성한 맹세』엔 “트럼프가 분담금 협상 과정에서 주한미군 전면 철수를 주장하자, 폼페이오가 ‘두 번째 임기의 우선순위로 하자’고 제안해 막았다”는 대목이 나온다. 당시 트럼프를 설득했던 폼페이오는 2기 인사 대상에서 빠졌다.
“북한 핵무기는 현실…김정은 교체 원치 않는다”
북한 문제에 대한 그리넬의 인식도 주목된다. 그는 7월 PBS 인터뷰에선 “우리는 북한이 핵을 가지고 있다는 현실에 기반해 협상(deal)을 해야 한다”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반드시 ‘김정은이 교체돼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친 사람(madman)이 핵무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트럼프가 그곳(북한)으로 걸어가 김정은의 손을 잡고 눈을 마주치며 미국을 보호해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발언들 때문에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북한을 사실상의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고, 추가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 등을 막는 방식의 대북 접근을 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대선 직전에 나온 공화당의 정강에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언급이 없다. 대선 기간 트럼프는 “나는 핵무기를 많이 보유하고 있는 김정은과 잘 지냈다”며 “나는 (김정은에게) 양키스 야구 경기를 보러 갈 수 있다고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전향’한 충성파…인준 걸림돌도 제거
그리넬은 처음부터 트럼프를 맹목적으로 추종했던 인물은 아니다. 그는 2016년 트럼프가 처음으로 대선에 출마했을 때만 해도 트럼프를 “위험한 사람”으로 부르며 사실상 반(反)트럼프 진영에 섰다. 그러나 당내 경선에서 트럼프가 대선 후보에 오르자 폭스뉴스의 해설자로 변신해 친(親)트럼프로 전향했다. 과거 올렸던 트럼프에 대한 비판적 게시글은 모두 삭제했다.
독일에 대한 무역 및 국방비 증액을 추진하던 트럼프는 2018년 그리넬을 독일 주재 대사로 임명했고, 그는 부임 기간 내내 앙겔라 메르켈 당시 독일 총리와 마찰을 일으켰다. 트럼프는 그런 그를 2020년 국가정보국장 대행에 임명하며 신뢰를 확인했다.
그리넬은 3개월간의 대행 임무 후에는 발칸 반도 특사를 지냈는데, 이 기간 발칸 반도 지역 내 부동산과 무기 관련 사업에 관여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그리넬 등용을 위해 상원 인준이 부담될 수 있을 거란 관측도 있었지만, 이번 선거에서 공화당이 상원을 장악하면서 인준에 대한 부담은 사실상 사라진 상태다.
☞리처드 그리넬(Richard Grenell)
1966년 출생한 그리넬은 미주리 베반젤 대학을 졸업하고, 하버드대에서 행정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01~2008년 조지 W부시 대통령 시절 유엔주재 미국 대사관 대변인으로 근무하며 존 볼턴 전 국가안보보좌관을 포함한 4명의 미국 대사와 호흡을 맞추며 ‘최장수 미국대표부 대변인’으로 기록됐다. 이후 국제 전략 컨설팅 회사 ‘캐피털 미디어 파트너스’를 설립해 폭스뉴스 등에서 정치와 외교 안보 관련 논평을 맡았고, 2012년 대선 때는 밋 롬니 후보의 대변인을 지냈다.
트럼프 1기 때는 주독 미국대사와 국가정보국장 대행, 코소보 특사로 활동하며 확실한 '충성파'로 자리매김했고, 트럼프 퇴임 이후엔 트럼프 재선을 위한 외교·안보 정책을 주도했다. 그는 공화당 내에서 최고위 공직까지 오른 동성애자이기도 하다.
워싱턴=강태화 특파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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