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넬 컬러 밤이 3000원? 품절대란 일으킨 '듀프' 전성시대

이보람 2024. 11. 1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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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에서 '샤넬 저렴이'를 검색하면 나오는 숏츠 영상들. 유튜브 캡처


서울 삼전동에 사는 방모(34)씨는 최근 다이소에서 ‘아티 스프레드 컬러 밤’을 색깔별로 하나씩 3개 구매하는 데 성공했다. 컬러 밤은 크림 형태의 제품을 볼이나 입술에 바른 뒤 손가락으로 녹이면 발색되는 색조 화장품이다. 4g 용량에 가격은 3000원이다. 명품 화장품 브랜드 샤넬의 ‘립앤치크’ 제품과 비슷하다고 유튜브나 소셜미디어(SNS)에서 입소문을 타며 ‘샤넬 저렴이’로 불렸다. 샤넬에서 판매되는 6.5g짜리 립앤치크는 6만5000원이다. 방씨는 “20분의 1도 안 되는 가격에 효과는 비슷하다고 유명해진 아이템이라 사보고 싶었지만 샤넬과 가장 비슷한 ‘선셋’ 컬러는 갈 때마다 품절이어서 다이소 근처를 지날 때마다 들러 하나씩 겨우 사 모았다”며 “가격 대비 아주 만족스러운 소비”라고 말했다.

최근 젊은 층에서 ‘듀프’가 새로운 소비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듀프는 복제품을 뜻하는 영어단어 ‘duplication’의 약자다. 주로 디자인이나 효능은 고급 브랜드와 비슷하지만 가격은 훨씬 저렴한 ‘가성비 좋은 대안 제품’을 일컫는다. ‘샤넬 저렴이’로 유명해지며 잇따라 품절됐던 다이소 화장품과 유명 디자이너 브랜드 ‘르메르’ 스타일과 비슷해 ‘르메르맛’이라는 별명이 붙었던 유니클로 의류처럼 주로 뷰티·패션 분야에서 시작된 소비 트렌드다. 앞서 애플·다이슨 등 고가의 전자제품과 비슷한 성능으로 ‘차이슨’으로 불린 샤오미의 워치·청소기같은 전자제품이 인기를 끌었던 것도 듀프식 소비와 비슷하다.

유튜브·틱톡 등 SNS에 듀프를 검색하면 “딥티크 향수와 향이 거의 똑같은 바디샤워를 구매했다”, “100만원 짜리 루이스폴센 조명과 동일한 디자인의 조명을 10분의 1가격으로 샀다”와 같은 듀프 성공 콘텐트가 넘친다. 명품 화장품과 저렴한 화장품의 발색력·유지력 등을 비교하거나, 니치 향수와 비슷한 계열의 향을 내는 국내 브랜드 제품을 함께 소개하는 식이다.

듀프 소비는 고물가 시대에 실용적인 가성비를 앞세운 ‘요노(YONO‧You Only Need One)’가 청년층에 새로운 소비 트렌드로 자리 잡으면서 각광 받고 있다. 현재의 행복을 중시한 ‘욜로(YOLO‧You Only Live Once)’, ‘플렉스 소비’ 행태를 요노가 대체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8월 발표된 아르바이트포털 ‘알바천국’이 537명의 Z세대(1990~2010년대 초반 출생한 세대)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추구하는 소비습관’을 묻자, ‘요노’라는 답변은 71.7%를 차지했다. ‘욜로’라는 답변은 25.9%에 불과했다. 알바천국은 지난해 같은 조사에서 57.3%가 절약하는 소비, 42.7%가 스스로의 행복을 우선시하는 소비를 추구한다고 답변한 것을 토대로 “1년 새 Z세대의 저소비 트렌드가 더욱 확산됐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일부 듀프 제품은 기대보다 품질이 떨어져 만족하지 못하는 소비자들도 적지 않다. 대학생인 김모(21)씨는 지난해 해외 디자이너 브랜드의 약 180만원 상당 가방을 놓고 한참 고민하다가 비슷한 디자인에 가격은 5% 수준인 가방을 온라인 쇼핑몰에서 샀다가 크게 실망했다. 소재와 모양, 부자재 등이 상세 사진과는 완전히 달랐기 때문이다. 김씨는 “패션 커뮤니티에서 해당 브랜드의 ‘듀프’를 발견했다는 후기를 보고 샀는데 질이 너무 떨어졌다”며 “결국 원래 사려던 제품을 다시 샀다”고 토로했다. 일본 한 유명 브랜드와 비슷한 스타일의 나일론 소재 가방을 구매했던 양모(30대‧남)씨 역시 “듀프 제품으로 유명한데다 출시될 때마다 품절되길래 기대하고 샀지만 그냥 딱 가격만큼”이라고 말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명예교수는 “다양성이나 합리성 추구 면에서 듀프 트렌드가 젊은 세대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라며“다만 품질이 떨어지거나 지적재산권이 침해되지 않는지 살피고 자체 브랜드 가치와 질을 갖춘 제품을 소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이보람 기자 lee.boram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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