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귀환에 ‘물만난 고기’ K원전… 빅테크들도 SMR 전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재집권으로 국내 원전 산업이 ‘제2의 르네상스’를 맞을 것이란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2017년 대통령 취임 당시 ‘원전 부활’에 나섰던 트럼프 당선인은 이번 대선에서도 ‘미니 원전’으로 불리는 소형모듈원전(SMR)을 중심으로 한 원전 산업 육성 방침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SMR은 기존 대형 원전보다 안전성이 높고 건설 비용·기간이 적게 들어 차세대 원전으로 주목받는다.
미국을 필두로 한 글로벌 원전 확산 기조는 재도약을 노리는 국내 원전 산업에 호재가 될 수 있다. 특히 한·미 양국은 ‘원전 강국’ 중국·러시아와 맞서기 위해 원전 수출 동맹인 팀 코러스(KOREA+US)를 꾸린 상태다. 여기에 트럼프 행정부 2기의 원전 확대 정책이 더해지면 글로벌 원전 시장에 국내 시공 및 설비 제작 능력이 재차 부각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연구기관 및 학계에서도 ‘한·미 원전 협력’ 확대 관측이 이어진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지난 7일 발간한 ‘미국 트럼프 2.0 행정부의 경제정책 전망과 시사점’ 보고서에서 “트럼프 2기는 에너지 독립을 목표로 원전 개발에 적극 나설 전망”이라며 “한국의 원전 시공 및 운영 경쟁력을 바탕으로 미국과 SMR 공동수출 등의 협력이 기대된다”고 진단했다. 최성민 카이스트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교수는 10일 “미국은 조선이나 반도체처럼 원전 산업에서도 한국과의 파트너십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국내 원전 업계에 새로운 기회가 열릴 수 있다”고 말했다.
한·미의 원전 팀플레이도 본격화 국면에 들어섰다. 현대건설은 지난 4일(현지시간) 미국 웨스팅하우스와 컨소시엄을 꾸리고 불가리아원자력공사(KNPP NB)가 발주한 총사업비 20조원 규모의 코즐로두이 신규 원전 건설 공사 설계 계약을 따냈다. 지난 7월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24조원 규모의 체코 신규원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면서 불거졌던 웨스팅하우스와의 분쟁을 딛고 새로운 협력 기반을 창출한 것이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원전 건설 파트너가 필요한 웨스팅하우스와 관련 기술을 축적해온 한국 원전 업계의 협력이 더욱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공지능(AI) 발전으로 폭증한 전력 수요도 원전 업계에 훈풍으로 작용한다. 최근 마이크로소프트(MS)와 아마존, 구글 등 빅테크 기업들은 SMR 개발·건설에 잇달아 대규모 투자를 결정했다. 구글은 지난달 14일(현지시간) 미국 SMR 기업 카이로스파워와 500메가와트(㎿) 규모의 전력 구매 계약을 체결했다. 500㎿는 수십만 가구가 사는 중소 도시의 전력 소비량에 육박하는 규모다. 구글은 카이로스파워가 짓고 있는 원전 6~7곳에서 AI 데이터 센터용 전력을 확보할 계획이다.
아마존도 지난달 16일 미국 에너지 기업 도미니언에너지와 SMR 개발 계약을 체결했다. 아마존은 현재 도미니언에너지를 통해 버지니아주 내 데이터센터 452곳에 약 3500㎿ 규모의 전력을 공급받고 있다. 향후 신규 SMR을 통해 300㎿ 이상 추가 전력을 확보할 방침이다. 아마존은 유틸리티 기업 ‘에너지 노스웨스트’와 차세대 SMR 원자로 개발기업인 ‘X-에너지(X-energy)’ 등에도 총 5억 달러(약 7000억원) 이상 투자를 결정했다.
MS는 지난 9월 미국 1위 원전 기업 콘스텔레이션 에너지와 20년간 장기 전력 공급 계약을 맺었다. 콘스텔레이션은 MS 데이터 센터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1979년 3월 사상 최악의 원전 사고가 발생했던 스리마일섬 원전 1호기를 2028년 재가동하기로 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침체했던 원전 시장이 다시 속도를 내고 있다는 신호”라고 진단했다.
빅테크와 원전의 만남은 ‘전력 확보’와 ‘탄소 중립’이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 위해서란 분석이다. 글로벌 친환경 규제로 국가를 넘어 개별 기업의 탄소 감축 부담도 증가하고 있어서다. MS와 구글이 데이터 센터 운영에 필요한 전력을 화석연료 발전으로 충당하면서 최근 3~4년간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각각 40%, 30%가량 급증했다. ‘전기 먹는 하마’로 불리는 AI 데이터 센터에 전력을 공급하면서 탄소 감축 목표까지 달성하려면 ‘무탄소 전력원’인 원전에 손을 내밀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글로벌 전력 수요 급증은 국내 원전 산업에도 새로운 도약의 계기로 거론된다. 차세대 원전인 SMR에 우호적 환경이 조성되고 있어 한수원과 두산에너빌리티 등 국내 기업에 사업 확장의 기회가 커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한국형 SMR’도 해외 진출을 위한 준비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한수원과 한국원자력연구원의 차세대 수출형 SMR인 ‘스마트(SMART)100’은 지난 9월 원자력안전심사위원회의 표준설계인가를 획득했다. 표준설계인가는 원자로 설계 등의 적합성을 확인하는 과정으로, 원자로 상용화의 필수 관문이다. 스마트100은 지진 발생 시 운전을 자동으로 정지할 수 있는 설비를 통해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유사한 사례에 대비할 수 있는 안전장치를 갖췄다.
정부는 스마트100 설계에 반영된 일체형 원자로 등 혁신 기술이 더해진 차세대 한국형 SMR ‘i-SMR’도 2028년까지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통해 2035년 650조원 규모로 예상되는 글로벌 SMR 시장을 선점한다는 구상이다.
세종=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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