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사니] 대통령의 사과

이종선 2024. 11. 11.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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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선 정치부 기자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7일 140분간의 대국민 담화 및 기자회견에서 ‘사과’라는 단어를 12차례 입에 올렸다.

하지만 기자회견을 지켜본 사람 중 이 사실에 수긍하는 이는 거의 없는 것 같다. 분명 대통령이 사과는 했는데 개운하지가 않다는 게 필자 주변의 대체적 반응이다. “‘계속 사과하라 하니 어쨌든 사과는 하겠어. 그런데 내가 뭘 잘못했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어’ 하는 느낌이었다”는 평가도 들린다.

여권에서는 아쉬운 게 없지는 않지만 ‘그런대로 솔직담백한 회견’이라는 평가가 많은 듯하다. “대통령이 할 수 있는 걸 거의 다 하지 않았나(친윤계 A의원)” “대통령 스스로 변화와 쇄신 의사를 밝혔으니 기다려줘야 한다(친윤계 B의원)”는 반응도 있었다. 이런 인식차는 실제 회견 내용과 별개로 기자회견에서 보인 윤 대통령 태도의 영향이 클 것 같다. 실제 윤 대통령이 ‘사과’를 언급한 발언 중 상당수는 사과라기보다는 자신이 김건희 여사 대신 사과를 하게 된 경위나 자신의 사과가 두루뭉술한 이유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구체적으로 사과하기 어려운 이유를 설명하면서는 “창원 무슨 공단 어쩌고를 갖고 제가 거기에 개입해서 ‘명태균씨에게 알려줘서 죄송합니다’ 같은 사과를 기대한다면 그거는 사실과 다른 일이기 때문에 인정할 수도 없고 그거는 모략”이라며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물론 이런 모습 때문에 좋게 보는 쪽에서는 ‘솔직담백하다’는 평가를 하겠지만 회견 내용을 곱씹어보면 그런 평가에도 갸우뚱하게 된다. ‘오늘 사과를 결심하게 된 배경과 이유’를 묻는 첫 질문에 대해 윤 대통령은 “지난 임기 2년반을 돌아보고 앞으로 (남은 2년반을) 시작하는 가운데 국민께 감사와 사과 말씀을 드려야겠다 생각했다. 국정 최고책임자가 국민께 사과드리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고 답했다. 모두가 이 기자회견이 왜 열렸는지 아는데 대통령이 첫 답변부터 ‘아내’와 ‘명태균’을 빼놓고 임기 반환점만 입에 올린 건 선택적 침묵같이 들렸다.

그래서였을까. 기자회견이 끝난 뒤에도 김 여사 문제에 대한 대통령의 ‘박절하지 못한’ 모습만 각인됐다. 윤 대통령은 김 여사가 대통령 후보 시절 윤 대통령의 휴대폰을 보고 지지자들에게 대신 답장을 했던 사실을 소개했다. 그러면서도 김 여사와 명씨의 소통 여부에 대해서는 “제가 아내 휴대폰을 보자고 할 수는 없는 거라 그냥 물어봤다”고 밝혔다. 김 여사가 직접 국민 앞에 사과할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도 “대통령인 제가 제대로 관리했어야 했는데 제대로 못해서 먼저 일단 제가 사과하는 것”이라면서 ‘사과 좀 많이 하라’고 한 김 여사 발언을 전했다.

비록 별개의 질문에 대한 답변 과정에서 나온 말들이지만 이 발언들을 종합하면 ‘여사가 대통령보다 우위에 있는 것 같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김 여사를 향한 분노의 핵심이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대통령의 김 여사 관련 답변은 정무적으로 역효과를 낸 셈이다.

자신에게 엄격하고 타인에게 관대한 리더십과 자신에게 관대하고 타인에게 엄격한 리더십 중 어느 쪽이 존경을 받을지는 자명하다. 대중의 기대에 비해 대통령은 여전히 아내에 대해 전혀 단호하지 못한 인상을 줬다.

회견에서 윤 대통령은 딱히 잘못이라 하기 어려운 대선 기간 ‘문자메시지 대리 답장’ 일화만 소개했지만, 김 여사에 대한 압도적인 부정 여론은 명품가방 수수, 마포대교 순시 논란, 해외 순방 중 명품 편집숍 방문 등 숱한 부적절한 처신들이 중첩된 결과다.

이런 일들에 대해 대중이 바라는 만큼의 사법적·행정적 조치는 차치하더라도 모처럼 마련된 기자회견에서 보다 단호하고 엄중한 톤으로 여사 문제에 대한 입장을 밝힐 순 없었을까. 고약한 상황이겠지만 그럼에도 “사실상 대외 활동을 중단해 왔고, 앞으로도 이런 기조를 이어갈 것”이라는 말은 너무도 한가하게 들린다.

이종선 정치부 기자 remembe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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