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 왕과 여인
강력한 여성 권력자 적지 않아
'갑자사화' 광기 보인 연산군도
천민 출신 장녹수만 총애해
본분 잃고 결말 좋을 리 없어
역사는 단순 과거형 아니다
예로부터 정치무대의 주인공은 남성이었다. 권력의 정점에 자리한 국왕부터 지방의 하급 관리에 이르기까지 정치권력은 남성의 전유물이었다. 여성의 공식적인 정치 참여는 극소수 여왕을 제외하고는 사실 현대에 들어와서야 가능해졌다. 그렇다고 전근대에 여성이 권력을 휘두르지 못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남성과 여성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불가결의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2세,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 그리고 중국의 측천무후처럼 스스로 제왕이 돼 합법적으로 권력을 행사한 사례도 있다. 하지만 정치무대에서 이름을 날린 대개의 여성은 제왕과의 가족관계를 통해 권력에 접근했다. 제왕이 아니면서도 제왕 같은 권력을 누렸다. 아니 그를 좌지우지하며 더 큰 권력을 휘두른 사례도 적지 않다.
자기 친자를 폐위하고 스스로 제위에 오른 측천무후 사례는 압권이다. 황제를 마음대로 폐위하고 허수아비 세우기를 서슴지 않은 한나라 염(閻) 태후나 당나라 장(張) 황후도 마찬가지다. 청나라 말기 서태후도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테다. 다른 나라 사례만 볼 게 아니다. 드라마 ‘여인천하’로 유명한 조선의 문정왕후(중종의 비, 명종의 어미)도 충분히 버금간다. 모두 효를 극도로 강조한 유교문화권에서 제왕의 아내이거나 어미라는 지위를 악용한 권력 행사 사례다.
제왕의 정식 부인이 아니면서 엄청난 권력을 누린 사례도 허다하다. 우리 귀에 익은 중국의 서시(西施)나 양귀비가 그런 부류다. 그런데 이에 못지않은 사례가 조선에도 있다. 바로 연산군의 후궁 장녹수 얘기다.
장녹수의 인생은 그야말로 인생 역전이자 한 편의 드라마였다. 그녀의 부친은 현령까지 지낸 양반이었지만 자신은 천민이었다. 아마도 어미는 당시 관기(官妓)였던 것 같다. 실록(연산군일기)에 따르면 장녹수는 너무 가난해 몸을 팔아 생계를 유지할 지경이었으며, 그런 과정에서 서방도 여러 번 바꾸었다.
도무지 희망이라곤 없던 신세였지만, 그녀가 제안대군의 사노(私奴)와 결혼하면서 인생 역전의 서막이 올랐다. 예종의 둘째 왕자 제안대군 집에서는 연회가 잦았고, 선천적으로 가무에 능하던 장녹수는 그 자리에 자주 불려 나갔다. 그녀는 곧 기생으로 장안에 이름을 날렸다. 하루는 제안대군 집에 들른 국왕 연산군이 그만 장녹수의 가무를 보고 한눈에 반했다. 눈치 빠른 제안대군은 장녹수를 흥청으로 추천하였다. 이렇게 그녀는 궁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연산군은 곧 그녀를 종4품 숙원으로 삼았다. 일개 기생에서 후궁으로 신분이 수직 상승한 것이다. 유교 국가의 법도에 크게 어긋난 일이었건만 당시 서슬 퍼렇던 연산군에게 꿋꿋하게 직언하는 신하는 없었다.
장녹수는 연산군의 총애를 독차지했다. 실록에 따르면 그녀는 입술을 움직이지 않으면서도 노래를 잘 불렀고, 희욕에도 능했다. 희욕(戱辱)이란 희롱하며 욕보인다는 뜻인데, 후궁의 몸으로 하늘 같은 국왕 연산군에게 납작 엎드리기는커녕 되레 하대하며 꾸중을 일삼았다는 일화가 적잖다.
당시 연산군은 왕의 권위에 병적으로 예민했다. 사소한 꼬투리를 잡아 왕을 업신여겼다는 죄목으로 주변 사람들을 죽이기 일쑤였다. 이른바 갑자사화(1504)는 그렇게 발생한 광기 서린 대규모 옥사였다. 그런데 웬일인지 장녹수에게만은 어린애처럼 굴며 꾸중 듣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마치 어머니에게 혼나는 아이의 모습과도 같았다.
현대식으로 풀어보면 장녹수는 입술을 움직이지 않고 말하는 복화술에 능했던 듯하다. 또한 연산군과 장녹수는 술을 마시고는 각자 아들과 어미처럼 행동하는 역할극을 즐긴 것 같다. 그런데 당시 복화술은 대개 무당들이 사용하던 술법이었다. 입술을 움직이지 않는데도 말소리가 들리니 사람들은 그것을 무당의 육신에 빙의한 혼령의 말이라 여겼다.
연산군에게 장녹수는 애첩과 동시에 어머니였던 것 같다. 아니, 장녹수의 미색이 별로 뛰어나지 않았다는 실록의 기사를 고려하면 어쩌면 처음부터 연산군은 장녹수에게서 어머니 폐비 윤씨의 잔영을 보았을 가능성이 크다. 자기 본분을 잊고 ‘무당 놀이’에 빠진 연산군과 장녹수의 결말은 우리가 다 알다시피 좋을 리 없었다. 역사가 단순 과거형은 아니다.
계승범 서강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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