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철의 시시각각] 안으로 ‘크게’ 굽은 검찰의 팔
지난달 대법원은 라임 사태 주범 김봉현씨로부터 향응을 받은 검사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유죄 취지로 파기 환송했다. 매일 새로운 폭로가 쏟아지는 통에 금세 잊혔지만,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 관행을 다시 상기시켰다.
2020년 10월, 구치소에 수감 중이던 김씨는 검사들에게 고가의 술접대를 했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검사 3명과 소개해 준 검사 출신 변호사 등이 마신 술값은 536만원. 게다가 참석한 검사 한 명은 얼마 뒤 라임 수사팀에 합류했다. 그런데 검찰은 접대 당시에는 직접 수사한 검사가 없었다는 이유로 대가성 여부는 제쳐둔 채 김영란법 위반 여부만 따졌다. 김씨까지 포함해 ‘n분의 1’로 술값을 계산하되, 밴드가 나오기 전 자리를 뜬 검사 2명은 그 비용마저 빼고 나니 96만원이 나왔다며 기소 대상에서 제외했다. 끝까지 남은 검사만 114만원으로 제한 금액을 넘겼다며 기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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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법원, 라임 접대 검사 유죄 판단
검찰 제식구 감싸기 다시 도마에
김 여사 수사 미온적, 특검 명분만
」
이후 사건은 금액이 맞니 틀리니 하는 산수의 문제가 됐다. 뇌물 사건의 프레임을 완전히 바꾼 기적의 계산법이란 비아냥이 나왔다. 법원은 한술 더 떠 중간에 잠시 합석한 공무원까지 계산에 넣어 아예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의 판결도 이 계산법의 굴레에서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일단 합석한 사람 몫을 빼고 계산해 유죄 취지로 뒤집은 것이다.
검찰이 제 식구를 감싸기 위해 헌신적이고 창의적인 노력을 기울인 사례는 이번뿐이 아니다. 전 법무차관의 성 접대 의혹, 공소장을 분실한 검사의 공문서위조, 심지어 후배 검사를 성폭행한 사건 등 검찰이 부실하고 소극적으로 대처해 기소 자체를 면하거나 경미한 처벌로 끝난 경우가 차고 넘친다. 종종 권력층의 부정에도 약한 모습을 보이지만, 자기 식구의 비리 덮기에는 유독 적극적이다. 명백한 기소독점주의의 실패다. 이런 문제에 대한 공감대 속에 나온 것이 특검이고, 공수처다. 검찰이 잘했다면 별로 필요 없는 조직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지난주 기자회견은 성난 민심에 기름을 끼얹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어쨌든 사과’한다며 고개를 숙였지만, 구체적으로 뭘 사과하느냐는 질문엔 “말할 수 없다”며 버텼다.잘못한 게 전혀 없다는 의미였다. 지켜본 보수층마저 “특검을 막을 명분도 없어졌다”고 한탄했을 정도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특검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숨기지 않았다. 그동안에는 주로 특검 후보자를 야당만 추천하는 것에 대해 문제를 지적했지만 이번엔 특검 자체가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이미 국정농단 특검과 드루킹 특검 등 여당을 후보 추천에서 배제한 사례가 여러 번 있었기에 논리가 군색했을 것이다. 국정농단 사건 당시 최순실씨가 제기한 헌법소원에 대해 헌재는 “특검의 수사 대상과 범위 등은 기소독점주의의 적절성, 검찰권 행사의 통제 필요성, 국민적 관심과 요구 등 제반 사정을 고려해 결정할 문제로 국회의 폭넓은 재량이 인정된다”며 전원일치로 합헌 결정을 했다. 후보 추천권 역시 입법 재량이라고 못 박았다. 당시 특검팀에 수사팀장으로 참여했던 윤 대통령이 모를 리 없다.
지난 주말 명태균씨가 이틀 연속 창원지검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선관위가 고발한 지 11개월 만이다. 그사이 선거법 위반 사안은 공소시효가 끝나버렸고, 명씨는 휴대전화 등 증거도 숨기거나 없앤 상태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도 서울고검에서 다시 들여다본다지만 큰 기대는 하기 어렵다. 관사 이전이나 양평고속도로 노선 변경 등 숱한 의혹에도 검찰이 적극적으로 나설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윤 대통령은 살아 있는 권력일 뿐 아니라 검찰의 대선배다. 안 그래도 안으로 굽는 검찰의 팔이 더욱 크게 굽었다는 것을 검찰 스스로 증명하는 것 같다. 하지만 정말 윤 대통령에게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다. 헌재가 결정문에 명시한 대로 ‘기소독점주의의 적절성 (논란), 검찰권 행사의 통제 필요성’을 점점 더 크게 각인시키고 있으니 말이다.
최현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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