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범의 이코노믹스] 근로기준법, 규모보다 업종·업무 따른 적용으로 바꿔야
가열되는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확대 적용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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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 52시간제·연차휴가·수당 등
5인 미만 사업장엔 적용 예외
근로자 보호 위한 법 확대 적용
영세 사업주의 부담 키울 우려
근로시간 유연화 등 노동개혁과
근로기준법 전면 개정 필요해
」
헌재, 근로기준법 위헌 신청 기각
경영계의 반대에도 야당이 발의한 법안이 있고, 노동부 장관의 추진 의지까지 확고한 만큼 어느 때보다도 근로기준법의 확대 적용이 가시화할 가능성은 커졌다. 하지만 5인 미만 사업장의 근로기준법 확대 적용이 이른 시간에 현실화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지난달 4일 열린 노사정대표자 회의에서 한국노총은 5명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을 의제로 제안했지만, 사회적 대화 기조로 합의할 수 있거나 시급한 의제에 우선순위를 두기로 하면서 근로기준법 확대 적용은 의제로 선정되지 않았다.
그동안 근로기준법의 적용 제외에 대해 3건의 위헌 신청이 있었고, 헌법재판소는 모두 기각했다. 다만 2019년 2건의 판결에서는 해당 조항이 헌법을 위반한다고 판단했으나, 헌법에 맞게 보다 합리적으로 해당 조항들이 개정될 때까지 유지되는 것으로 판결했다.
우선 재판관 전원의 의견이 일치한 1999년의 판결(1998년 신청)에서는 “영세사업장의 열악한 현실과 국가의 근로 감독 능력상 한계를 고려한 입법으로, 근로기준법의 법 규범성을 실질적으로 관철하기 위한 입법 정책적 결정으로 합리적 이유가 있기 때문에 4인 이하 사업장의 적용을 배제한 근로기준법 제10조1항이 평등원칙에 위배된다고 할 수 없다”고 했다.
헌법재판소는 2019년 판결(2013년 신청)에서 대통령령에 위임한 근로기준법 제11조 2항에 대해서는 헌법 제75조의 포괄위임 금지원칙에 위배되나 “4인 이하 사업장에 일부나마 근로기준법에 적용될 수 있는 근거이므로 그 효력을 유지하되 시행령에 구체적인 기준을 조속히 마련하고 합리적인 근거에서 4인 이하 사업장 적용 제외 조항들이 제외된 것인지를 검토할 것”을 주문했다.
부당해고 제한 조항과 부당해고에 대한 노동위원회 구제절차 대상에서 4인 이하 사업장을 제외하는 근거가 되는 근로기준법 시행령 제7조에 대한 2019년 판결(2017년 신청)에서 헌법재판소는 해당 조항이 헌법에 위반된 것으로 보았으나 “합헌적인 내용으로 시행령을 개정할 때까지 심판대상 조항을 계속 적용되도록 할 필요가 있다”며 “평등권과 근로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최저임금 1만원’ 충격 반복할 수도
헌법재판소가 근로기준법 적용 제외에 대해 현실을 고려한 판단을 내렸듯, 근로기준법의 확대 적용 문제는 취약계층 근로자 보호 차원에서만 접근해서는 안 된다. 근로기준법 확대 적용을 심도있는 논의와 철저한 준비 없이 추진하면 노동 존중을 전면에 내세운 문재인 정부의 ‘최저임금 1만원 정책’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 문재인 정부는 취임 초 2년간 최저임금을 30% 가까이 올리면서 전체 취업자의 20%가 넘는 소상공인·자영업자 대 취약 근로자 간 ‘을과 을의 전쟁’을 촉발했다.
그 결과 2018년 연간 고용 증가 폭이 10만 명 밑으로 떨어졌고, 취약 계층이 오히려 노동시장에서 밀려나는 결과를 초래했다. 무리한 최저임금 인상의 부작용을 보완하기 위해 30인 미만 사업장에 정부가 임금의 일부를 지원했지만 역부족이었고 재정만 낭비했다. 2022년 기준으로 300만명 내외의 근로자가 최저임금 미만의 시간당 임금을 받고 있다. 너무 높은 수준의 최저임금을 강요한 탓에 많은 소상공인이 범법자가 된 것이다. 5인 미만 사업장으로 근로기준법을 전면 확대하면 유사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3년(잠정) 기준으로 전국 623만8580개 사업장 중 5인 미만 사업장은 86.5%인 538만6553개다. 종사자 수는 765만5862명으로 전체 종사자(2532만2516명)의 30.3%다. 사업주는 근로자가 아닌 만큼 사업체 수 만큼 사업주가 있다고 상정할 때, 근로기준법을 확대 적용할 때 혜택을 받을 근로자는 최대 228만9309명으로 추정된다. 이는 5인 미만 사업장 종사자의 29.6%다. 종사자 수를 기준으로 하면 근로기준법 확대 적용으로 고용 비용이 증가하는 사업자의 수는 538만6533명으로 혜택을 보는 근로자의 2.4배다. 자영업자는 “노동자 보호법은 그렇게 많은데 왜 자영업자 보호법은 없느냐”고 절규하고 있다. 노동자 보호만을 고려해 근로기준법 적용을 확대한다면 전체 취업자의 20%를 차지하는 자영업자를 더욱 벼랑으로 몰 수 있다.
규모에 따른 법 적용 개선해야
근로기준법의 전면 확대보다 먼저 고민해야 할 것은 개별적 근로관계를 규율하는 기본 틀인 근로기준법을 시대 상황에 맞게 전면적으로 고치는 것이다. 단순히 규모에 따라 일률적으로 적용 대상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업종이나 업무 특성을 고려해 법의 개별 조항 적용 대상을 정해야 한다. 근로기준법이 처음부터 사업장 규모에 따라 적용대상 조항을 달리했던 것은 아니다. 1953년 근로기준법 제정 당시에는 모든 사업장에 적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시대적 상황에 따라 여러 차례 개정이 이뤄졌는데, 초기에는 적용 대상을 축소해 법의 실효성을 확보했고 일자리 문제가 상당 부분 해결된 1970년대 중반 이후부터 근로자 보호를 지속해서 강화해 왔다.
1954년에 15인 이하 사업장에의 적용을 제외했고, 1962년에는 16인 이상 3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서 일부 규정 적용을 배제했다. 두 번의 개정을 입법적 후퇴로 볼 수도 있으나 한국전쟁이 끝나면서 일본 노동법의 영향을 받아 제정한 (과도한 기준의) 근로기준법 적용이 사실상 어려웠던 현실을 고려하면 오히려 근로자 보호의 실효성을 강화하는 조치로 볼 수 있다. 1975년에는 적용 제외 사업장을 5인 미만으로 축소하면서 5인 이상 16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서는 일부 규정의 적용을 배제했다. 1987년에는 상시 5인 이상 10인 미만 사업장에만 일부 규정의 적용을 배제하는 것으로 적용 대상이 확대됐다. 외환위기 상황이었던 1998년에는 4인 이하 사업장에만 일부 규정의 적용을 배제하는 현재의 법체계가 구축됐다.
독일은 개별 근로관계 보호에 있어 사무직과 생산직 근로자를 구별하는 등 직무 및 업종 특성에 따라 적용 기준을 달리하고 있다. 해고 제한의 경우에만 상시근로자 수를 기준으로 규제의 수준이 다른데, 소규모 사업장(현재는 10인 미만) 고용주는 해고 제한의 규제를 받지 않는다. 우리의 근로기준법에 해당하는 미국의 공정근로기준법은 ‘개인 적용’과 ‘기업 적용’을 구별해 적용 범위를 달리하고 있다. 사용자가 피용자를 2명 이상 고용하고 연간 거래총액이 50만 달러 이상인 경우 ‘기업적용’ 대상이 된다. 또한 업무 성격이나 내용 등에 따라 매우 구체적으로 적용 범위의 예외를 규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 관리직과 전문직 등의 특정 직종은 최저임금 및 시간 외 수당 규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우리나라 근로기준법은 1997년 전면적으로 제·개정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과 함께 국제 규범에 맞게 노동관계법을 전면적으로 개정하면서 근로기준법에서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제고됐고 집단적 노사관계의 노동권이 신장했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비정규직의 지속적인 증가와 4차 산업혁명의 도래 등 여러 도전 과제에 효과적으로는 대응하기에 현재의 근로기준법은 역부족이다.
경직된 규정에 대한 근본 검토 필요
지난 8월 기준으로 비정규직은 846만명으로 전년보다 다시 늘어났고 정규직과의 임금 격차도 최대다. 그럼에도 뚜렷한 대안은 마련되지 못한 채 관련 분쟁만 빈번하게 이뤄지고 있다. 인공지능(AI) 등 기술 혁신이 가속하며 노동의 미래에 대한 불안도 커지고 있다. 지난 몇 차례의 산업혁명과는 달리 4차 산업혁명으로 일자리가 증가하기보다는 줄어들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또한 근로기준법의 확대 적용과 함께 필요한 것은 근로시간 제도 개편 등의 노동개혁 추진이다. 현재의 주 52시간 근로제는 글로벌 반도체 전쟁에서 살아남기 힘들다. 경직된 근로시간 제도는 주 7일 일하는 미국 엔비디아의 기술 인재와 밤을 새워 공장을 돌리는 대만의 TSMC와 경쟁해야 하는 한국 기업의 발목을 잡고 있다.
높아진 최저임금과 주휴수당의 부담으로 자영업자가 주휴수당을 지급할 필요가 없는 주 15시간 미만의 ‘쪼개기 알바’를 쓰면서 많은 아르바이트 학생들이 원하지 않는 ‘n잡러’가 되고 있다. 소상공인을 옥죄고 근로자의 업무 환경을 열악하게 하는 주휴수당 등 근로기준법의 여러 규정에 대한 근본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늘어가는 비정규직을 비롯해 심화하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를 해결하고 AI 시대와 무한 글로벌 경쟁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노동시장의 틀, 그 중심에 있는 근로기준법을 근원적으로 바꿔야 한다. 그런 만큼 근로기준법의 확대 적용에 국한하기보다 근로기준법의 전면적인 개정을 다시 논의할 시점이다.
박영범 한성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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