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세정의 시선]트럼프 옆 아베 빈자리, 윤 대통령이 채우려면

장세정 2024. 11. 11.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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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정 논설위원

임기 반환점(10일)을 전후해 국내 정치적으로 사면초가(四面楚歌) 상황에서 국민 앞에 처음 고개 숙인 윤석열 대통령에게 지난 7일은 평생 잊지 못할 날이 될 것 같다. 그런데 대국민 담화 그 날 이른 아침에 있었던 비공개 외교 장면이 대한민국의 향후 운명에는 더 중요해 보인다. 윤 대통령이 미국의 차기 대통령으로 결정된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과 처음 통화한 날이어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7일 첫 통화했다. [연합뉴스 중앙포토]

외신에 따르면 트럼프 당선인은 대선 다음 날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시작으로 닷새 동안 무려 70여명의 외국 정상들과 통화하며 축하 인사를 받았다. 그런데 한국 및 일본 정상과의 통화가 유달리 눈길을 끌었다. 일본 언론은 윤 대통령이 지난 7일 오전 7시 59분부터 12분간,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총리는 9시 30분부터 겨우 5분간 각각 트럼프 당선인과 통화했다는 사실을 비교했다. 트럼프 1기 때 '브로맨스'를 과시했던 아베 신조(安倍晋三) 당시 총리는 2016년 대선 직후 약 20분간 통화했는데, 이번에는 통화 순서도 시간도 일본 총리가 밀렸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소맥 49잔을 마실 정도로 말술인 이시바는 아베와 달리 골프를 치지 않아 골프광인 트럼프와 긴밀한 접점이 없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고인이 된 아베의 빈자리를 윤 대통령이 차지할 수도 있다는 일본 측의 조바심이 읽힌다. 트럼프 당선인은 술을 마시지 않아 윤 대통령이 특유의 친화력을 살릴 기회가 제한될 것이라는 관측도 있지만, 그 대신 윤 대통령이 8년 만에 골프 연습을 다시 시작했다는 보도가 나와 관심을 끌고 있다. 트럼프-아베 콤비처럼 트럼프-윤석열 콤비의 골프 외교가 파격적으로 성사될지 주목된다.

2019년 5월 당시 일본을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아베 신조 총리와 골프 라운딩을 한 뒤 웃으며 셀카를 찍는 모습. 아베 총리는 이 사진을 트위터에 올리면서 ″새로운 레이와 시대도 미-일 동맹을 더 흔들리지 않는 것으로 만들고 싶다″는 글을 남겼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 트위터 캡처, 연합뉴스]

통화 순서와 시간이 뭐가 중요하냐고 논박할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 친밀감을 행동으로 표출하는 트럼프 당선인의 특성을 고려하면 가볍게 넘길 장면이 아니다. 이런 관점에서 윤 대통령은 신속한 통화 성사로 트럼프 당선인과 첫 단추를 잘 끼운 셈이다.
앞으로가 문제다. 트럼프 당선인은 내년 1월 20일 취임하지만, 민주당에서 공화당으로 정권 교체에 따른 인수위원회는 곧바로 출범했다. 경제·통상 및 외교·안보 정책 등 트럼프 2기의 핵심 기조가 다듬어지는 인수위 활동 기간에 '윤석열-트럼프 콤비'를 강력한 접착제로 결속시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 아베 존재·영향 컸던 트럼프 1기
2기, 윤 대통령에 브로맨스 기회
조기 회동, 드림팀 특사단 꾸리길

지난 7일 회견에서 외신 기자가 "트럼프 당선인은 윤 대통령을 잘 알지 못하고 검사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질문하자 윤 대통령이 피식 웃는 장면이 포착됐다. 윤 대통령은 트럼프 당선인과 가까운 미국 측 인사들이 "윤석열-트럼프는 케미가 잘 맞을 것"이라고 전망했다며 자신감을 피력했다. 하지만 핵으로 무장한 김정은을 어떻게 다룰지,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전략 실패를 어떻게 반면교사로 삼을지 등을 숙의할 윤석열-트럼프 브로맨스와 핫라인을 구축하는 행동이 말보다 중요하다.

지난 8월 한국을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장남)가 서울의 한 대형교회에서 아버지가 지난 7월 총격 피습에서 구사일생한 순간을 언급했다. 그는 "그 순간 하나님의 손이 아버지를 만지셨다고 믿는다"며 신앙 간증을 했다. 오른쪽은 통역을 맡은 김민아 빌드업코리아 대표. [유튜브 화면 캡쳐]

장호진 대통령실 외교·안보 특보가 트럼프 특사로 거론된다는데, 윤 대통령이 마침 15~16일 페루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의체(APEC) 정상회의에 오가는 길에 트럼프 당선인을 방문하거나 연내에 별도 일정을 마련하는 것이 어떨까.
윤 대통령이 곧 물러날 바이든 대통령이나 낙선한 해리스 부통령의 눈치를 살펴야 할 정도로 국제 정세와 대한민국 안보 상황이 한가하지 않다. 아베는 2016년 11월 당시 미국 대선 9일 만에 미국으로 날아가 트럼프 당선인에게 골프채를 선물했고, 취임 한 달 만에 함께 골프를 쳤다. 그 덕분에 트럼프 1기 내내 쿼드(Quad)와 인도·태평양 전략 등으로 트럼프의 귀와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아베였다.
트럼프 당선인과 인연이나 친밀감이 각별한 유력 인사들로 '드림팀 특사단'을 꾸리는 것도 검토해보자. 정치·경제계 인사들이 먼저 물망에 오르겠지만, 발상을 바꿔보면 더 참신한 명단이 나올 수 있다.
트럼프의 장남이자 차기 백악관 최고 실세로 떠오른 트럼프 주니어의 지난 8월 방한 당시 대형교회에서 신앙 간증을 도운 김민아 빌드업코리아 대표, 2021년 11월 플로리다 마러라고 별장에 파격적으로 초대받고 태권도 도복과 명예 9단증을 증정한 이동섭 국기원장 등이 그런 예다. 2018년 1월 당시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 연설에 초대받고, 백악관에서 만난 탈북민 출신 지성호 이북5도위원회 함경북도지사(전 국회의원), 트럼프가 읽겠다고 약속한 『이현서, 나의 일곱 번째 이름』을 쓴 탈북민 이현서 세븐 에셋 대표도 눈에 띈다. 내치가 아무리 혼란스러워도 누군가는 국익을 위해 트럼프 2기가 몰고 올 외교·안보·경제 리스크를 최소화할 지혜를 최대한 짜내야 할 때다.

2018년 2월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성호, 이현서 씨 등 탈북민 8명을 백악관으로 초청해 환담하는 모습. [EPA=연합뉴스]

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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