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렬의 공간과 공감] 지중해 문명을 한 곳에, 빌라 아드리아나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격언 그대로 로마의 건축은 이전의 고대 기술과 문화를 집대성해 새롭게 창조한 인류의 유산이다. 수많은 로마 유적 중 가장 중요한 것을 묻는다면 단연 빌라 아드리아나를 꼽는다. 하드리아누스 황제 (재위 117~138)의 궁전이자 별장이었다. 로마 전성기를 이끈 5현제의 일원인 그는 정복의 시대를 끝내고 탄탄한 내실의 시대를 열었다. 획기적 개혁으로 기득권 원로원과 갈등을 빚은 그는 수도 로마를 떠나 28㎞ 교외의 티볼리에 자신의 궁전을 건설했다.
120㏊가 넘는 광대한 터에 30여 동의 거대한 건물 유적들이 남아있다. 중심부엔 황제의 궁성이 위치하고, 목욕장들과 긴 운하 정원, 그리스식 극장과 신전, 그리고 대형 정원과 하인 거주지 등 크게 4영역으로 이루어졌다. 티부르티노 언덕을 끼고 미로같이 복잡한 이 유적들은 지형에 따라 정교하게 얽혀져 있다. 궁성 영역은 온갖 장식으로 화려한 황금광장과 사방을 연못으로 둘러싼 원형 해상극장, 열주로 에워싼 거대한 수영장 등 진귀한 공간들로 가득하다.
현존하는 백미는 ‘카노푸스’라는 긴 연못 일대의 복합체다. 폭 20m, 길이 120m의 카노푸스는 이집트 나일강을 모티브로 건설한 인공운하다. 이 운하를 에워싼 열주들은 그리스식 기둥들이며 기둥 사이의 대리석 조각은 그리스풍 신상들이다. 나일의 신 ‘세라피스’를 모신 신전은 로마가 발명한 거대한 돔으로 조성했다. 이집트의 문명과 그리스의 건축, 그리고 로마의 기술을 한자리에 모은 고대 지중해 문명의 끝판왕이다.
로마의 멸망으로 폐허가 된 이 빌라는 1461년 재조명되어 고전 연구의 기폭제가 되었고, 르네상스 건축의 직접적인 모델이 되었다. 발굴한 조각품들은 유럽 전역의 박물관에 소장되어 르네상스 예술의 전범이, 분수와 연못과 정교한 화단들 역시 르네상스 정원의 기본이 되었다. 빌라 아드리아나는 모든 건축과 공간의 아버지라 부를 만하다.
김봉렬 건축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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