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팽 왈츠 미공개 악보, 200년만에 발견
유난히 어둡고 무거운 도입부. 그리고 지나치게 짧은 악보. 작곡된 지 200년 만에 발견된 쇼팽 왈츠의 독특함이다.
19세기 낭만시대 스타 작곡가인 프레데릭 쇼팽(1810~49)의 미공개 악보가 나와 세계 음악계가 주목하고 있다. 양대 음반사인 워너 클래식스와 도이치 그라모폰이 이달 4일과 8일 이 곡을 녹음해 음원을 냈다. 각각 피아니스트 표트르 안데르셰프스키, 랑랑이 맡은 1분 20초 정도의 연주다. 쇼팽의 ‘새로운 곡’ 발견은 1930년대 이후 처음. 200년 전 쇼팽의 ‘신곡’은 음악가와 청중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수수께끼를 던지고 있다.
작품의 존재는 지난달 27일 뉴욕타임스가 보도로 처음 알렸다. 이에 따르면 뉴욕의 모건 도서관·박물관이 올 봄에 악보를 발견했고 검증 과정을 거쳤다. 가로 5인치(12.7㎝), 세로 4인치(10.1㎝)짜리 엽서 사이즈의 악보 맨 위에는 Valse(왈츠), Chopin(쇼팽)이라고 쓰여있다. 모건 도서관과 뉴욕타임스가 이 작품을 쇼팽의 것이라고 본 중요한 단서는 크게 둘이다. 우선 쇼팽이 다른 악보에서 썼던 필체로 낮은 음자리표를 그렸다는 것. 또 종이와 잉크가 19세기의 쇼팽이 쓰던 것과 같은 재질이라는 점이다. 다만 맨 위의 ‘쇼팽’은 다른 사람이 쓴 필체로 추정했다.
피아니스트들도 이 작품이 쇼팽의 것이라고 봤다. 피아니스트 랑랑은 뉴욕타임스에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정통한 쇼팽 스타일”이라고 했다. 안데르셰프스키는 “들어본 적 없던 쇼팽을 듣는 일은 황홀했다. 특히 마지막에 C장조로 바뀌는 부분은 쇼팽의 모든 것이 담긴 감동의 순간”이라고 밝혔다.
약간의 의심도 함께 한다. 영국 피아니스트 스티븐 허프는 BBC와 인터뷰에서 “처음에는 진위 여부에 약간 의구심이 들었다. 곳곳이 조금 거칠어 보였고 쇼팽의 다른 작품들처럼 어렵지 않은 것 같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오류가 몇 군데 있지만 쇼팽의 천재성이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라고 결론 내렸다.
보다 강한 문제 제기도 있다. 영국의 음악 칼럼니스트인 노먼 레브레히트는 “‘쇼팽’이라는 이름을 다른 사람이 썼으며 악보 소유권 증명도 분명치 않다. 의심의 여지가 있다”고 칼럼을 썼다. 특히 쇼팽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침묵하고 있는 점을 지적했다. 악보의 크기가 작고 작곡가의 서명이 없는 점도 쇼팽의 작품 중 예외적인 경우다. 다만 쇼팽이 선물을 위해 엽서 사이즈에 작곡했거나, 작곡 도중 선물과 악보 출판 모두 포기하게 됐을 가능성은 있다.
이 곡에서 눈길을 끄는 점은 도입부의 복잡함이다. 본론과 다른 결의 도입부가 8마디 동안 음악을 시작한다. 거칠고 무거우며 크게 연주하라는 지시어 포르테(f)가 삼중(fff)으로 쓰여있다. 이처럼 짧은 왈츠에서는 이례적이다.
피아니스트 김주영은 여러 특징으로 미뤄 쇼팽 초창기 작품이라 추정했다. “3박이지만 반드시 왈츠라고 볼 수 없고, 폴란드의 마주르카·폴로네이즈가 혼재된 스타일이다. 쇼팽은 젊을 때일수록 고국의 스타일을 더 많이 드러냈다.” 그는 또 “젊어서 쓴 폴로네이즈를 출판하지 않고 남긴 것들이 다수 있는데, 그때 떠올랐던 단상을 메모해 놓은 것은 아닐까 추정해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런 스타일과 종이의 상태 등을 종합했을 때 이번 작품은 1830년대 초반, 즉 쇼팽이 프랑스 파리로 건너간 직후인 20대 초의 작곡으로 추정된다.
지나치게 짧다는 점도 독특하다. 피아니스트 백건우는 “이렇게 짧은 작품에 쓰기에는 무겁고 깊은 재료”라며 “다른 중대한 작품을 위한 아이디어였을 가능성이 보인다”고 했다. 폭풍우 같은 도입부에 왈츠가 이어지지만 총 길이는 24마디이고, 전체 연주는 한 번 더 반복하도록 돼 있어 총 48마디다. 군데군데 표기법의 오류가 보이는데 악상 기호와 손가락 번호까지 적혀있다. 모건 박물관 측은 “이런 세세한 표기로 미뤄봤을 때 쇼팽은 이 곡이 언젠가 연주되리라 생각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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