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사소송법·집행법 대가…이시윤 전 감사원장 89세로 별세

이지영 2024. 11. 10.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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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97년 12월 감사원장 퇴임식에서 발언하는 이시윤 전 감사원장. 연합뉴스


국내 민사소송법과 민사집행법의 일인자로 민사법 학계 전반에 큰 영향을 끼쳤고 초기 헌법재판관으로 헌재의 이론적 기틀을 세우는 데 크게 기여한 이시윤 전 감사원장이 9일 별세했다. 89세.

1935년 서울에서 태어난 고인은 서울고,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고 1958년 10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해 판사가 됐다. 모교에서 6년간 교수로 일하기도 했다. 훗날 인권 변호사로 활동한 조영래 변호사 등 많은 제자를 가르쳤다.

1980년대 서울고법 부장판사 시절 쓴 민사소송법(이후 ‘신민사소송법’으로 개칭) 교과서는 이 분야의 독보적인 베스트셀러로 학계와 실무계에 큰 영향을 줬다.

독일어와 일본어에 모두 능해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독일 이론을 소개해 민사소송법의 ‘탈일본화’에 공헌했다. 자타가 공인하는 민사소송법 일인자였다.

1988년 이일규(1920∼2007) 대법원장 지명으로 초대 헌법재판관이 됐다.

헌법재판소가 초기에 이론적 기틀을 세우는 데 크게 기여했다. 독일의 헌법재판 제도에 관해 많이 연구했고, 이를 토대로 초대 조규광 헌재소장을 설득해 국내에 도입하는 등 초창기 헌법재판 제도 확립에 공을 들였다. 제도 정착을 위한 외부 활동에도 힘쓰고 책자도 펴냈다.

특히 당시 헌법재판에서도 민사소송과 같은 가처분이 가능하다는 논지를 전개해 도입을 강력히 주장했다. 다만 재판관 재직 시절에는 실현되지 못했다고 고인의 한 지인은 전했다. 헌법재판 가처분 제도는 이후 도입돼 현재 널리 활용되고 있다.

논픽션 작가 이범준씨의 책에 따르면 ‘한정 합헌’ 등 헌재의 각종 결정 양식이 고인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공권력을 문제 삼는 ‘권리구제형 헌법소원’이 만들어진 것도 고인의 아이디어 덕분이었다. 또 검찰의 불기소도 헌법소원 대상으로 삼기 위한 논리적 근거를 만들었다.

헌법재판관 임기를 9개월 남긴 1993년 12월16일 총리로 영전한 이회창씨의 후임으로 김영삼 정부 2대 감사원장에 발탁됐다.

판사 시절에는 춘천지법원장에 이어 수원지법원장을 지냈다.

한국민사법학회 회장을 지내며 민사법 학계를 이끌었고 한국민사소송법학회와 한국민사집행법학회를 각각 창립해 초대 회장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는 신민사소송법, 민사집행법, 판례해설 민사소송법, 민사소송입문, 주석민사소송법, 주석민사집행법 등이 있다.

고인의 유족은 아들 이광득(광탄고 교장)·이항득(사업)씨와 며느리 김자호·이선영씨, 손녀 이지원(초등교사)씨, 손녀사위 류성주(서강대 교수)씨 등이 있다. 빈소는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특1호실, 발인 12일 오전 8시, 장지 안산시 와동 선영. 02-2227-7500

이지영 기자 lee.jiyoung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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