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머스크 사용설명서 [김선걸 칼럼]

김선걸 매경이코노미 기자(sungirl@mk.co.kr) 2024. 11. 10. 21:0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다시 기업인이 이끄는 나라가 됐다.

트럼프도 기업인이다. 그러나 이번 미국 제47대 대통령 선거에서 가장 돋보인 인물은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다.

머스크는 트럼프에 베팅했다. ‘도박’이라고들 하지만, 도박치고는 빈틈없이 치밀했고 가치지향적이었다.

미국 정치에 부러운 부분이 있다. 기업인들이 거침없이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커피 하나로 매출 40조원이 넘는 스타벅스를 키운 하워드 슐츠 창업자. 그는 지난 2020년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결국 무소속 후보의 한계로 포기했지만 행동은 거칠 게 없었다. 지난해에는 노조를 탄압했다는 이유로 의회 청문회에 불려 나왔다. ‘사회주의자’ 버니 샌더스 의원과 신랄한 논쟁을 벌인 일화는 유명하다. 그는 ‘노조는 필요 없다. 스타벅스는 직원을 최고로 대우한다’며 한발도 밀리지 않았다.

한국에선 보기 힘든 광경이다. 안철수 의원처럼 사업을 떠나 정치에 투신하면 모를까. 머스크나 슐츠처럼 큰 기업 경영과 정치 참여를 병행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한국에선 정치인이 기업을 괴롭히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평생 월급 한 번 받아본 적 없는 시민단체 출신 의원이 수만 명을 고용하고 해외에서 찬사받는 기업인을 국회에 불러 꾸짖기도 한다. 한마디로 코미디다. 개발 독재 시대에야 정경유착을 견제한다는 명분이라도 있었다. 이젠 ‘생떼’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머스크는 트럼프 정부에서 ‘정부효율화위원회’를 맡는다고 한다. 공무원 구조조정까지 하는 자리다. 머스크는 캘리포니아에 테슬라 전기차 공장을 지으려다 인허가를 미적거리자 곧바로 텍사스로 옮길 정도로 규제에 반감이 크다. 스페이스X의 우주선을 발사하는 캘리포니아 인근 ‘해안위원회’가 생태계 보호를 들어 방해하자 위원회를 고소했다.

그는 이제 테슬라의 전기차 정책, 스페이스X의 우주 개발, 뉴럴링크의 실험 규제 등에 입김을 끼치는 사람이 됐다. 규제 철폐에 속도가 붙을 것이다.

머스크는 트럼프 선거에 약 2500억원을 지원했다. 본인이 추구하는 것을 이루기 위한 ‘가치 투자’였다.

머스크는 기존에는 민주당 성향이었다. 그러나 첫아들이 16세 때 성전환 수술을 하는 데 동의한 것을 뒤늦게 후회했다. 이후 ‘동성애자들이 내 아들을 죽였다’며 민주당을 비판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노조를 용납하지 않는 테슬라를 차별 대우했다. 트위터를 인수했는데 표현의 자유를 공격했다. 결국 머스크는 공화당 쪽으로 돌아섰다. 본인의 가치를 따라서다.

기업인이 정부에 참여하면 장점이 많다. 기업 경영자는 경제 메커니즘과 일자리 창출 원리를 이해한다. 조직관리의 리더십과 이해관계자(Stakeholder) 간 조정 경험도 있다. 기술 혁신에 민감하고 글로벌 네트워크의 강점도 있다. 머스크는 정부를 테슬라처럼 민첩한 조직으로 만드는 데 기여할 것이다.

물론 트럼프와 머스크가 완벽하다는 말은 아니다. 둘의 스타일상 곧 파열음이 일 수도 있다. 그러나 머스크 같은 기업인을 정부 개혁의 주체로 만들다니. 미국 대선이 이런 모험심과 창의성을 보여줄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한국이야말로 기업으로 성장한 나라다. 그런데 기업인들은 감옥에 가고 국회에서 호통을 듣는다.

故 이건희 삼성 회장이 했다는 말이다. “기업은 2류, 관료는 3류, 정치는 4류.”

기업은 이미 세계 1류가 됐다. 그런데 관료와 정치는 더 퇴보했다. 아직도 정치·행정 분야에 기업인 출신이 드물다. 기업인 역할을 늘리는 것이 수준을 올리는 주효한 방법이다.

[주간국장 kim.seonkeol@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84호 (2024.11.13~2024.11.19일자) 기사입니다]

Copyright © 매경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