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달이 함께 사는 금강이 좋아요" 자갈에 그린 아이들의 마음

박은영 2024. 11. 10.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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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막 소식 194일-196일차] 금강 천막농성장 200일 잔치에 놀러 오세요

[박은영 기자]

 천막농성장에 찾아온 큰기러기 친구들
ⓒ 임도훈
"기러기다."

큰기러기 한 무리가 자갈 위에 앉아 쉬고 있다. 기러기가 줄지어 날아오는 모습이 많이 보이는 것을 보니 또 한 계절이 바뀌어가고 있음이 느껴진다. 아침저녁으로 출퇴근하는 민물가마우지와 달리 먼 길을 날아가는 기러기의 도열은 아름다워 보인다. 잘 짜인 어떤 일을 해내야 하는 것처럼 균형 있게 변하는 도열은 마치 싱크로나이즈드 공연을 보는 듯 하다. 오랜 시간 터득했을 저들만의 삶의 방식이기에 절대로 가볍게 볼 수 없는 몸짓이다.

저녁이 다가오면 난로를 켠다. 오후 4시만 지나도 뜨겁던 햇빛이 어느샌가 사라지고 기온이 뚝 떨어지기 때문이다. 주전자 올려놓고 물 끓이면서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기도 좋다. 바람은 차도 작은 온기는 큰 위로가 된다. 적적할 만하면 찾아오는 이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이 투쟁을 어떻게 이어갈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시간들이 이 겨울을 따뜻하게 한다.

금강 자갈에 새기는 마음… 강은 흘러야 한다
 제10회 금강한마당 <돌아온 금강 자갈 아트> 부스의 모습
ⓒ 박은영
지난 9일, 세종호수공원 일원에서 금강유역환경회의가 주최하는 '금강한마당'이 열렸다. 호수공원을 찾는 시민들에게 다양한 체험부스와 전시를 통해 금강의 이야기를 건네는 시간이었다. 보철거를위한금강낙동강영산강시민행동에 소속된 대전충남녹색연합과 대전환경운동연합은 금강의 자갈에 그림을 그려 간직하는 '자갈아트' 코너를 마련해 세종보가 재가동 되면 볼 수 없을 자갈과 모래의 이야기를 시민들과 나누었다.
아들이 수능을 앞두고 있다며 자갈에 시험을 잘 보게 해 달라고 소원을 쓰던 한 학부모는 금강 물을 가두면 물이 많아 보여 좋지만, 결국 물이 썩게 되면 안 되는 일 아니겠냐고 좋은 일을 하신다고 응원했다. 얼가니새(대전환경운동연합 이경호 사무처장)가 '반려돌을 들여가라'고 시선을 끌다 보니 주로 아이들이 많이 관심을 보였다. 아이들은 고사리 같은 손으로 꽃도 그리고, 동물을 그리며 금강에서 데려온 자갈을 소중히 들고 갔다.
 금강한마당 참가자가 그린 자갈아트
ⓒ 박은영
'수달이와 함께 하는 금강.'

금강에 수달이 사는 것을 알고 있다며 수줍게 이야기 하던 아이의 손 끝이 완성한 모습이다. 아이들은 세종보를 모른다. 하지만 금강에 사는 수달, 흰수마자를 안다. 고라니와 백로의 모습을 기억한다. 물이 많아야 좋다고 말하지 않는다. 수달이 함께 사는 금강이 좋다고 말한다.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금강을 물려줘야 할지, 아이들은 이미 답을 하고 있다. 그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은 세종시와 환경부 뿐이다.

아직도 있습니다… 200일 잔치에 놀러 오세요
 새로 고친 그라운드 골프장
ⓒ 임도훈
'딱~ 딱~'

금강스포츠공원 야구장과 그라운드골프장 공사가 끝났다. 그간 이용하던 시민들이 공사가 마무리되는 날을 어떻게 아셨는지, 지켜보고 계시다가 공사 차량이 나가자마자 골프를 칠 채비를 한다. 아침이면 어김없이 딱딱 소리가 난다. 할머니 한 분이 아직도 여기 있냐며, 이제 그만 나가라고 걱정 반, 나무라는 말 반을 던지시지만 그 간 못 만났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반갑게 인사해 주신다.

금강한마당 현장에서 아들과 자전거를 타고 호수공원을 온 아버지 한 분을 만났는데, 한두리대교 아래 천막을 보았다며 말을 거신다. 비가 많이 왔다는 이야기를 나누다가 여름 큰비에 잠겼던 그라운드 골프장과 야구장도 다 고쳤다고 하니 '또 잠길텐데 거길 다시 다 깔았냐'며 안타까워한다. 가시는 길에 천막농성장에 언제든 놀러 오라고 하니 거길 진짜 밤새 지키는 거냐고 놀라며 '힘내라'고, 놀러 가겠다고 답한다.
 세종보 천막농성장 200일 기념문화제 웹포스터
ⓒ 보철거시민행동
100일이 어제 같은데, 11월 14일이면 천막농성을 시작한 지 200일이 된다. 그동안 세종보는 닫히지 않았고, 금강의 자갈과 모래도 수몰되지 않았다. 아직도 흐르는 금강을 찾아 오는 이들로 북적이고, 명랑하고 따뜻하다. 큰 비로 세 번이나 천막을 잃었어도 우리는 매번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이 투쟁을 지지하는 이들의 지원과 후원이 끊긴 적이 없기 때문이다. 오는 200일에도 우리는 또 투쟁의 결의를 다질 것이다.
 세종의 붉은 노을
ⓒ 김병기
"멋지네."

뱅기선배(<오마이뉴스> 기자)가 멋진 노을 사진을 보내주었다. 거대한 홍시를 몇 개 하늘에 던져 터트린 것 같이 붉고 촉촉한 하늘이다. 멋지다는 말로 다 표현되지 않는 가을하늘을 한동안 바라보니 그 순간만큼은 걱정이 다 사그라든다. 이 흐르는 금강 곁에서, 그렇게 매일 노을을 바라봐도 참 좋을 날들이겠다 싶은 생각도 든다.

둘째아이가 할아버지 활동가(대전충남녹색연합 문성호 상임대표)와 강가에서 한참을 논다. 물수제비 뜨는 것을 알려주겠다는 할아버지는 돌 고르는 법, 던지는 법을 알려준다. 그 모습, 그 하늘 위로 말똥가리가 날고 물총새도, 할미새도, 참새도, 딱새도 잘 지낸다고 안부를 전한다. 농성장 앞을 헤매던 아기고라니들은 종종 나타나서 우리를 보고 지나간다.

이 평화로운 일상을 어리석은 욕심으로 잃게 되지 않기를 바라며 천막농성장의 하루를 또 보낸다.
 물수제비 뜨기 삼매경 중인 할아버지 활동가와 둘째아이
ⓒ 박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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