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이초 플래카드 떼라는 학부모 민원, 이게 상징 같았다"
[이영광 기자]
초등학교는 6학년제여서 입학부터 졸업까지 6명의 담임 선생님을 만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부득이하게 담임 선생님이 교체돼도 7~8명 정도다. 그러나 전북 전주의 한 초등학교의 5학년은 올해 담임 선생님이 6번 교체됐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지난 5일 방송된 MBC <PD수첩>에서는 '아무도 그 학부모를 막을 수 없다' 편이 전파를 탔다. 이날 방송에서는 올해 한 반에서 6번 담임 선생님이 교체된 전주의 한 초등학교를 담았다.
방송 내용에 따르면, 학부모 2명은 올해 해당 학교에 각각 113회, 61회 전화했다. 교사가 아이의 자세를 바로잡아 준 것이 아동학대라며 신고하겠다고 하거나, 자녀 위주의 세세한 보살핌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아이를 방치했다고 항의했다. 또한 생활기록부에 기재된 내용을 원하는 대로 수정해달라고 요구했다. < PD수첩>은 두 학부모의 주장과 함께 학교 측, 그리고 학생들의 주장도 담았다.
▲ MBC < PD수첩 > 예고의 한 장면 |
ⓒ MBC |
- 방송 끝낸 소회가 어때요?
"이번 방송은 취재가 상당히 깊게 이뤄진 경우입니다. 많은 교사들을 만났고 교육청 소속 변호사, 또 교사 단체 등을 만나며 사안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또한 A, B 학부모와도 긴 시간 인터뷰했던 것도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다각적으로 볼 수 있는 계기가 됐습니다. 취재가 되지 않아 아쉬울 부분이 많지 않았던 경우라 그 자체로도 기억에 남을 듯합니다. 다만 상황에 대해 입체적으로 다루려다 보니 제도 개선안을 충실하게 보여드리지 못한 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 어떤 계기로 취재를 시작하게 됐나요?
"전북 교사노조 측에서 전해주셨어요. 당시 해당 학교의 5학년 담임 교사가 5번 바뀌고 6번째 교사를 찾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 말 자체가 큰 충격이었어요.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보고 싶었습니다."
- 지난해 서이초 교사 순직 이후 교권에 대한 문제가 이슈로 됐잖아요. 그건 어떻게 보셨어요?
"너무 안타까운 일이었고 교권이 무너지는 현실을 많은 사람이 알게 됐습니다. 그때는 제가 한창 교육 다큐멘터리 <교실 이데아>를 만들고 있을 때였어요. 대입과 평가라는 관점에서 교사의 권한이 붕괴되고 있는 지점을 눈여겨보고 있었습니다.
해당 다큐는 아무래도 중등교육 중심일 수밖에 없었는데요, 초등학교에서 일어나는 교권의 위축은 상당히 다른 양상으로 전개된다는 것을 서이초 사건을 통해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PD수첩>으로 팀을 옮긴 후 초등학교 교사들의 교권 회복에 대해 취재 한번 해보고 싶던 차에 전주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을 만나게 됐습니다."
- 방송 도입부를 보면 학부모 민원 중 하나가 서이초 선생님 추모 플래카드 떼 달라는 거였어요.
"A 학부모의 많은 녹취 자료를 살펴봤는데 서이초 49재 플래카드를 떼라는 민원이 지금 해당 학교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의 상징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플래카드를 없애라는 학부모와 그 필요성을 설득하는 교장과의 대화가 그동안 A, B 학부모와 학교 사이에 존재했던 간극을 한 번에 보여주는 장면이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 한 학급 담임 교사가 6번 바뀌고 지금은 7번째죠. 담임 교사가 자꾸 바뀌면 교사도 아이들도 서로 적응하는 데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은데요.
"어른에게도 자신을 관리·감독하는 사람이 한 해에 6번 바뀌면 적응이 고통스러울 겁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어땠을까요? 몇 배 힘든 시간을 보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교사도 고통이었겠지만 학생들이 더 문제인 거였죠. 취재하며 학생들과 이야기 나누는 과정에서 더 마음이 아팠습니다."
- A와 B 학부모를 직접 인터뷰하셨잖아요. 이 학부모들은 자신들의 민원이 일상적이고 악성 민원이 아니라는 입장입니다.
"어느 정도가 악성 민원이고 어떤 것은 정당한 민원인지를 확인해 보는 게 이 프로그램의 취지입니다. 시청자들도 그 차이를 구별하는 기회가 되었지 않을까 싶습니다."
- 학부모들을 응대하는 교장과 교감 선생님은 어떤가요?
"서이초 사건 이후 일선 담당 교사가 직접 민원을 상대하는 것을 최소화하게 됐어요. 물론 그게 아직도 잘 이뤄지지 않는 학교도 많습니다. 그렇다고 교장, 교감에게 이 일을 전담하게 하는 것도 능사가 아니라는 걸 이번 사건 보며 많이 느꼈습니다.
작은 사업장에서도 민원을 전담하는 전문가들이 존재합니다. 핸드폰 고장 났다고 만든 엔지니어에게 직접 연락해서 따지는 일은 없잖아요? 그런데 학교는 모든 것이 교사들에게 쏟아져 들어오는 구조입니다. 전문 창구를 통해 여러 민원을 능숙하게 조정할 필요가 있는데 여기에 전문성을 지니지 않은 분들이 모든 민원을 감당하고 있어요.
그건 교육 기관 관리자가 갖춰야 할 일반 능력은 아닙니다. 또한 민원을 상대할 때도 카메라, 녹음 장치 등이 준비된 방도 있어야 합니다. 그런 게 현재 마련돼 있지 않으니 일선 교사도, 교장과 교감과 같은 책임자도 모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죠."
▲ MBC 방송화면 갈무리 |
ⓒ MBC |
"교사의 권한이 존중돼야 하는데 그것이 무력화된 측면이 있습니다. 과거에 교사의 권위는 법이 아닌 문화로 보호됐습니다. 하지만 문화가 달라지자, 교사는 맨몸으로 많은 문제를 견뎌야 하는 처지가 됐습니다. 김영삼 정부의 5.31 교육 개혁 때 수요자 중심으로 공교육이 재편되고, 사교육 시장에서 교육을 서비스로 경험한 시민들이 많아졌습니다.
요즘 초등학교는 평가가 간소화되고 성적이라는 것도 명확하게 주지 않습니다. 공부는 학원에서 하는 것으로 생각해요. 그래서 학교에서는 잘 있다 오면 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게 됐어요. 그러다 보니 이제 공교육에서 교사를 존중하지 않는 분위기가 고착화됐습니다. 그리고 교사를 보호할 제도는 여전히 부실한 상태이고요."
-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셨을 것 같아요.
"학부모 민원의 경우 이를 전문적으로 다룰 제도가 마련돼야 할 것이고요, 또 악성 민원의 경우에는 이를 막을 장치가 마련돼야 합니다. 당장 교권보호위원회에서 교권 침해를 한 학부모에게 내릴 제재가 별로 없습니다. 서면 사과와 함께 교육 이수를 해야 하는데 교육을 거부하면 최대 300만 원 과태료 내는 게 전부입니다.
또한 학교를 보호하기 위해 교육청이 긴급 보호명령 갖는 것도 검토해 볼 만 합니다. 법원에 신청해 인정 받으면 학교, 교사 등을 문제가 있는 대상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하는데 현재는 법원에 신청할 권한이 지자체와 경찰에만 있는 것으로 압니다. 악성 민원의 경우에는 실제로 적용할 방편이 마련돼야 하는데 그 고민이 아직 부족해 보입니다."
- 마지막으로 한마디 해주세요.
" 취재 과정에서 제가 학부모로서 교사를 대하는 모습이 어떠했는가 많이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악성 민원이라는 문제는 소수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문화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모두 타인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예민한 문제들을 두고 교사와 학부모가 어떻게 성의를 다해 풀어갈 것인지를 고민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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