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산 세계화 끝판왕’ K-잠수함의 퀀텀 점프가 온다 [이동주의 신해양시대-13]
폴란드, 캐나다 등에 수출 임박
초일류 해양강국 궤도 진입 위한
마지막 도약이 눈앞에….
상대성이론과 함께 현대물리학의 쌍벽을 이루는 양자역학은 극강의 난이도로 유명하다. 인간의 직관과 상식을 거스르는 기괴한 양자 현상들 때문이다. 살아있는 동시에 죽어있는 ‘슈뢰딩거 고양이’나 시공을 초월하는 ‘양자얽힘’의 신비를 논하는 건 과학자보다 시인의 영역처럼 보인다. 천재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도 “양자역학을 완벽히 이해한 사람은 세상에 하나도 없다”라고 했다. 뭔가를 이해한다는 게 무슨 뜻인지부터 새로 이해해야 하는 곳이 양자 세계다.
그런데도 우리는 지금 양자 원리를 이용한 첨단 과학기술을 누리며 살고 있다. 앞으로 인공지능에 이어 양자컴퓨터까지 활성화되면 또 다른 차원의 신세계가 펼쳐질 것이다. 100여 년 전 원자 속 전자가 불연속적으로 궤도를 넘나드는 운동을 발견하고 이름을 붙인 ‘양자 도약(quantum jump)’은 이제 경제, 사회 분야에서도 흔히 쓰이는 용어가 됐다. 기존의 틀을 벗어나 새로운 차원으로 뛰어오르는 혁신적 변화라는 의미다.
지금 한국 방위산업은 그 퀀텀 점프의 시기를 맞고 있다. 오랜 세월 묵묵히 축적해온 에너지가 국제 안보 질서의 지각변동을 계기로 화산처럼 분출하는 형국이다. 자주포, 전차, 전투기 등은 이미 본격적인 수출 궤도에 올라섰고, 함정 분야에서도 최근 한화오션의 미 해군 MRO(유지·보수·정비) 사업 수주로 세계화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특히 미국 대통령선거 직후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은 윤석열 대통령과 통화하면서 조선산업과 함정 MRO에 관한 긴밀한 협력을 희망했다. 한미 정상 간의 첫 상견례용 통화에서 이런 구체적 현안을 언급하는 것 자체가 외교적으로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앞으로 미국의 해양 정책분야에서 한국의 참여 확대 전망은 파랑 신호등이 켜졌다고 할 수 있다.
이제 K-방산 세계화엔 최후의 관문만이 남아있다. 바로 ‘방산 끝판왕’에 해당하는 잠수함의 퀀텀 점프다. 그리고 화룡점정이 될 마지막 꿈도 거의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현재 한국산 잠수함에 큰 관심을 보이는 나라는 폴란드와 캐나다, 중동국가 등이다. 폴란드의 경우 지난달 한국을 국빈 방문한 안제이 두다 대통령이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을 만나 육·해·공 전 분야에 걸친 방산 협력 확대 방안을 논의했다. 지난 10년간 K-방산 핵심고객이 된 폴란드는 잠수함 3척을 도입하는 ‘오르카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해군력 증강에 나선 캐나다 역시 최대 12척까지 도입하는 대규모 사업을 진행 중이고 중동에서도 4척을 필요로 하고 있다.
잠수함을 ‘방산 끝판왕’이라 하는 이유는 당연히 거대한 스케일과 초고난도 기술력 때문이다. 잠수함은 가격부터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한다. 한화의 최신형 모델 장보고-lll 배치-ll 1척은 K-9 자주포 수백 대, FA-50 전투기 수십 대와 맞먹는다. 소형 자동차 10만 대를 수출하는 것과 비슷한 규모라 하면 좀 더 실감이 날 수 있겠다.
잠수함은 대체 왜 이리 비쌀까. 간단히 말하면 ‘모든 게 특수하기 때문’이다. 바닷속을 누빌 전투함을 만들려면 고민할 문제가 한둘이 아니다. 건조과정에 약간의 오차만 생겨도 엄청난 수압에 의해 찌그러진 깡통처럼 된다. 은밀성이 생명이니 물 밖으로 자주 나와도 안 되고 시끄러운 소리를 내도 곤란하다. 함 내에서 불이 나도 물속에선 훨씬 난감해진다. 여기에다 적을 탐지하고 제압할 첨단무장까지 연구하려면 세상엔 양자역학만 어려운 게 아님을 새삼 느끼게 된다.
세계 각국이 K-잠수함에 경탄하는 이유도 이 수많은 난제를 해결해낸 독보적 솔루션과 가성비 때문이다. 공기불요추진체계(AIP)와 리튬이온배터리를 결합한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대표적 기술로서 디젤 잠수함 가운데 최장 시간 잠항이 가능하다. 수직발사관을 비롯한 초정밀 무기체계와 스텔스 기능 역시 탁월하다. 이런 첨단성능들이 국내 운영을 통해 검증됐을뿐더러 K-방산 특유의 빠른 납기와 사후서비스도 강점이다.
물론 최후 관문을 통과하기까지 넘어야 할 장애도 많다. 세계무대에서 겨뤄야 할 상대는 프랑스, 독일, 스웨덴, 일본 등 말 그대로 ‘월드클래스’ 해양 강국들이다. 지리적, 역사적, 정치적으로도 한국보다 유리한 위치에 서 있다. 잠수함 같은 전략자산 도입은 소모성 무기 거래와 차원이 다르다. 수입국 입장에선 자국의 해군 운용체계 변화와 정치·외교·군사적 요소까지 감안해야 하는 중대 현안이므로 신중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40년 전 맨땅에서 시작해 오늘날 ‘잠수함 명가’를 일궈내기까지 한화오션이 흘려온 땀과 눈물은 언제나 알찬 결실로 되돌아왔다. 지난 몇 년을 되돌아보더라도 K-방산의 도약은 양자역학 같은 마법의 연속이었다. 아무도 쳐다보지 않을 땐 조용한 파동 같았지만, 세계의 이목이 쏠리자 단숨에 ‘명품’ 입자로 돌변해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이제 명품 잠수함이 육중한 퀀텀 점프를 시도할 마법의 시각이 다가오고 있다. 초일류 해양 강국을 염원하는 온 국민의 응원이 필요한 때다.
글/ 이동주 한화오션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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