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맨도 감탄한 미스기관사 '막춤'…"누가 코레일에 독 풀었어"

김홍준 2024. 11. 9.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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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보] 구로기관사 홍보실에서 숨 쉰 채 발견.
이 동영상 내용을 고속열차(KTX) 출발 안내방송에 맞춰 바꾸면 이렇다. ‘손님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 열차는 ‘B급행’입니다. 저희 ‘미스기관사’는 손님 여러분께서 즐겁고 편안하게 여행할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하겠습니다. 열차 출발합니다.’

지난 10월 28일 오전 서울역 14번 승강장에서 한국철도공사(코레일) SNS팀의 ‘미스기관사’ 강하영 대리가 정복 상의를 벗어 어깨에 걸치고 있다. 최기웅 기자

한국철도공사(코레일) SNS팀은 이 제목의 유튜브 동영상으로 출범을 알렸다. 1년 전인 지난해 12월이었다. 각각 SNS팀과 이 팀 강하영(28) 대리의 예명인 B급행과 미스기관사. 뭔가 심상치 않다. 제목도 낚시천국처럼 입질이 세다(제목 클릭하면 동영상으로 이어짐).

홍원우 코레일 SNS팀장은 “저희는 B급 감성을 급행 탄 듯 짧고 빠르게 전한다”며 “시쳇말로 ‘병맛’을 추구한다”라고 했다. ‘병맛'’은 어떤 대상이 맥락 없고 형편없으며 어이없음을 뜻하는 온라인 용어. 그런데 이 '병맛'이 큰일을 냈다. 공기업인 코레일이 제작한 유튜브 홍보 동영상이 320만 조회 수를 기록하면서다. 100만 클릭을 넘긴 콘텐트도 10개나 된다. 반응도 뜨겁다. 시청자들의 월평균 ‘좋아요’가 6만 개에 달한다. 충주를 알린 ‘충주맨(김선태 충주시 주무관)’이 “잘하네”라고 감탄했단다. 급기야 할리우드에서도 같이 일하자고 연락이 왔다.

상식은 은하철도999에 태워 안드로메다에 버리고, 열차 뒤 칸에서 기묘한 이야기와 병맛을 조제하는 홍 팀장과 강 대리, 촬영담당 김선엽(34) 대리와 공작소(28·예명)를 만났다.

지난달 28일 서울역 14번 승강장. 이 사람, 좀 아프다더니. 카메라만 들이대면 살아난다. 기어이 정복을 벗어 서울역 공기가 요동치도록 머리 위로 돌리고 어깨에 걸친다. 홍 팀장, 김 대리와 함께 물 흐르듯 촬영을 이어갔다. 카메라를 내렸더니 금세 “정복 입고 이래도 되나 몰라요”며 진지해졌다. 누군가 답했다. “미스기관사니까 그래도 되지요.”

미스기관사? 이젠 직장에서 금기어가 되다시피 한 ‘미스’와 '기관사'의 합성. 강 대리는 “그 전에 난 ‘구로기관사’였고 홍보실 SNS팀에 합류하면서 개명한 것"이라며 웃었다. 이들 B급행을 만나기 전 1호선 전철 내에서 코레일 홍보 동영상을 봤다. 코레일 젊은 직원들이 나와 군무를 펼치는데, 그중 한 명이 미스기관사 강 대리다. 그의 춤 실력은 다음의 이 동영상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코레일 SNS팀인 'B급행'의 강하영 대리, 홍원우 팀장, 김선엽 대리(왼쪽부터)가 서울역 고속열차(KTX)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최기웅 기자


# KTX-청룡 세계로 가!!!

“기관사님 KTX-청룡 세계로 가?” “세계로 가!” 이어 미스기관사의 20초 막춤. 조회 수 320만에 댓글이 3600여 개. ‘공식 채널이라니…헉 최고네요.’ ‘연봉 협상할 때 꼭 이 영상 쓰세요 ㄷㄷ.’ 한 소방서 유튜브 채널 운영자는 이런 댓글을 남겼다. ‘이 영상 보고 나태했던 오늘 하루를 반성합니다.’

Q : 간호사에서 기관사로, 다시 미스기관사로 ‘전업에 전업’을 했습니다.
A : 여행과 운전을 좋아합니다. 간호사로 출퇴근하면서 문득 궁금해지더군요. 이 전철 모는 사람은 누구지? 자격증 따고 코레일 공채에 합격했습니다. 구로기관사는 지하철 1호선을 3년간 몰면서 코레일 홍보 동영상을 찍었을 때의 예명입니다.
그런데 왜 '미스'를 붙였을까. 여성 호칭인 미스(Miss)는 여성기관사를 뜻하고, '보고 싶은(miss)' 기관사가 되고 싶어하기 때문이라고. 마침 미스트롯 시즌3에 나간 영향도 조금은 있었다는 게 강 대리의 설명. 그는 “미스트롯 출연분량은 통편집됐다. 부모님께 부끄러울 뻔했다”며 웃었다.

김영옥 기자

Q : 충주맨이 “잘한다”고 했다는데요.
A : 샤라웃(칭찬한다는 뜻의 신조어) 해줘서 동영상으로 화답했어요. 충주맨과 B급행이 협업할 수 있다면, 우리야말로 영광입니다.

Q : 알아보는 이들도 많겠습니다.
A : 엄마와 함께 온 여자아이가 저를 알아보고는 ‘나도 기관사가 되는 게 꿈’이라고 하더라고요. 정말 뿌듯했어요. 촬영 때는 승객들이 바나나와 과자를 건네주며 외쳐요. '파이팅'이라고요.

Q : 기관사 업무는 계속할 예정입니까.
A : 본래 업무가 기관사입니다. 기량 유지를 위해 운전을 하고 있어요. '보고 싶은' 기관사가 돼야죠(웃음). 인터뷰 중 부산발 KTX가 들어왔다.

# 부산행3
미스기관사가 전화를 받더니 급히 뛰어간다. 좀비들이 달려든다. KTX로 피한 미스기관사. 그런데 그 앞에 역무원이 나타나 엉뚱하게도 “기차표를 보여주쇼”라고 한다. 그것도 영어로. 미스기관사는 한술 더 떠 영어로 답한다. “어디서 티켓을 사는데요?”

Q : 영화 ‘부산행’을 패러디한 이 동영상에 십 수 명이 등장합니다. 어떻게 섭외했나요.
A : 강=하하, 사실 우리 네 명이 다른 옷으로 갈아입고 돌아가면서 연출했어요. 1인 3역 정도입니다. A : 공=촬영과 편집을 긴박하게 했습니다. 55초의 짧은 동영상에 긴장과 홍보를 동시에 담아 개인적으로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이에요.

Q : 긴장은 알겠는데, 홍보라면.
A : 김=외국인을 겨냥한 동영상입니다. 영화 부산행은 외국인들이 잘 알고 있어요. 그런데 한국에 온 외국인들이 코레일 접속 사이트를 잘 모릅니다. 조회 수가 10만 회가 넘었는데, 그중 70%가 외국인입니다. A : 홍=짤막한 영화 홍보 영상처럼 진행하다가 자연스럽게 우리 코레일 홍보로 이어지도록 했어요. B급 감성으로 만든 이 동영상을 보고 할리우드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자신들이 만든 영화와 코레일을 함께 홍보하자면서요.
지난 10월 말 기준 'B급행'이 출범 후 1년 남짓한 기간 만든 유튜브 동영상은 97개. 그새 구독자 수는 4만7000명에서 10만3000명으로 112%, 영상당 평균 조회 수는 2만2000회에서 27만7000회로 1159%나 증가했다.

김영옥 기자

Q : 일부러 B급을 추구하나요.
A : 강=회사에서 눈치 보지 말고 만들어 보라고 했습니다. 재미가 1순위가 돼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우리가 먼저 고객에게 손을 내밀어야죠.

Q : 모두 손뼉 치지는 않을 텐데요.
A : 공=B급 감성을 이해하지 못하면 장난으로 보일 겁니다. '이런 거 만들 돈으로 승객 편의나 직원 복지에 신경 써라'며. 그런데 시청자 반응도 차츰 '다 그런 거를 위해 이 사람들이 고생하는 것'으로 흘러가더라고요.

Q : 공적 영역에서 라이벌이 있습니까.
A : 홍=글쎄요. 아직 저희는 신생팀이라 경쟁 상대라고 하기는 어렵고요. 공군이 10여 년간 B급 감성으로 잘 홍보해 온 것 같습니다. 노하우가 대단합니다. 저희랑 함께 작업하기도 했지요.

Q : 미스기관사에만 의존하는 건 아닌지요.
A : 홍=그래서 미스기관사에 버금가는 캐릭터도 고민 중입니다. 투톱일지는 모르겠네요.
"예정 작품을 살짝 알려줄 수 있느냐"고 묻자 B급행에서는 세 가지를 말해줬지만, 천기누설 혹은 보안 누출이라며 못 들은 것으로 해달라고 했다.

# 꽁꽁 얼어붙은 한강 위로 지하철이 걸어 다닙니다
수은주가 곤두박질친 날. 미스기관사가 춤을 추고 철교 위를 지나가던 지하철 승객들이 "뭐야"라며 뜨악해한다. 이 동영상에 달린 댓글 중 하나. ‘도대체 코레일에 누가 독을 풀었을까.’

김홍준 기자 rimr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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