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쥐약 먹자, 할미가 손주 젖물려…'길냥이의 기적' 봤다
SNS가 고양이 콘텐트로 넘쳐나는 세상이 됐지만, 10년 전만 해도 반려묘는 드물었다. 하물며 길냥이는 혐오와 기피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동물원이 아니라 길에서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야생동물인 길냥이는 인간 일상의 길동무다.
여행작가로 생업을 삼던 이용한 시인은 2000년대부터 ‘길냥이 콘텐트’를 만들어온 원조 고양이작가다. 2007년부터 블로그에 고양이 사진을 올렸고, 2009년 베스트셀러가 된 첫 고양이 에세이 『안녕, 고양이는 고마웠어요』 이래 15권의 책을 냈다. 2011년 ‘고양이 춤’이라는 영화도 찍었다.
그가 보여주는 고양이들은 좀 다르다. 18년차 캣대디로서 시골 길냥이 70여마리와 끈끈한 유대관계를 쌓았기에 ‘장독대 결혼식’, ‘땅콩소년단 PTS’의 칼군무, 파밭에 출몰한 ‘파묘’ 등 유니크한 사진을 찍어 10만 구독자를 모았다. 4일 출간된 『고양이의 순간들』 1·2권에도 길냥이의 기적이 가득하다. “고양이는 오직 듣는 법을 아는 사람에게만 말한다”는 프로이드의 말이 떠오르는 장면들이다.
사실 그는 고양이에게 무심한 남자였다. 2007년 어느 늦은 밤, 길냥이 일가에게 간택당한 뒤 인생이 바뀌었다. “아내가 불러 나가보니 집앞 버려진 은갈색 소파 위에 고양이가 갓 태어난 새끼 5마리를 젖먹이고 있었어요. 달빛이 하이라이트처럼 비추는데, 운명인지 그 장면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죠. 며칠 지나니 걔들이 꼬물꼬물 돌아다니더군요. 쪼만한 애들이 먹을게 있나 싶어 밥을 주기 시작했고, 점점 동네 길냥이 수십 마리를 챙기게 됐어요. 블로그에 사진을 올리니 여행사진보다 반응이 5~6배 폭발적이더군요. 연중 절반은 바깥을 돌았는데, 그때부터 여행가가 ‘여행안가’가 됐네요.”
국내에 고양이 책이 없던 시절, 그의 책이 5만부가 팔리자 애묘인들에게 ‘고양이 작가’로 주목받으면서 사료 후원에 동참하는 팬들이 생겼다. 덕분에 시골에서 ‘고양이식당’ 3개를 운영할 수 있었지만, 이웃이 놓은 쥐약 때문에 슬픈 이별도 많았다. “봉달이와 덩달이라는 고마운 애들이 있었어요. 500미터 밖에서도 차소리를 듣고 마중을 나오는데, 눈이 오면 눈밭을 달려왔죠. 고양이가 보통 눈을 싫어하는데, 그애들 덕에 찍은 눈고양이 사진들이 귀한 작품이 됐어요. 봄이 되어 안보이길래 물어봤더니, 쥐약을 먹고 무지개다리를 건넜다더군요.”
온갖 위험이 도사리는 길위에 살면서도 뜨거운 모성애는 사람못지 않다. “대가족을 일군 ‘대모’라는 삼색이 할미냥이 있었어요. 새끼 중 ‘여리’라는 아이가 엄마가 됐는데, 어느날 쥐약을 먹었나봐요. 대모한테 가서 뭐라고 하는 것 같더니 다음날부턴 안보이고, 대모가 여리 새끼 ‘꼬미’를 성묘가 될 때까지 젖을 물리더군요. 자기 엄마한테 새끼를 부탁한 거죠. 일본 고양이섬에선 공동육아도 목격했어요. 고양이도 육아는 힘들거든요. 어미 세 마리가 돌아가면서 먹이를 구해오고, 새끼를 같이 먹이면서 돌보는 거죠.”
그가 출연한 다큐멘터리 ‘고양이춤’에 비친 꼬질꼬질한 길냥이들에 비하면 요즘은 잘 얻어먹고 깔끔한 길냥이도 많다. ‘동반자’ 길냥이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이 개선된 데는 그의 사진도 한몫했다. “저뿐 아니라 SNS로 고양이 사진이 확산된 덕이죠. 그래도 여전히 길냥이와 사람 관계가 가장 안좋은 나라가 한국이예요.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곳도 많거든요. 가난한 나라 모로코에선 노숙자도 얻어온 빵과 우유를 고양이와 나눠먹어요. 그런 걸 주면 학대라고 욕하지만, 거기 고양이는 그걸 먹고 삽니다. 없는 사람들이 우유를 나눠주는 마음이 중요한 거죠.”
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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