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2병보다 더한 대2병 왔다" 대치동 아이들 덮친 이상현상
헬로페어런츠(hello! Parents)가 3주년을 맞아 양육자의 고민에 직접 답합니다. 지난달 2주간 온라인을 통해 구독자 의견을 청취한 결과 아이의 학습에 대한 고민이 빠지지 않았습니다. 이를 들고 국내 최고 전문가 5인을 다시 찾아갔습니다. ‘훈육의 대가’ 조선미 아주대병원 정신건강의학교실 교수에 이어 두 번째로 만난 사람은 김은주 강남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입니다. 학습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히는 공부 정서에 천착한 분이죠.
" 10년 전과 비교하면 학습 문제로 정신과를 찾는 아이들 연령대가 훨씬 넓어졌어요.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성인이 된 대학생까지 옵니다. 학군지일수록 이러한 현상이 더욱 극명하게 나타나죠. "
강남세브란스병원은 ‘사교육 1번지’로 꼽히는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현주소를 확인할 수 있는 바로미터 같은 곳이다. 대치동과 마주한 도곡동에 위치해 있어 강남권 아이들에게 가장 접근성이 높은 대학병원이기 때문이다. 11월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시즌이 다가올수록 환자가 늘어나고, 집중력 향상이나 긴장감 완화를 위한 약 처방 요청이 쇄도한다. 김은주 교수는 신촌세브란스와 은평병원을 거쳐 강남에 자리 잡은 터라 더욱 민감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임시방편으로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학습 문제가 시작된 진짜 원인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선 지능 같은 인지능력뿐 아니라 정서 등 비인지능력을 면밀하게 살펴봐야 한다. 절대평가와 상대평가 방식이 섞여 있는 만큼 개인적 특성은 물론 사회적 특성까지 고려할 필요가 있다. 예전보다 많은 아이가 학습 문제로 힘들어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 문제를 개선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난달 11일 김 교수를 만나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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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tro. 학습 문제, 원인을 찾아라
Part 1. 정신 문제? 뿌리는 두 갈래다
Part 2. 목표 설정? 내 아이에게서 출발해라
Part 3. 일단 도전? 애착과 조절이 먼저다
」
🔎정신 문제? 뿌리는 두 갈래다
학령기 아이들이 정신과를 찾는 이유는 각양각색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우울증, 불안장애,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식이장애, 게임중독 등이다. 김은주 교수는 “진단명은 다양하지만, 문제의 원인은 결국 학업이나 또래 관계에서 발생하는 스트레스”라고 말했다.
Q : 학업과 또래 관계 때문에 병까지 생긴다고요?
A : 학군지에서는 기본적으로 학업 성취도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요. 학창 시절에 공부를 잘했던 양육자가 많아 아이에게도 그만큼 높은 성취를 기대하는 거죠. 교육에 투자도 많이 하고요. 평균의 왜곡도 종종 일어납니다. 아이들이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는 시간은 생각보다 길지 않아요. 초등학교는 40분 수업 하잖아요. 그런데 1학년 양육자가 다른 아이들은 3시간 앉아서 공부하는데 30분도 못 참는다며 찾아와요. 집중력이 부족한 게 ADHD 때문 아니냐고요.
Q : 저희가 받은 양육자 고민 중에도 비슷한 게 있었어요. 초등학교 3학년 아이가 문제 풀이 실수가 잦아서 검사를 받았다고요. ADHD는 아니지만, 주의력과 작업기억력이 평균보다 낮게 나왔대요.
A : ADHD 환자가 늘어나고 있는 건 사실이에요.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ADHD 진료를 받은 소아·청소년은 2018년 4만4741명에서 2022년 8만1512명으로 2배가량 늘었어요. 하지만 집중력이 부족하다고 다 ADHD 진단을 받는 건 아니에요. 다른 정서 문제가 섞여 있는 경우가 많죠. 초등학교 3~4학년은 학습량이 갑자기 늘어나는 시기잖아요. 본격적으로 선행학습을 시작하기도 하고요. 지능에 문제가 없어도 실수가 잦아지면 지레 겁먹고 주눅 들게 되죠.
Q :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A : 아이의 현재 수준을 먼저 점검해야 해요. 학습량이 너무 많지는 않은지, 진도가 너무 빠르지는 않은지요. 아직 부모에게 칭찬받고 싶을 나이인데 지적만 당하다 보면 공부 자체를 싫어하게 될 수도 있어요. 학습을 통해서만 주의력이나 작업기억력을 높일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일상생활에서도 다양한 활동을 통해 가능해요. 특히 여행을 추천해요. 함께 계획을 세우고 동선을 짜서 움직이다 보면 순서대로 기억해야 할 항목이 많잖아요. 다녀온 뒤에도 사진을 보며 어디서 무슨 활동을 했는지 되짚어볼 수 있죠. 서로 정서적으로 교감할 기회도 많고요.
Q : 우울증과 불안장애도 늘어나는 추세예요. 이유가 뭔가요?
A : 2022년 기준 소아·청소년 우울증과 불안장애 환자는 약 9만명이에요. 2019년보다 47%가량 늘어났죠. 코로나19 발발과 소셜미디어(SNS) 발달은 아이들의 삶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어요. 팬데믹 기간에 대면 소통이 줄어들고 비대면 소통이 늘어나면서 사회적 상호작용이 훨씬 복잡해졌어요. 학교에 있는 동안 따돌림을 당하는 데 그치지 않고, 메신저나 SNS로 24시간 괴롭히는 식으로요.
Q : 온라인에서 아이가 어떻게 지내는지도 챙겨봐야겠네요.
A : 아이가 겪는 많은 문제가 거기서부터 비롯되니까요. 이 시기는 또래 관계가 중요하기 때문에 친구 문제가 학습과도 긴밀하게 연결돼 있어요. 친구 덕에 공부를 더 열심히 하기도 하지만, 친구 때문에 공부를 놓아버리기도 하죠. SNS의 등장으로 비교군도 무한대로 늘어났어요. 우리 반, 우리 학교뿐 아니라 전 세계 아이들을 손안에서 볼 수 있으니까요. SNS에는 가장 예쁘고 멋진 순간을 공유하잖아요. 행복에 대한 기준은 높아지고, 상대적 박탈감도 심해지죠.
A : 우울증과 불안장애가 늘어나는 건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인 현상이에요. 조너선 하이트 미국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 교수는 디지털 세계에서 정신 건강 위기를 맞닥뜨리고 있는 아이들을 일컬어 ‘불안 세대(The Anxious Generation)’라고 규정했죠. 사실 전 인공지능(AI)을 활용한 디지털 치료제 연구를 할 만큼 그만큼 기술 친화적인데도 아이들의 디지털 사용에 있어서만큼은 속도나 방법에 적극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부모 세대는 겪어보지 못한 세계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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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 설정? 내 아이에게서 출발해라
무한 비교는 무한 경쟁을 부른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기 마련이니 말이다. 김은주 교수는 “앞서가는 아이를 따라잡는 게 목표라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한 명을 제쳐도 계속해서 다른 아이가 등장할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그는 “내 아이부터 제대로 파악해 목표를 설정하고 그에 맞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Q : 가장 먼저 무엇을 확인해야 할까요?
A : 아이의 타고난 기질과 성향이요. 많은 아이가 의대에 가려고 고등학교에서 자연계(이과)를 선택해요. 적성을 고려하지 않고요. 양육자도 그걸 권합니다. 안정적이라는 이유로요. 하지만 맞지 않는 공부를 억지로 밀어붙이면 역효과가 날 수 있어요.
Q : 예를 들면요?
A : 강남에서 유명한 H 초등 수학 학원이 있어요. 입학시험이 어려워 들어가기도 쉽지 않죠. 그 학원 입학하려고 소위 ‘새끼 학원’이라고 불리는 학원을 서너 곳씩 보내기도 하죠. 하지만 입학에 성공한다고 끝이 아닙니다. 어려운 수학 문제를 다 풀지 못하면 집에 가지 못하는 학원 시스템을 견딜 수 있는 아이는 많지 않아요. 오히려 스스로 ‘수학을 못 하는 아이’로 낙인 찍을 수도 있죠.
Q : 부정적 낙인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A : 시선을 밖에서 안으로 돌려야 해요. 다른 사람과 비교해 우열을 평가하는 상대평가 체제에선 ‘수행 목표’를 강조합니다. 남보다 더 잘해야 하니까요. 내신 1등급을 목표로 삼으면 100명 중 4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실패합니다. 주어진 과제를 더 잘하는 ‘숙련 목표’가 기준이 되면 달라질 수 있어요. 출발선은 모두 다르고, 과거의 나보다 발전하면 성공이니까요. 배움 자체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죠.
Q : 성취 경험이 중요한 거군요.
A : 아이들이 게임을 좋아하는 이유도 마찬가지예요. 보상 설계가 기가 막히게 되어 있거든요. 게임을 한 판 할 때마다 작은 보상이 주어지니까 두 판 세 판 계속하는 거죠. 승리가 쌓여 레벨이 올라가면 그 재미에 더 열심히 하고요. 잘하면 좋아지거든요. 학습 설계도 이렇게 해야 해요. 단계를 세분화해서 아이 수준에 맞는 과제와 적절한 보상을 제공하는 식으로요. 너무 쉬우면 지루하고, 약간 어려워야 도전의식을 자극할 수 있거든요. 스스로 잘할 수 있다는 믿음, 학습 효능감이 생겨야 어려운 문제에 맞닥뜨려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할 수 있어요.
Q : 보상은 어떻게 설계해야 하나요?
A : 초등학교 때까진 외적 보상이 통해요. ‘이 문제집 다 풀면 용돈 줄게’ ‘시험 잘보면 게임기 사 줄게’ 같은 보상이 동기를 끌어올릴 수 있죠. 하지만 중·고등학생이 되면 내적 보상이 더 중요해져요. 본인이 하는 공부가 재미있고 의미있다고 느껴야 공부 할 동기가 생기죠. 부모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 공부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아이와 양육자의 목표를 분리해야 해요.
Q : 목표를 분리해야 한다고요?
A : 소아·청소년 정신과 특성상 아이와 양육자 상담을 같이 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양육자가 고학력·전문직일수록 자신을 아이와 분리하지 못해요. 빛나는 커리어를 포기하고 아이 교육에 매달렸으니 그만큼 보상받기를 원하죠. 대입을 위해 모든 문제를 덮어두고 달리다 보면 안에서부터 곪을 수도 있어요. 부모는 우울증이나 빈 둥지 증후군, 아이는 ‘대2병’이 올 수도 있고요. 대학교 1학년까진 멋모르고 놀다가 2학년 때 불쑥 우울·불안감에 시달리는 거죠. 진로에 대한 고민 때문에요. 이게 ‘중2병’보다 무서워요.
(계속)
중·고등학교 때 스스로 학습 목표를 세우고 도전하는 아이로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김은주 교수는 초등학교 때 이 2가지를 해놔야 공부도 잘하는 아이로 클 수 있다고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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