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산·암살·대선패배 다 극복…美 역사 다시 쓴 트럼프 '부활 본능'

이승호 2024. 11. 9.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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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미국 메릴랜드주 옥슨힐 내셔널하버에서 열린 미국 보수주의 행사인 ‘보수정치 행동회의(CPAC)’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연설 전 성조기에 입을 맞추고 있다. AP=연합뉴스


이쯤 되면 ‘피닉프(피닉스+트럼프)’라 불러야 할 정도다. 7월과 9월 두 번의 암살 시도에서 살아남은 뒤 지난 5일 치러진 미국 대선에서 승리한 도널드 트럼프 얘기다.

트럼프 당선인은 2020년 대선 패배 후 4년 만에 백악관에 다시 입성하게 되면서 미 정치사를 새로 썼다. 연임이 아닌 ‘징검다리 임기’로 미국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건 1885년과 1893년 22대, 24대 대통령을 지낸 그로버 클리블랜드를 제외하면 트럼프가 유일하다.


파산법 이용해 빚더미 회사 살려


트럼프의 ‘불사조 서사’는 그의 인생 변곡점마다 나타났다. 궁지에 몰려도 탈출 본능을 발휘해 기회로 전환했다.
지난 2007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Walk of Fame)에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대리석 바닥을 보고 미소 짓고 있다. 트럼프가 2004년부터 진행한 NBC방송 리얼리티쇼 ‘어프렌티스(견습생)’ 의 인기에 힘입어 이뤄진 일이다. AP=연합뉴스


대표적인 게 자신이 이끄는 트럼프 그룹의 위기다. 트럼프는 25세이던 1971년 아버지 회사를 물려받아 ‘트럼프 그룹’으로 회사 이름을 바꿨다. 자신의 이름을 딴 호텔·카지노·골프장을 세워 공격적 경영을 펼쳤다. 36세이던 1983년 뉴욕 맨해튼 중심에 지은 주상복합빌딩을 시작으로 한국을 비롯해 인도, 튀르키예, 필리핀 등 세계 각지에 ‘트럼프 타워’를 지었다.

하지만 ‘트럼프 제국’은 1990년대 벽에 부딪힌다. 이때부터 시작된 부동산 침체 때문이다. 경영난 속에 트럼프는 1991년 뉴저지주 애틀랜틱시티의 트럼프 타지마할 카지노를 시작으로 2009년까지 법원에 자신이 운영하던 회사에 대한 파산을 6차례 신청한다.

미국 대선 승리한 트럼프는 그래픽 이미지.

파산은 오히려 기회가 됐다. 법원의 손에 맡겨진 트럼프의 회사들은 큰 피해 없이 살아났다. 정부가 관리하며 구조조정을 벌인 후 기업회생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미국의 ‘연방파산법 11조’ 덕을 봤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는 개인 돈을 거의 내지 않고 자신이 진 빚을 사업체에 떠넘기면서 월급과 보너스로 수백만 달러도 챙겼다”고 지적했다. 미국 파산법 판례를 새로 썼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다.


대선 패배에도 SNS 회사로 대박


지난 8월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지지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AP=연합뉴스
트럼프의 부활 본능은 2020년 대선 패배 후에도 발휘됐다. 트럼프는 지난 2월 트럼프 그룹의 자산 가치를 부풀려 허위 대출을 받은 혐의로 법원에서 3억6400만 달러(약 4800억원)의 벌금이 부과되며 파산 위기에 몰렸다.

하지만 그가 대선 패배 이후 만든 새로운 사업이 살렸다. 2021년 ‘1·6 의회 폭동’ 사태로 X(옛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 계정 사용이 막히자 직접 설립한 플랫폼 ‘트루스소셜’이 한 달 뒤 주식시장에 상장했다. 자신을 지지하는 이들의 충성도 높은 참여에 힘입어 트루스소셜은 급성장했다. 트루스소셜의 모회사인 트럼프 미디어의 기업가치는 지난달 말 기준으로 약 100억 달러(약 13조8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대선 승리로 재판에서도 해방


지난해 8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2020년 대선 결과를 번복하기 위해 압력을 행사한 혐의로 조지아주 풀턴 카운티 구치소에 20분간 수감되면서 찍은 머그샷(범인 식별용 사진). 로이터=연합뉴스
‘사법 리스크’도 트럼프의 앞길을 막지 못할 전망이다. 트럼프는 지난해 3월 성추문 입막음 혐의로 기소됐다. 지난 5월엔 배심원단으로부터 ‘중범죄(felony)’ 유죄 평결까지 받았다. 모두 248년 미 역사상 전·현직 대통령이 처음 겪는 일이었다. 트럼프는 이외에도 2020년 대선 패배를 뒤집기 위해 압력을 행사한 혐의와 백악관 기밀 문서를 외부로 반출한 혐의 등 총 4건의 형사기소를 당했다.

하지만 4건의 혐의 모두 그의 지지율에 별다른 타격을 입히지 못했다. 그의 지지자들은 오히려 트럼프가 기소를 당할 때마다 결집하는 모습을 보였다. 미 언론들은 트럼프가 재집권하면서 향후 모든 재판에서 해방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백악관에 재입성한 그가 법무부를 통해 심리 중단을 압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취임 후 신임 법무장관을 임명해 자신을 기소한 특검을 해임하는 방식으로 사건 자체를 무마할 수 있다. 실제로 트럼프는 자신이 대선에서 승리한다면 자신을 기소한 잭 스미스 특검을 “2초 안에 해임할 것”이라고 공언한 바 있다.

법무부도 현직 대통령을 기소하지 않아 온 정책을 준수할 생각이다. NBC·CNN 방송은 법무부와 특검 측이 트럼프 관련 사건 종결을 논의 중이라고 전했다. 폴 버틀러 조지타운대 교수는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결과적으로 트럼프는 4개 사건에서 모두 이겼다”고 말했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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