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독선적, 천황이냐" 욕먹어도…국회 꼬박꼬박 나온 대통령
" “대통령이 국회에 가는 것은 의무는 아니고 발언권이 있는 것이다.” "
윤석열 대통령이 7일 기자회견에서 ‘헌법이 대통령에 국회에서 발언할 권리와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는 지적에 반박하며 답변한 내용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4일 정부 예산안 시정연설에 불참한 데 대해서도 “저는 국회를 굉장히 가고 싶은 사람”이라며 “(지난 2년간 국회가) 난장판이 되는 모습에 대통령이 가는 것을 국민한테 보여주는 게 국회에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다”고 불출석 사유를 밝혔다.
헌법 81조는 ‘대통령은 국회에 출석하여 발언하거나 서한으로 의견을 표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윤 대통령의 해석처럼, 대통령의 국회 출석이 법적 의무는 아니라는 게 다수 헌법학자의 견해다. 87년 체제 이후에도 김영삼(YS)·김대중(DJ) 두 전직 대통령은 예산안 시정연설을 한 번도 직접 하지 않았다. 대신 YS는 1993년 9월 대통령 국정 연설과 같은 해 11월 한·미 정상회담 귀국연설을 정기국회 기간 했다. 1996년 7월 15대 국회 개원 연설까지 임기 중 3차례 국회에서 연설했다. DJ는 2000년 6월 1차 남북정상회담 직전 16대 국회 개원 연설을 한 게 유일하다.
역사상으로 국회에서 가장 많은 연설을 한 대통령은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다. 12년에 달하는 재임 동안 모두 25차례 국회에서 연설했다. 다만 그중 23차례는 1948~1951년 4년간에 집중됐다. 이후 8년간 3대·4대 국회 개원 연설이 전부였다.
헌정사상 최초 대통령 연설은 1948년 7월 27일 이윤영 국무총리 후보자 승인 요청 연설이었다. 이 전 대통령은 평안북도 출신 조선민주당(1석) 소속 이윤영 의원(서울 종로 갑)을 국무총리에 임명하며 “여러 가지 급급한 우리 문제 중에 제일 급한 것은 남북통일”이라는 이유를 들었다. 하지만 표결 결과는 재석 193명 가운데 찬성 59명, 반대 132명, 기권 2명으로 부결됐다.
이 전 대통령은 다음 날 기자회견에서 국회 양대 계파인 한국민주당계와 무소속구락부를 향해 “두 당이 각각 내응(內應·몰래 적과 통함)적으로 자기 당 사람이 아니면 투표 부결에 부치자는 약속을 했다”고 맹비난했다. 그러자 30일 국회 본회의에서는 한민당 노일환 의원이 이 전 대통령 면전에서 “대통령의 태도는 너무나 독선적이며, 마치 제국주의에 있어서의 천황(天皇)과 같은 태도”라고 외쳤다. 이에 이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 출신 윤치영 의원이 노 의원 징계안을 제출하는 소동도 벌어졌다. 여기까진 요즘 국회와 크게 다르지 않은 장면이다. 다만 이 전 대통령은 이런 상황에서도 8월 3일 이범석 국무총리 임명동의안이 통과될 때까지 국회에 꼬박꼬박 출석했다.
6·25 이후 드물어진 대통령의 국회 출석이 연례 행사 형태로 재등장한 건 1963년 12월 박정희 전 대통령 취임 이후다. 박 전 대통령은 미국의 연두교서(State of Union)를 벤치마킹해 1964년부터 매년 1월 국회에서 연두교서를 발표했고, 1968년부턴 이를 기자회견 형식으로 바꿔 국회가 아닌 중앙청에서 진행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정기국회 예산안 시정연설을 대통령이 직접 하는 식으로 연례 연설 전통을 부활시켰다. 이후 문재인 전 대통령과 윤 대통령까지 2013~2023년 국회 시정연설엔 매년 대통령이 출석했고, 올해 한덕수 국무총리가 대독하면서 전통이 깨졌다. 앞서 윤 대통령은 87년 체제 이후 처음으로 국회 개원식(9월 2일)에도 불참했다.
윤 대통령은 7일 기자회견에서 올해 시정연설 불참의 이유로 야당의 특검법 발의와 김건희 여사 등에 대한 동행명령권 의결을 거론하며 “이건 국회에 오지 말라는 얘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년에는 (국회에) 꼭 가고 싶다”며 “저도 시정연설에서 야당을 존중하는 얘기들을 할 것이고, 야당도 아무리 정치적으로 제가 밉고 어제까지는 퇴진운동을 했더라도 그 시간만은 (예의를) 지켜준다면 열 번이라도 가고 싶다”고 말했다.
오현석 기자 oh.hyunseok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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