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에 질리고, 고물가에 지쳤다…美 Z세대의 '트럼프 환승'
" “취업해 월급을 받아도, 물가가 높아서 감당할 수 없다.” " 미국 대선 직전인 지난 3일(현지시간), 최대 경합주인 펜실베이니아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당시 후보의 지지 집회에 참석한 에반(20)은 현지 언론에 이렇게 말했다. 에반처럼 가파른 물가 상승에 지친 Z세대(18~29세)가 이번 대선에서 대거 트럼프를 찍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우선주의'를 통한 경제 재건을 앞세운 트럼프가 그간 민주당 지지층으로 분류되던 Z세대의 표심마저 파고들었다는 얘기다.
이런 청년층의 변심은 트럼프의 당선을 이끈 결정적 배경으로 꼽힌다. 2020년 대선과 비교하면 다른 세대에 비해 Z세대의 표심 변화가 가장 뚜렷했다. AP통신이 6일 발표한 여론조사(지난달 28일~지난 5일, 12만 명 대상 조사, 오차범위 ±0.4%) 결과에 따르면 Z세대 유권자 중 이번 대선에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을 지지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52%였다. 이는 2020년 대선에서 당시 민주당 후보였던 조 바이든을 지지한다고 응답한 비율(61%)보다 9%포인트나 낮았다.
반면 트럼프에 대한 지지율은 같은 기간 36%에서 46%로 10%포인트 올랐다. 다른 세대에선 지지율의 변화가 없거나, 2~4%포인트 수준에서 변동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색인종 청년층의 표심도 마찬가지였다. 29세 이하 흑인 유권자의 해리스 지지율은 75%였는데, 4년 전 바이든(87%)보다 12%포인트 떨어졌다. 반대로 트럼프 지지율은 4년 전(10%)보다 13%포인트 늘어난 23%였다.
같은 연령대 히스패닉 유권자 역시 민주당 후보에 대한 지지율이 4년 전보다 14%포인트 줄었다. 이와 관련, 멕시코와 국경을 통해 유입되고 있는 불법 이민자에 대한 히스패닉 시민권자의 불만이 작용했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경제난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불법 이민자가 일자리를 위협하고 치안도 악화시키고 있다는 트럼프의 주장에 동조했다는 의미다.
대선의 향배를 가르는 7개 경합주에서도 추세는 비슷했다. 최대 경합주인 펜실베이니아에서 한국의 ‘MZ세대’에 해당하는 44세 이하 흑인의 트럼프 지지율은 4년 새 4%에서 25%로 뛰었다. 같은 기간 44세 이하 히스패닉의 트럼프 지지도 30%에서 48%로 크게 올랐다.
이와 관련, 수년간 지속된 고물가에 지친 젊은 유권자들이 인종 불문하고 '민주주의'보다 '경제'를 택한 결과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US뉴스&월드리포트에 따르면 7개 경합주에 사는 18~34세 청년 2040명 대상 여론조사에서 '대통령을 뽑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70%가 '생활비·인플레이션'을 꼽았다. 반면 민주당에 유리한 이슈인 '낙태 관련 규제'라고 답한 응답자는 40%에 그쳤다.
대학 졸업 후 바텐더 아르바이트를 하는 펜실베이니아의 한 20대 주민은 "기성세대가 가졌던 '내 집 마련'이란 소박한 꿈조차 이룰 수 없는 나라에 절망하고 있다"며 트럼프를 지지하는 이유를 뉴욕타임스(NYT)에 밝혔다. 그는 또 "(해리스가 제시한) 희망이란 심오한 비전은 멋지긴 하지만, 내 미래엔 아무런 도움도 안 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가 이른바 '먹고사니즘'을 고민하는 요즘 미국 청년들의 불안감을 제대로 건드렸다는 평가도 나온다. NYT의 한 칼럼니스트는 "트럼프는 젊은이들이 느끼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전략적으로 이용했다"며 "안정적인 경제 상황을 마련해주겠다는 공약으로 Z세대의 마음을 훔쳤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해리스는 이런 (젊은이들의) 열망에 부응하는 비전을 충분히 보여주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민주당 내에 만연한 ‘PC(Political Correctness·정치적 올바름) 주의’에 질려버린 '이대남(20대 남성)'들이 등을 돌렸다는 반응도 나온다. 폭스뉴스는 20대 남성들과의 인터뷰를 인용해 "이들은 인종 차별이나 편견에 여전히 동의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딱히 흥미를 느끼는 것도 아니다"며 "30~40대 남성보다 트럼프에게 훨씬 더 우호적"이라고 전했다.
김서원 기자 kim.seo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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