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떠돌던 유기견, 155만 유튜버 만나 생긴 일 [개st하우스]

최수진 2024. 11. 9. 00:07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개st하우스는 위기의 동물이 가족을 만날 때까지 함께하는 유기동물 기획 취재입니다. 사연 속 동물에게 도움을 주고 싶면, 유튜브 개st하우스를 구독해주세요.

지난 10월 14일 서울시 용산구 자택에서 유기견 출신이었던 연탄이와 견주 연제민씨를 만났다. 야외 테라스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 최민석 기자

“우연히 심장사상충에 감염된 상태로 구조된 유기견의 사연을 보게 됐어요. 한 생명을 살려보자는 생각에 제가 보호자를 자처하고 치료비를 지원했습니다. 집과 병원을 오가면서 치료를 돕다 보니 자연스럽게 입양을 하게 됐어요. 벌써 함께한 지 5년이 다 되어 가네요.”
-연탄이 견주 연제민(31)씨

찬바람이 쌩쌩 불던 2020년 겨울. 인천 영종도의 아파트 단지에서 뛰어놀던 아이들이 까만 털의 작은 강아지 한 마리를 발견했습니다. 강아지는 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며칠이나 사람들 뒤를 졸졸 쫓아다녔습니다. 강아지가 불쌍했던 아이들은 지나가는 동네 주민을 붙잡았습니다. “저 강아지 먹을 것 좀 주시면 안 돼요?”
지난 2020년 2월 구조 직후 연탄이의 모습이다. 고된 길생활을 마친 연탄이는 눈에 눈물자국이 짙었다. 독자 제공


강아지는, 아이들 부탁으로 다가간 아주머니 품에 기다렸다는 듯 쏙 안겼습니다. 하지만 고민은 지금부터였죠. 유기동물 공고 기간 14일 안에 입양자를 찾아야 안락사를 피할 수 있었거든요. 그때 연락을 해온 사람이 바로 연제민씨였습니다.

아파트 단지를 떠돌던 버려진 까만 강아지의 새 인생도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강아지가 받은 새 이름은 ‘연탄이’. 연제민의 ‘연’과 까맣고 따뜻한 연탄의 ‘탄’을 합친 이름입니다. 제민씨와 함께한 지 어느덧 5년이 된 지난달 14일, 꼬질꼬질한 유기견에서 우아한 반려견으로 변신한 연탄이를 서울 용산구에서 만날 수 있었습니다.

155만 유튜버와 병든 유기견의 운명적인 만남

인터뷰 진행 중 소파에 누운 연탄이가 취재진을 바라보고 있다. 최민석 기자

제민씨가 연탄이를 만나게 된 건 유튜브 덕분이었습니다. 155만명의 구독자를 가진 유튜브 채널 운영자인 제민씨는 유기견 콘텐츠를 제작하기 위해 관련 조사를 하다가 연탄이 사연을 알게 됐습니다.

제민씨의 애초 계획은 보호소에 기부하는 거였어요. 그러던 중 연탄이 사연을 접한 뒤 연탄이 치료를 돕기로 마음을 바꿨습니다. 당시 연탄이는 심장사상충을 앓고 있었는데 아프다는 이유로 성사될 뻔하던 입양이 무산된 상태였거든요. 심장사상충은 흔한 질병이긴 하지만 치료하는데는 만만치 않은 비용이 듭니다.

제민씨는 “보호소에 기부하는 것도 가치가 있겠지만 한 생명을 살리기 위해 돈을 쓰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연)탄이가 있던 동물병원에 곧장 전화해 수술비를 지원하겠다고 말했다”고 했습니다.

추정 나이가 10살인 연탄이가 자택 테라스에서 야구공을 이용해 신나게 뛰어놀며 공놀이를 즐기고 있다. 최민석 기자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제민씨는 연탄이를 입양할 생각은 아니었다고 해요. 수술비를 지원하려면 보호자가 필요하다는 병원 측 설명에 보호자 서명란에 사인을 했고 그게 자연스럽게 입양으로 이어졌습니다.

제민씨는 “부끄러운 말일 수도 있는데 입양하려고 동물병원을 찾았던 건 아니었다”며 “처음에는 아픈 강아지의 치료를 도와주려는 마음이었는데 입양을 해야 치료를 할 수 있다고 해서 결심을 하게 된 거다”라고 말했습니다.

취재진이 야구공을 가져가려고 하자 냄새를 맡고는 빼앗기지 않으려는 듯 앞발로 야구공을 사수하고 있다. 최민석 기자
초보견주와 성견의 우당탕 동거생활

테라스에서 제민씨와 연탄이가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최민석 기자

제민씨는 강아지를 처음 키워보는 초보견주였습니다. 먹이고 씻기고 산책하고 배변훈련을 시키는 것까지. 처음부터 찾아보고 전부 새로 공부해야 했습니다. 게다가 연탄이는 구조 당시 4~5살 성견이어서 어린 퍼피와 달리 교육은 더욱 힘겨웠어요.

제민씨는 “입양 초기에 (연)탄이 발톱이 빠졌는데 그걸 모르고 휴지로 닦아줬다가 물린 적이 있다”며 “당시에는 강아지에 문제가 있는 줄 알고 너무 우울했는데 아파서 자신을 방어하려고 했다는 걸 알고 모든 근심 걱정이 싹 사라졌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습니다.

제민씨의 무릎에 편안하게 누워 쓰다듬는 손길을 즐기고 있는 연탄이의 모습. 최민석 기자


입양 후 1년간은 제민씨와 연탄이가 서로 맞춰가는 적응기간이었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잘 맞는 룸메이트가 되었습니다. 연탄이는 취재를 하는 내내 제민씨의 무릎에서 편안한 표정으로 누워있더군요. 제민씨는 “강아지를 처음 키워봐서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굉장히 무난한 친구였다”며 “공기처럼 존재하는 관상용 강아지 같다”고 웃었습니다.

“모든 생명과 연결된 느낌” 유기견 입양 후 변화한 삶

공놀이를 하다 지친 연탄이가 야구공을 부여잡고 숨을 고르고 있다. 최민석 기자

연탄이와 함께한 지 5년 가까이 흐른 지금, 제민씨는 유기견 입양이 뜻밖의 방식으로 자신을 바꿔놓았다고 털어놓았습니다. 동물에 관심이 없던 제민씨는 연탄이와 함께 살기 시작한 뒤로는 어떤 생명체를 봐도 연탄이의 모습이 겹쳐 보이게 되었습니다.

일상의 변화는 작은 듯 컸습니다. 감정이입의 대상이 넓어지면서 제민씨는 이제 작은 벌레 한 마리도 쉽게 죽이지 못하는 사람이 됐습니다. 상황이 허락한다면 죽이는 대신 종이로 감싸서 밖으로 내보냅니다. 예전에는 모르던 느낌, 주변의 작은 것들이 모두 살아있다는 감각은 놀라웠습니다.

터그놀이를 하던 연탄이에게 제민씨가 후드를 씌워주고 있다. 연탄이가 입고 있는 후드티는 제민씨가 가장 좋아하는 옷이다. 최민석 기자


제민씨는 “무조건적인 사랑이라는 게 무엇인지 알게 된 것 같다”며 “원래는 사람의 행동만 생각했는데 이제는 동물의 행동 패턴을 알게 되었고 세상 모든 생명체와 연결이 됐다는 느낌을 받고 있다. 전체적으로 사랑이 되게 중요한 거라는 생각이 든다”고도 말했습니다.

올해로 추정 나이가 10살 정도 되는 연탄이는 입 주변의 털이 점점 하얗게 세어갑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연탄이의 나이답지 않은 활력입니다. 취재 내내 제민씨 곁에서 공놀이를 하며 활기차게 뛰어놀더군요. 그런 연탄이를 바라보며 제민씨가 말했습니다. “탄이에게 건강하게 최대한 오래 살라는 게 제가 유일하게 하고 싶은 말이에요.”

최수진 기자 orca@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