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똑같은 취준생” 꿈 향해 달리는 시각장애 청년들

이경민 2024. 11. 9.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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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지대] 세상이 주목하지 않은 이야기
11월 4일∼8일 ‘한글 점자 주간’
디지털 기기 활용해 취업 준비도
송씨가 e스포츠 활동을 통해 게임을 연습하고 있다. 종로구 시각장애인취업역량강화센터 제공

4년 전 어느 날 송모(21)씨는 앞이 보이지 않았다. 선천적으로 앓던 녹내장이 갑작스레 악화됐기 때문이다. 송씨의 꿈은 기자였다. 점자 없이는 한 글자도 읽을 수 없게 됐지만 꿈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지금도 그는 하루 50개 이상의 기사를 읽고 분석한다.

지난해 한국 장애인 고용 공단 통계에 따르면 국내에는 25만여 명의 시각 장애인이 있다. 그중 1만3000여명이 마사지 치료사를 하고 있다는 게 세계 시각 장애인 연합의 추산이다. 25만명 중 1만3000여명 정도이니 시각 장애인 대다수가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많은 이들은 시각 장애인이라면 으레 마사지 치료사로 근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국민일보가 최근 만나본 시각 장애인 청년들의 모습은 사람들의 시각과는 사뭇 달랐다. 누군가는 교사로, 누군가는 송씨처럼 기자로서 꿈을 키우고 있었다.

시각 장애인 청년이 꾸는 기자, 교사로의 꿈

송씨는 사회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기사를 찾다가 기자를 꿈꾸게 됐다. 글로 생각을 전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었다. 송씨는 “말은 바로 내뱉으려 하면 더듬게 된다. 글은 써놓고 수정할 수 있어서 더 편하다”고 했다.

아직 대학교 2학년이지만 언론사 필기시험을 대비해 다양한 종류의 기사를 읽는다. 송씨는 기사 작성법에 관심이 많다. “취재는 어떻게 이뤄지는지 인터뷰 내용은 어떻게 글로 바꿔 쓰는지 궁금해서 기사 형식을 유심히 읽어본다”고 했다.

시간이 날 때는 휴대전화로 기사를 검색한다. 그는 “TV에도 뉴스는 나오지만 금방 지나가 버려 다시 찾을 수가 없다”며 휴대전화로 기사를 찾는 이유를 설명했다. 인터넷 기사는 점자나 음성으로 변환해 언제든 다시 읽을 수 있다.

임씨가 점자정보단말기를 통해 점자로 공부하고 있다. 임씨 제공

임모(25)씨는 현실과 꿈 두 가지를 모두 고려해 교사라는 직업을 선택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책 읽기를 좋아해서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했다”면서 “시각장애인 중에 교사가 된 분이 많아 국어 교사로 진로를 정했다”고 했다.

임씨는 임용고사 공부에 매진하고 있다. 특별히 점자 정보 단말기라는 것을 활용한다. 단말기를 컴퓨터에 연결하면 화면 속 정보가 점자나 음성으로 변환되는 기기다. 인터넷 강의를 들을 때면 점자와 음성을 함께 이용한다. 귀로는 음성을 듣고 손으로는 변환된 점자를 읽는다. 임씨는 “소리로만 들으면 놓치는 부분이 많은데 점자는 다시 확인할 수 있어서 집중이 잘 된다”고 했다.

시험을 위해 기출문제도 풀어본다. 장애인 도서관에서 내려받은 문제지를 점자로 변환해 푼다. 다만 모든 자료를 파일로 구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학원에서 만든 자료는 보안을 이유로 구하기 어렵다. 임씨는 “강사가 중요한 내용을 골라 모의고사를 만들어 주는데 호환이 잘 안된다”며 아쉬워했다.

요즘에는 인공지능(AI)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점자로 변환이 안 되는 이미지를 파악하기 위해서다. 임씨는 “챗GPT에 사진을 넣고 내용을 알려달라고 한다. AI 시대에 시각장애인들이 할 수 있는 분야가 더 넓어졌다”고 했다.

“시각장애인의 정보는 대부분 대인관계에서 나와요”

송씨가 시각장애 청년들에게 정보화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종로구시각장애인취업역량강화센터 제공

송씨와 임씨는 종로구 시각장애인취업역량강화센터에서 맹학교 출신 청년들의 사회 진출을 도와주고 있다. 두 사람은 많은 시각 장애인이 취업 관련 정보를 찾는 것을 어려워한다고 했다. 디지털 기기에 익숙지 않은 시각장애인은 정보를 얻기 어렵다. 핵심 채용 정보는 애플리케이션이나 웹사이트에 있기 때문이다.

송씨는 “인터넷에 정보가 있지만 이걸 어려워하는 시각장애인이 있다”며 “어디서 찾아야 한다고 알려주면 그제야 알아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본격적인 구직 활동에 앞서 무슨 일을 해야 할지조차 모르는 시각장애인도 상당수다. 임씨는 “눈이 안 보이는데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냐며 비관적인 생각을 하는 분들이 있다. 안마사 등 특정 직업이 강조되다 보니 자신의 꿈을 잊기도 한다”고 말했다.

구직자들이 안내 책자를 들고 부스에 방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찾아보면 취업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지자체는 매년 장애인 대상 취업박람회를 개최한다. 이력서 작성부터 기업 연계까지 취업 전 과정을 지원해 준다. 구직자들이 안내 책자에 적힌 프로그램을 보고 관심 있는 부스에 방문하는 시스템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시각장애인에겐 어려움이 따른다. 안내 책자에는 점자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 발표한 지난해 장애인경제활동실태조사에 따르면 주된 구직 방법으로 취업박람회를 꼽은 시각 장애인은 0%였다.

다양한 디지털 기기 학습해보는 경험 필요해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 기사와 직접적 관련이 없습니다. 연합뉴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2022 디지털 정보 격차 실태조사’에 따르면 장애인 계층의 디지털 정보화 수준은 일반 국민의 82.2%다. 이화여자대학교 특수교육연구소는 2022년 ‘특수교육’ 학술저널에서 장애학생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인으로 적응해 살아가기 위해서 다양한 디지털 기기를 학습해보는 경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임씨는 아쉽게 임용고시 불합격의 고배를 마셨지만 한 번 더 도전 중이다. 그는 자신과 같은 시각장애 청년들에게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든 하다 보면 결국 길이 열리리라 생각한다”며 “10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말처럼 계속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는 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송씨 역시 “취업이 어려운 건 사실이지만 어딘가에 일자리는 있을 거로 생각한다”며 “일자리가 부족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기보다는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나서는 게 맞는 것 같다”고 했다.

[사각지대]는 세상이 주목하지 않은 이야기를 다룹니다.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모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겠습니다.

이경민 인턴기자 onlinenews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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