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최태원·노소영 '1조3808억 재산분할' 다시 따져본다
대법원이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소송 상고심을 본격적으로 심리한다. 지난 5월 항소심 재판부가 ‘두 사람의 합계 재산 중 약 35%인 1조3808억원을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분할하고, 위자료 20억원도 지급하라’고 한 판결에 대해 대법원이 들여다보고 다시 판단하겠다는 의미다.
8일 대법원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가 심리 중인 최 회장 측 상고 사건의 ‘심리불속행 기각’ 기한인 이날까지 대법원은 기각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 대법원이 하급심 결정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면 상고 접수 4개월 이내에 추가 심리 없이 심리불속행 기각으로 사건을 마무리할 수 있지만, 기한 내에 상고를 기각하지 않은 만큼 대법원이 최 회장 부부의 공동 재산 범위와 분할 기준, 위자료 산정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심리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앞서 5월 30일 항소심 재판부는 최 회장과 노 관장의 공동 재산을 약 4조115억원으로 보고, 이중 35%에 해당하는 1조3808억1700만원을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이에 최 회장은 6월 SK㈜ 주식은 아버지인 고 최종현 선대회장에서 상속·증여 받은 재산(특유재산)이라 분할 대상이 아니라는 요지로 대법원에 상고했다. 대법원은 최 회장이 보유한 SK㈜ 주식을 상속재산으로 볼지, 노 관장의 부친인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최 회장의 SK㈜ 지분 가치 증가에 기여했는지 등을 다시 따져볼 것으로 보인다.
앞서 항소심 재판부는 부부 공동재산을 산정할 때 최 회장이 보유한 SK㈜ 주식(17.73%, 1297만주)의 가치를 2조760억원으로 평가했고 비상장사인 SK실트론 주식의 가치를 7500억원으로 봤다. 2018년 최 회장이 최신원 전 SK네트웍스 회장 등 친족 23명에게 증여한 SK㈜ 지분(약 1조원)도 부부의 공동재산으로 보고 분할 대상에 명시했다. 최 회장의 SK텔레콤·SK디스커버리·SK케미칼 등 계열사 주식 보유 분은 수십억원으로 평가했고, 부동산이나 예술품 등이 600억원 정도다. 또 항소심 재판부는 ‘300억 약속어음’ 사진을 근거로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300억원이 SK그룹으로 유입됐고 그룹의 성장에 일조했다는 노 관장 측 주장을 인정했다.
하지만 최 회장 측은 상고심에서 두 사람의 순재산 규모를 다시 따져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우선 SK㈜ 주식은 아버지에게 상속받은 것이라 특유재산이라고 주장한다. 최 회장은 약속어음 사진이 돈을 받았다는 증빙이 될 수 없고 실체가 없다며 항소심의 재산 산정 근거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최 회장 측은 1994년 고 최종현 선대회장의 SK 지분 증여에 대해 1998년 국세청에 증여세를 낸 이력을, 노 관장 측은 어머니 김옥숙 여사의 '선경(현 SK) 300억'이라고 쓰인 메모와 50억원짜리 약속어음 6장이 찍힌 사진을 각각 주장의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최 회장은 비상장사인 SK실트론 주식(29.4%) 가치도 재산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2017년 SK㈜가 LG에서 실트론을 인수할 당시 최 회장은 개인적으로도 실트론 지분을 인수했다. 이때 최 회장의 보유 지분 가치는 2600억원 정도로 평가 받았는데 항소심 재판부는 이를 현재 7500억원 가치로 계산했다.
2018년 최 회장이 친족들에게 나눠준 지분 가치도 당시 주가가 아닌 현재 주가를 적용해 평가해야 한다는 게 최 회장 주장이다. 항소심에선 친족 증여 지분의 가치를 약 1조원으로 평가했는데 현재 시세 기준으로 한다면 약 5000억원으로 줄어든다.
최 회장의 상고 내용을 대법원이 모두 받아들인다면 두 사람의 순재산은 2조원 수준이 된다. 이럴 경우 항소심 재판부가 정한 노 관장 몫 재산 비율(35%)을 적용해도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지급해야할 재산분할 액수는 5720억원 정도로 준다.
만약 대법원이 구체적 심리를 했는데도 두 사람의 순재산 규모에 변동이 없다면 최 회장은 당장 1조원이 넘는 현금을 마련해야 한다. 최 회장이 보유한 자산 대부분이 SK㈜ 주식이라 노 관장에게 줄 현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SK㈜ 주식 매각이 불가피하다. 이 경우 SK그룹 지배구조에 미칠 영향이 적지 않다.
현재 최 회장은 SK㈜ 주식 17.73%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SK㈜는 SK텔레콤(30.57%), SK이노베이션(36.22%), SK스퀘어(30.55%), SKC(40.6%) 등의 지분을 보유하는 형태로 이들 계열사를 지배하고, 이들 회사는 또 다른 계열사 지분을 갖고 있다. 예컨대 SK스퀘어는 SK하이닉스 지분 20.07%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최 회장이 SK㈜를 통해 그룹 전체를 지배하는 구조인데 재산분할을 위해 최 회장이 보유 지분 대부분을 팔아야 한다면 SK㈜에 남는 특수관계인 지분은 여동생인 최기원(6.7%) 등 총 8%에 불과해 그룹 전체 지배력이 약해질 수 있다.
재계에선 최 회장의 SK㈜ 지분을 헤지펀드 등이 사들여 경영권을 공격할 가능성을 우려한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현재 SK㈜ 주가에 20%가량의 프리미엄을 얹어서 사들여도 3조원 수준에 불과해, 누구든 이를 매입하면 단숨에 SK그룹 전체를 지배하는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는 구조라 헤지펀드에겐 매력적인 먹잇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재계에선 대법원 상고심에서 재산분할 액수가 크게 줄지 않는다면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현금 대신 SK㈜ 지분을 넘겨줄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현금으로 재산분할액을 지급한다면 주식을 파는 과정에서 최대 27.5%의 양도소득세(대주주 주식 매각시)를 내야 하는데 지분으로 지급하면 이 세금도 아낄 수 있다. 노 관장도 이런 상황을 인지하고 재산분할 지급 방식에 대해 협의할 의사가 있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최현주 기자 chj8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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