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 '많이 가서' 문제? 복지부에 되묻고 싶다
[요지]
▲ 수급자현실 외면말고 의료급여 사각지대 즉각 해결하라 10월 29일 정부종합청사 서울청사 앞에서 의료급여 정률제 개악 철회 촉구 결의대회가 열리고 있다. |
ⓒ 빈곤사회연대 |
'치료'보다 '비용'이 먼저 떠오르는 공간
그중 ㄱ씨와의 동행 경험이 많은 편이다. ㄱ씨와 치과를 다닌 적이 있었다. 이빨이 너무 아프다고 해서, 내가 다니는 치과에 함께 다녔다. 그 병원 의사가 의료급여 수급자를 보면 돈이 많이 나와도 조금 깎아 주는 사람이라 ㄱ씨도 데리고 갔었다. 어느 날 간호사가 ㄱ씨의 이빨을 보더니, 치석도 제거하고, 이빨도 아예 새로 만들면 좋겠다고 했다. 원래 150만 원을 내야 하는데, 100만 원에 해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100만 원도 한 번에 받지 않고, 할부로 받겠다고 했다. 단, 선금으로 30만 원을 내 달라고 했다. 괜찮은 조건처럼 보였지만, ㄱ씨는 오히려 성질을 냈다. 30만 원이 ㄱ씨에게는 큰돈이었고, 그 돈을 내라고 하니 화가 났던 것이다. 한 달에 10만 원씩 저축하자고 말해봤지만, ㄱ씨는 그것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런 경험이 있어서인지, 나는 ㄱ씨와 병원에 갈 때마다 ㄱ씨가 의료급여 수급자라는 것을 병원 직원에게 말하게 된다. 요새는 시스템이 잘 되어 있으니 병원에서는 ㄱ씨가 수급자라는 사실을 컴퓨터에 이름 한 번 입력하면 바로 알 수 있겠지만, 그래도 혹시나 병원비가 많이 나올까 싶어, 혹시나 병원에서 비싼 비급여 치료를 권하지 않을까 싶어 먼저 그렇게 말한다. 수급자에 대한 편견과 낙인을 생각하면, ㄱ씨가 수급자라는 사실을 내 마음대로 발설하는 게 옳지 않은 일일 수 있다. 또 내가 그렇게 하는 것을 ㄱ씨가 못마땅해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왜 나는 병원에 갈 때마다 그런 말을 했던 것일까? ㄱ씨와의 동행을 시작하기 전 나의 병원 이용 경험을 돌아보면, 나는 그렇게 말하도록 만들어진 것 같기도 하다.
한번은 피부 질환이 생겨 병원에 간 적이 있었다. 진료를 받고 나니 의사가 효과가 좋은 연고를 하나 소개해 주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연고가 비급여 항목에 해당하는 것이었고, 나는 그 연고를 살 돈이 없었다. 결국 나는 의사에게 더 저렴한 연고를, 즉 급여 항목에 해당하는 연고를 사겠다고 말했다. 나도 더 좋은 연고를 사용하고 싶었지만, 가뜩이나 부족한 생활비를 더 당겨 쓸 수가 없었다. 나는 내분비내과 진료도 받고 있는데, 매일 혈당 수치를 확인하기 어려우니 의사가 한 번 착용하면 보름간 혈당 수치를 지속적으로 확인해 주는 의료 기기를 추천했다. 가격을 물었다. 역시나 비싼 비급여 의료 기기였다. 여기에 돈을 쓰면 생활비가 부족할 것이 뻔해 나는 결국 구입을 포기했다.
나는 뇌경색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1년에 한 번 정기적으로 검사를 받아야 한다. 검사 비용만 50만 원이 넘는다. 나중에 환급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나와 같은 수급자에게 당장 50만 원을 지출하라고 하는 것은 그냥 한 달간 생활을 아예 포기하라는 것과 같다. 무엇보다 당장 50만 원 자체가 없다. 매번 야학에서 대출을 받아 검사를 받아 왔다. 이렇게 검사를 받고 나면, 빌린 돈을 수개월간 갚아 나가야 한다. 그러면 또 어쩔 수 없이 달마다 생활비를 조금씩 줄여 나가야 한다. 비급여 크림, 비급여 의료 기기가 아니더라도, 병원에 가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 매야 하는 일은 이미 언제나 벌어지고 있다.
수급자 막막하게 만드는 복지부
보건복지부(아래 '복지부')는 병원비가 싸서 의료급여 수급자들이 병원에 많이 간다고 한다. 복지부가 직접 이 제도를 만들어 놓고 그렇게 말해도 되나 싶다. 수급자들이 왜 '수급자 되기'를 '선택'하는가? 아픈데 형편이 어려워 병원에 갈 수가 없으니까 수급자가 되는 것이다. 사실상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살려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병원에 '많이 가서' 문제라는 복지부에 되묻고 싶다. 수급자들이 병원에 왜 '많이' 가겠는가? 병원에서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병원에서 돈을 타다 내 생활비로 쓸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왜 가겠는가? 아프니까 가는 것이다. '많이' 아프니까 가는 것이다. 가난하면 더 아프기 쉽고, 많이 아프다 보면 가난해질 수 있는 세상인데, 복지부는 이를 전혀 모른 체하고 있다.
▲ '의료급여 정률제 개악안 철회하라!' 10월 29일 정부종합청사 서울청사 앞에서 의료급여 정률제 개악 철회 촉구 결의대회가 열리고 있다. |
ⓒ 빈곤사회연대 |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