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죽여 달라" 우크라이나에서의 20일
[장혜령 기자]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됐다. 평소 "나라면 24시간 이내에 전쟁을 끝내겠다"는 호언장담이 공약에도 반영된 만큼 미국 대선 결과가 전 세계에 미칠 영향은 크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당선 소식에 축하 인사를 전하며 환영하는 분위기다.
과연 미국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을 종식하는 데 일조할까. 그 전에 이 영화를 보길 권한다.
▲ 영화 <마리우폴에서의 20일> 스틸 |
ⓒ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
안전을 위해 대부분 외신기자는 위험 지역에서 철수했지만, AP 취재팀은 최전선에 끝까지 남기로 결정했다. 뉴스의 가치와 언론인의 의무, 저널리즘 정신을 잃지 않으려는 고군분투다. 위험을 무릅쓰고 편집자에게 급히 전달한 영상이 보도된다.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든 참혹한 영상을 러시아 측에서는 가짜 뉴스라고 반박한다. 언제 죽는다고 해도 이상할 것 없는 죽음의 문턱 가까이에서 명운을 목격하자 두려움도 희석되어 간다. 자고 일어나면 파괴된 면적과 민간인 희생자 수가 늘어난다.
상황은 점차 험악해진다. 얼마 되지 않아 전기, 인터넷이 끊어져 영상 보낼 길이 막막해져 발만 동동 구른다. 기자들이 목숨을 걸고 100km 이상을 달려 기록물을 들고 통과한 검문소만 15개. 삼엄한 경비를 뚫고 자동차 좌석 아래, 탐폰에 숨긴 채 영상 반출에 성공했다. 가짜 뉴스가 판치는 세상에 진실을 전한 영상은 영화로 제작되어 전 세계에 소개됐다. < 마리우폴에서의 20일 >은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장편 다큐멘터리상과 2023 퓰리처상 공공보도상을 받았다.
▲ 영화 <마리우폴에서의 20일> 스틸컷 |
ⓒ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
따라서 어젠다 키핑(agenda keeping, 이슈에 카메라와 마이크를 갖다 대는 시간을 오랫동안 지속하는 행위 )이 중요하다. 어젠다 키핑은 공론화되어야 할 의제를 설정하고 취재하는 어젠다 세팅을 지속적으로 하는 행위를 말한다. 세월호 참사 당시 200일 동안 쉬지 않고 보도했던 손석희는 <장면들>에서 "디지털 시대에 꼭 필요한 뉴스를 전하는 행동은 필요하다"며 꾸준한 관심의 중요성을 전했다.
이 때문에 마리우폴의 끈질긴 취재는 소중한 뉴스 그 이상이다. 조금만 눈을 돌려고 한눈에 알 수 있는 디지털 시대에도 정보 은폐와 날조의 가능성을 낱낱이 보여준다. 생사의 갈림길을 위태롭게 걸어가던 취재팀은 병원에 머물며 다양한 피해자들을 마주한다. 취재팀은 전쟁 초반 폭격에 정신없이 울던 여인을 며칠 후 병원에서 만난다. 집에 돌아가 있으면 가족이 돌아올 것이라고 했던 말은 위로가 되지 못한다. 결국 집은 폭격으로 폐허가 되었고 대피소에서 재회하게 된 불운으로 돌아왔다. 가히 어떠한 말도 함부로 내뱉지도, 미래를 장담할 수도 없던 20일이었다.
▲ 영화 <마리우폴에서의 20일> 스틸컷 |
ⓒ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
▲ 영화 <마리우폴에서의 20일> 스틸컷 |
ⓒ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
영화를 본 후 느낀 관객의 심정도 비슷할 것이다. 이는 영화의 존재 이유이며 20일 전쟁을 지켜본 취재진의 마음과도 같다. 분노를 터트리다 못해 이내 먹먹해진 마음은 무겁고 아프다. 처참한 광경을 함께 본 고통은 찰나겠지만 이들의 아픔은 영원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어린 소녀가 울먹이며 "죽고 싶지 않다"고 말한 얼굴이 오랜 잔상을 남긴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도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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