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하고 저항하고 이어낸다... 이들이 카메라 든 이유

김성호 2024. 11. 8.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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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의 씨네만세 875] <봄바람 프로젝트 시즌2: 다시, 바람이 분다> 감독들과의 대화

[김성호 평론가]

다큐멘터리는 기록이다. 실제하는 현상에 카메라를 가져다 대 기록하는 일이다. 카메라를 든 사람의 입장에서 다큐는 욕망을 투영하는 작업이 된다. 무엇을 기록할 것인가를 정하는 일부터, 왜 그를 기록하고자 하는가를 답할 수 있는 이만이 좋은 다큐를 찍어낼 수 있다. 흘러가는 사건, 지나치는 사람들 가운데서 붙잡고 기록하려는 일이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는가.

여기 한 편의 이색적 다큐가 있다. 다큐로선 흔치 않은 옴니버스(공통된 주제나 소재를 바탕으로 한 작품 여럿을 엮어낸 형식) 영화로 열한 편의 짧은 영상을 한 데 모아 상영한다. 이번이 시즌2, 말하자면 속편이 된다. 전편은 2022년 제작된 <봄바람 프로젝트: 여기, 우리가 있다>가 되겠다. 이제 막 순회 상영을 시작한 속편은 <봄바람 프로젝트 시즌2: 다시, 바람이 분다>다. 전편과 마찬가지 형식으로 한국사회 가운데 다양한 저항의 현장을 한 데 모아 엮었다(관련기사: 고립된 현장, 투명해지는 목소리... 다시 이어야 한다 https://omn.kr/2avh8).

다큐멘터리 제작사 오지필름과 부산다큐멘터리네트워크 다다 주관으로 열린 영화 상영회가 지난달 말 있었다. 평론과 함께 영화가 끝난 뒤 감독과의 대화를 주관해달란 청탁을 받았다. 자본과 흥미 위주의 배급판에서 이와 같은 다큐가 상영기회를 잡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정부와 지자체의 문화예술, 또 독립영화 지원 또한 크게 줄며 작은 영화가 대중 일반에게 다가설 통로 또한 크게 줄어든 것이 현실이다. 미약한 힘이나마 '씨네만세'가 그에 보탬이 되기를 바라는 건 다양성을 근간으로 한 문화와 예술을 아끼는 자의 어찌할 수 없는 마음 때문일 테다.
▲ 봄바람 프로젝트 시즌2: 다시, 바람이 분다 스틸컷
ⓒ 다큐이야기
각자도생과 고립, 패배... 그대로 둘 수는 없다

현장엔 작품에 참여한 열다섯 명의 감독 가운데 넷이 참여했다. 총연출 김환태를 비롯해 '지지않는 마음'의 문창현, '가덕도 신공항 백지화하라!'를 만든 권혜린, '향아에게'를 연출한 최태양이다. 이번 '씨네만세 875'에선 상영 뒤 이들과 진행한 인터뷰를 담아 소개한다.

전작과 신작에 대한 평은 앞서 기사로 나갔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 인터뷰에 앞서 간단한 소개를 붙이려 한다. 프로젝트는 지난 2022년 3월, 코로나19로 고립된 전국 각지 저항의 현장을 연결 짓는 시민 활동가들의 여정으로 시작된다. '길 위의 신부'라 불리는 문정현 신부를 중심으로 구성된 봄바람 순례단이 40여 일 동안 전국 60여 곳의 투쟁현장을 찾아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위로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파편화된 사회, 얄팍해지는 공동체 가운데서 고립된 저항의 현장을 두고 볼 수만은 없다는 위기감이 순례의 이유가 됐다.

그 곁에는 순례가 그저 일회적 행사로 그치길 원치 않은 영상활동가들이 있었다. 그를 기록하길 욕망한 이들이 봄바람 순례단과 각 현장의 모습을 담아 한 편의 작품을 만드니, 그것이 곧 1편 <봄바람 프로젝트: 여기, 우리가 있다>가 됐다. 그러나 이후는 어떠했나. 대한민국호의 새 선장으로 취임한 윤석열 대통령과 그 정권은 민주주의의 가치를 훼손하고 사회 전반의 위기를 가속화하고 있다. 각자도생의 추세 아래 저항의 현장은 더욱 큰 고립과 마주한다. 이를 연결하고 지지할 활동가들의 설 자리 또한 열악하기 짝이 없다.

두 번째 작업 <봄바람 프로젝트 시즌2: 다시, 바람이 분다>가 제작된 배경이 바로 이러하다. 모두 15명의 미디어활동가가 참여해 핵발전소와 송전탑, 신공항 건설, 기후위기를 가속화하는 에너지정책, 성폭력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투쟁, 교사에게 고용불안을 강요하는 학교,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과 탄압 등의 주제로 짤막한 작품을 만들어 붙였다.
▲ 봄바람 프로젝트 시즌2: 다시, 바람이 분다 스틸컷
ⓒ 다큐이야기
카메라도 사람도 있다... 왜 하지 않는단 말인가

총감독은 김환태 감독, 세월호 유족 문종택과 함께 침몰참사 뒤 10년의 시간을 아우른 다큐 <바람의 세월>을 막 끝내고 돌아온 이다. 그가 한국사회의 소외된, 하지만 중요한 현실을 조명할 동료들을 섭외해 한 편의 작품을 추진한 결과가 이번 작품으로 이어졌다. '봄바람 프로젝트'라 불린 순례가 끝난 지 2년, 다시 카메라를 든 계기가 무엇이었을까.

김환태가 말한다.

"우리에겐 카메라가 있고, 현장에서 싸우는 사람들이 있고, 투쟁의 주체부터 활동가들까지가 다 있다. 그런 게 서로 연결돼 있고 그 연결된 것에 사람들이 어떤 관심을 보이느냐에 따라 세상이 조금쯤 바뀔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보고 물음표 하나만 품게 돼도 전 이 프로젝트가 성공이 아닌가 생각했다."

말 그대로 영화 속에 담긴 저항의 현장은 각자의 싸움을 전력으로 감당하는 중이다. 서로 다른 단편 가운데서도 그 저항들을 이끈 상대가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인상이 남는다. 무엇이든 부수고 새로 짓는 것이 낫다는 믿음, 그 사이 짓밟히는 것을 돌아보지 않는 폭력적 태도, 심지어는 법과 규제조차 유명무실하게 만드는 공적 기관의 무책임한 모습 따위가 대표적이다.

밀양 송전탑 투쟁은 한국사회의 부정의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2014년 고압송전탑 설치 문제로 주민들과 심각한 갈등을 빚은 이 사건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란 걸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전력 생산지와 소비지가 멀리 떨어진 상황 가운데서 고압송전탑이 지나는 선로 아래, 대부분 쇠락한 시골마을 주민들은 제대로 된 보상 없이 고향을 떠나야 하는 상황에 내몰린다. 할매할배들의 연좌농성이 폭력적으로 진압되고 주민들 중 여럿이 자살을 기도하고 실제로 목숨을 잃는 일까지 벌어졌음에도 송전선로가 설치되고 사안은 일단락된 것처럼 보였다. 그러니 사건은 끝난 것인가. 지나간 옛 일이 되었는가.

밀양 송전탑 투쟁을 함께 해온 활동가를 앞세운 단편 '지지않는 마음'을 찍은 문창현이 말한다.

"이미 끝났다고 여기거나 밀양 투쟁을 아예 모르는 분들도 이 영화를 볼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제작에 굉장히 압박감을 느꼈다. 이 문제를 어떻게 알리는 게 적절할까 하는 고민이 컸다. 십 년 넘게 활동하다 아예 현지에 자리를 잡은 활동가를 섭외해서 끝나지 않는 투쟁을 이어가는 것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를 듣고, 정권이 변해가면서도 핵이며 전기, 발전소 문제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을 전하는 걸로 방향을 잡았다.

결론적으로 밀양의 투쟁이 밀양이란 지역에서 시작되긴 했지만, 전기를 쓰는 우리 모두가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단 얘기를 실제 삶을 바친 활동가의 입으로 전달하면 느끼는 게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검색이라도 한 번 해보지 않을까 그런 생각 말이다. 처음엔 굉장히 긴 투쟁의 역사를 정리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런 고민도 했는데, 주어진 8분을 더 효과적으로 써서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영화를 만든 결과가 이 작품이다."
▲ 봄바람 프로젝트 시즌2: 다시, 바람이 분다 김환태 총감독
ⓒ 오지필름
존재하고 투쟁하는 마음을 잇는 일

신공항 건설 문제도 영화의 주요한 축을 이룬다. 영화에 등장하는 신공항 건설만 두 건, 하나는 부산 가덕도 신공항이고, 다른 하나는 제주 제2공항이다. 전국 대부분 민간공항이 적자에 시달리는 현실 가운데서도 꾸준히 신규 공항 건설계획이 수립되고 추진되는 문제가 두 작품, 나아가 영화 전반의 주제의식을 관통한다.

이중 '가덕도 신공항 백지화하라!'의 감독 권혜린이 말한다.

"가덕도신공항 건설 부지공사는 현재 4차례나 유찰됐다. 국토교통부는 입찰에 응한 현대건설 컨소시움과 수의계약을 체결하고 공사를 강행하려 한다. 4차례 유찰은 건설사에게마저도 무모하고 위태로운 일이란 걸 반증한다. 이 무모한 국책 사업에 부지조성공사에만 10조5000억 원이 책정돼 있다. 생태도 문제다. 활주로를 건설하는데만 자연생태도 1등급인 국수봉을 비롯해 3개 산을 깎고 수심 100미터 이상의 바다까지 매립해야 한다. 지역 성장과는 무관하고 자연을 무분별하게 파헤치는 이 사업은 중단돼야만 한단 걸 자연스레 알리고자 했다.

영화를 통해 우리가 직면한 현장을 연결하고 관객과 같은 시선에서 함께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랐다. 미미할지라도 존재하고 투쟁하는 마음을 관객 한 분 한 분에게만 남긴다면 더 할 나위 없을 것이다."

모두 11편의 단편은 전편보다도 더욱 느슨한 연결고리 아래 꿰어져 있다. 주제뿐 아니라 형식에서도 그렇다. 대부분은 정통 다큐의 형식, 편의상 특정인을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영화 중간 즈음 등장하는 '향아에게'는 짤막한 에피소드가 연속되며 대동소이한 전개를 보이는 가운데 집중을 깨우는 독특한 작품이다. 북한에 두고 온 애인 '향아'에게 보내는 영상편지 형식의 작품으로, 다큐라기보단 문학작품 같단 인상이 들 정도다.

실제 탈북민으로서 자전적 이야기를 제작한 최태양 감독이 말한다.

"한 10년 동안 사귀었던 여자친구에게 한국으로 오기 3일 전에 헤어지자 하면서 같이 가자고 이야기를 못 했다. 그에 대한 죄책감으로부터 출발해서 편지의 내용이 나오는 형식인데, 초반부에선 그런 잘못을 고백하고 다음엔 군사복무 때 있었던 성폭력적 발언에 대해서 여자친구가 '앞으로 대학 가면 그러지 마라' 이렇게 말했고 '그러지 않을 거다' 했지만 대학에서도 끊임없이 반복한 사람이었단 얘기, 세 번째로는 그렇게밖에 될 수 없었던 제도적 문제를 짚는 방식이다.

2023년도에 완성한 작품은 오직 자아성찰에 대한 것으로 마치면서 남과 북의 제도상 차이만 표현하는 정도였다면, 여기 들어간 작품에선 여성가족부가 없어진다는 공약과 현 정권에 대한 비판을 첨가하게 됐다."

하나하나가 한국의 오늘에 실재하는, 또 누군가의 권리를, 그것이 인간이 아닌 자연이며 동물이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미래세대일지라도 침범하고 훼손하는 이야기다. 그 중대한 과제를 수행했음에도 오늘의 관객 앞에 다가설 길은 그리 만만치 않다. 앞서 제작된 1편 역시도 2시간 가까운 러닝타임 탓에 배급에 어려움을 겪었다. 영화를 절반으로 잘라 부분 상영한 적도 적지 않았다. 작품수를 줄여 87분으로 시간을 줄인 것도 이와 같은 이유다. 그럼에도 작품을 만날 기회를 잡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11월 열리는 부산독립영화제에서 상영(11.24. 10:30 영화의전당 시네마테크)을 하기로 했다. 감독님 세 분과 함께 영화가 끝난 뒤 대화를 좀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걸 시작으로 앞으로 배급과 홍보를 어떻게 해나갈지 고민하면서 더 많은 분들과 같이 볼 수 있는 방식도 고민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처럼 많은 분들이 편하게 찾아주실 수 있는 상영이 있는 거고, 이런 이야기가 전해질 수 있는 통로 또한 귀하다. 함께 더 많이 이야기 하고 우리가 뭘 더 해낼 수 있는지 여러 방법을 각자의 자리에서 고민할 수 있었으면 한다."
▲ 제26회 부산독립영화제 포스터
ⓒ 부산독립영화제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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