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덮은 소설, 노벨상 수상 뒤 다시 읽으니

김성호 2024. 11. 8.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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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의 독서만세 255] 한강 <소년이 온다>

[김성호 기자]

작가 한승원을 좋아한다. 그의 글로부터 이해의 지평이 조금쯤 넓어지는 경험을 할 때가 있었던 덕이다. 언젠가 한 번은 퇴근길에 그의 작품을 읽다 감정이 복받쳐 달리는 지하철에서 내려 한바탕 눈물을 쏟은 적도 있을 정도다. 그의 소설이 마음에 닿은 때가 잦았기 때문일까. 나는 갈급한 사람마냥 그가 쓴 더 많은 작품을 읽고자 하였던 것이다.

한강의 작품들을 접한 것도 그래서였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란 미묘한 것이어서 저도 모른 채 무심코 묻어나는 부모의 태가 있는 것이니. 그로부터 또 다른 한승원의 것을, 어쩌면 그보다도 나은 것을 볼 수 있으리라 나는 기대하였다.

<채식주의자>부터 <작별하지 않는다>까지, 나의 시도는 대부분 실패로 돌아갔으나 나는 끝끝내 그녀의 책을 읽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한 번도 만족한 적 없으면서도, 언젠가는 마음을 움직이는 경험을 하게 되리란 기대를 품고서, 거듭 그녀의 작품을 읽어나갔던 것이다.

그 사이 그녀는 주목받는 젊은 작가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소설가가 되었고, 부커상을 받으며 세계적 작가로 떠오르더니 문학계 가장 권위 있는 상이라는 노벨문학상까지 받기에 이르렀다. 나는 여적 단 한 차례도 그녀의 글에 공명한 적 없으면서도 화들짝 놀라 다시 옛 책들을 펼치기에 이른 것이다. <소년이 온다>도 그중 하나다.
▲ 소년이 온다 책 표지
ⓒ 창비
트라우마에 맞서는 서정적 문학이라니

왜 <소년이 온다>였나. 고백하자면 80년 5월 광주를 다룬 여러 작품, 영화와 소설, 드라마까지 많은 작품들 가운데 마음에 닿지 않은 몇 안 되는 작품이 이 책이었기 때문일 테다. 한강의 소설 가운데 그래도 가장 대중적이란 평을 받는 작품이고, 또 노벨위원회가 특별히 다음과 같이 언급한 것이라면, 이 시대 글 쓰고 읽는 이로서 다시 한 번 도전해보아야 하지 않겠냐는 의무감의 발로였달까.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며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강렬한 서정적 산문 for her intense poetic prose that confronts historical traumas and exposes the fragility of human life' -노벨문학상 선정 이유 중에서

80년 5월 18일 광주민주화항쟁은 한국사 최대 비극 중 하나다. 공권력이 어디까지 인간을 해할 수 있는가를 보여준 국가폭력의 사례로써 수많은 일반 민중에게 씻을 수 없는 상흔을 남겼다.

공식 사망자만 166명, 유해를 찾지 못한 실종자 수는 그보다도 많다. 수천에 이르는 부상자, 또 희생자의 유족까지 고려하면 한국사회에 트라우마를 남길 역사적 사건이라는 데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그러고도 지난 수십 년 동안 온갖 황당무계한 주장들이 쏟아지며 그 의미가 더럽혀지니 사건이 남긴 상흔이 여전히 씻기지 않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역사적 필요에 대응하는 건 그대로 문학의 사명이다. 80년 광주를 한국 문학이 거듭 조명해온 것도 그 때문이다. 앞서 직간접적으로 80년 광주를 다룬 수많은 작품이 있지만, <소년이 온다>는 그중에서도 독보적 작품이 됐다. 그건 이 책이 개중 가장 성공한 작품인 때문이지만, 다른 작품과 다른 방식으로 그를 조명한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약간은 불만족스럽게 이 소설을 읽은 나와 같은 독자도 없지는 않을 테다. 한강의 소설 가운데 가장 대중적이라곤 하지만, 여전히 그녀의 문장이 가슴에 닿지 않는 독자가 적지 않을 것이라 여긴다. 노벨위원회가 '시적 산문 poetic prose'이라 표현한 문장의 특수성부터 사물과 사건을 대하는 한강의 독특한 시선과 접근법이 제게 닿지 않는 독자가 있을 테니 말이다. 지난 십수년간 일과 취미로 여러 독서모임을 진행해온 경험에 비추어 보자면, 한국 문학애호가 가운데서도 적어도 절반쯤은 그와 같은 성향을 지니고 있지 않을까 싶다.

10년 전 읽은 그 책, 다시 집어든 이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강의 작품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작업은 이 시대 문학을 대하는 독자로서 의미 있는 일일 테다. 문학이란 독자의 세계를 넓고 깊게 하는 예술이거니와 한강의 소설은 바야흐로 시대의 문학이라 해도 좋을 작품이 되었기 때문이다. 주변의 요청도 많았으나 무어보다 나 스스로의 도전으로써 내가 이 책을 다시 집은 연유다.

<소년이 온다>는 80년 광주의 복판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도청을 점거한 시민군은 곧 계엄군이 시내로 진입해 진압을 시작할 것을 안다. 떠날 자들이 하나둘 떠나지만, 남을 자들은 건물을 지킨다. 죽을 것을 알지만 각오한 이들, 떠나지 않고 맞서기를 선택한 이들의 사연을 전한다.

주인공은 열다섯 소년 동호다. 아들 셋 있는 집의 막내아들로 제 집에 세 들어 살던 친구를 찾아 나섰다가 도청까지 걸음 한 중학생이다. 들어오지 않는 누나를 찾아 나섰다가 역시 집에 들어오지 않는 친구를 찾아서 동호는 도청에 이르렀다.

도청 앞엔 시신이 가득 늘어서 있고, 이를 다루는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일손이 부족하니 돕지 않겠느냔 제안을 받고서 동호는 그곳서 일을 하게 된다. 그처럼 사람을 찾아 온 이들에게 맞는 시신을 내보여 확인시키는 일, 좀처럼 적응할 수 없는 그 일을 앳된 티를 벗지 못한 소년이 한다.

책은 에필로그를 제외하고 모두 6개의 장으로 나뉜다. 소년 동호의 이야기 '어린 새'로 시작한 이야기는 다음 '검은 숲'에선 동호의 친구 정대의 시점으로 옮겨간다. 이 소설 가운데 가장 큰 특색이라 해도 좋을 이 장은 한강 특유의 감성적이고 시적인 문체와 착상으로, 죽어 혼령이 된 정대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죽어 형체가 없는 혼이 되었으나 시신 주변을 떠나지 못하는 화자의 시점에서 다른 시신과 한 데 층층이 쌓인 뒤 마침내 군인들에 의해 불태워지는 모습을 그린다. 민간인 학살과 사체 처리란 충격적 내용을 죽어버린 혼의 시점으로 묘사한 결정이 여러모로 낯설고 어색하지만, 읽는 이에 따라선 충격을 더할 수 있는 장치로 기능하지 않았나 여긴다.

검열, 폭력, 억압, 치욕... 우리가 지나온 시간

세 번째 장의 주인공은 은숙이다. 첫 장에서 아직은 살아남은 자의 이야기를 현재 시점으로 전한 소설은 두 번째 장에 이르러 죽은 자의 눈으로 옮겨가더니, 이제는 그 날로부터 살아남은 자의 이야기를 풀어내기에 이른다. '일곱개의 뺨'이란 제목이 붙은 이야기는 도청에서 동호를 비롯한 이들과 함께 시체 염습을 맡았던 은숙의 몇 년 뒤를 그린다.

동료들의 죽음을 마음에 진 채로 살아남은 은숙이다. 대학교에 입학했으나 2년 만에 자퇴하고 출판사에 입사해 일했다. 그러나 모진 세상은 그녀를 다시 어두컴컴한 수사실로 인도하고, 일곱 대의 따귀를 치기에 이르는 것이다. 검열과 폭력, 살아남은 자의 치욕을 마주한 은숙의 삶이 광주의 그날로부터 얼마 떨어지지 못했음을 비춘 뒤 이야기는 네 번째 장으로 건너간다.

'쇠와 피'는 도청에서 체포돼 모진 고문을 겪은 또 다른 생존자들의 이야기다. 은숙처럼 계엄군이 당도하기 전 도청을 나서지 못한 이들은 정부로부터 모진 고문을 겪는다. 검정색 모나미 볼펜을 손가락에 끼우고 뼈가 드러날 만큼 고통을 겪었던 이들, 그 삭막한 시간이 평생토록 남아 삶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5월의 광주가 남긴 끝나지 않는 고통이 생 전체를 잠식하는 동안, 세상도 사회도 어떠한 도움을 주지 않는다.

'밤의 눈동자'는 은숙과 함께 부상자 치료와 시신 염습을 맡았던 선주의 이야기다. 사건으로부터 무려 20년을 건너온 2000년대, 그러나 선주는 여적 자유롭지 못하다. 광주에서의 일에 대한 증언을 요청받지만, 이름도 얼굴도 나가지 않는 증언이라지만, 심지어는 그 인터뷰조차 대면 없이 처리된다고 하지만 좀처럼 녹음 버튼을 누를 엄두가 나지 않는다. 80년 이전, 방직공장 여공으로 일하다 겪은 그 무참한 일들이 곧 이어 마주할 80년 광주와도 얼마 떨어져 있지 않다. 지난 시간 한국사회 폭력의 얼굴이 어찌나 다양한지를 마주하게 될 뿐이다.

마지막 '꽃 핀 쪽으로'는 막내 동호를 잃어버린 어머니의 시점으로 흘러간다. 사건 전날 밤 둘째와 함께 도청 앞에 도달한 어머니는 어째서 '들어가 막내를 데려 오겠다'던 둘째의 팔목을 잡아끌었나. 제 자식을 잃을 줄 알면서도 어째서 울며 돌아서야 했던가. 그 억눌린 결정이 평생토록 마음을 무너뜨리는 이야기가 작품의 끝을 이룬다. 이로부터 책은 다시 이 모두가 지극히 사실적인 이야기로부터 출발했음을 알리는 에필로그로 이어지며 한 바탕 순회를 마치는 것이다.

얼마나 멋진 일인가, 한국이 한강을 가졌다는 건

80년 광주에 대한 기록을 찾아보았거나, 또 그를 다룬 다른 작품을 접한 적 있는 이에겐 새로운 내용이 많은 책이 아니다. 책이 담고 있는 많은 부분을 이미 다른 작품, 이를테면 극영화와 다큐, 소설들이 수차례에 걸쳐 더 직접적이며 본격적으로 다룬 바 있기 때문이다. 소설의 주요한 특징인 다양한 입장에 놓인 이들에게 서사를 부여하는 작업 또한 새롭다 할 만한 것은 아니다. 그 또한 역사적 비극을 다루는 지극히 일반적인 설정이며 작업이기 때문이다.

다만 두 번째 장, 영혼의 입장에서 시적으로 군대의 잔혹한 학살과 처리를 묘사한 대목은 다른 어느 작품에서도 마주한 적 없는 새로움이다. 그와 같은 묘사가 한강의 특징적 문체며 접근법과 어우러져 더욱 특별한 감상을 일으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근 10년의 시차를 두고 다시 읽은 그 글이 여전히 낯설고 어색하단 인상이 드는 건 어찌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것이 과감한 문학적 시도이고 특정 독자들에겐 선명한 효과를 일으킬 수 있으리란 걸 부정할 수는 없겠다.

공들여 다시 읽은 시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강의 작품에 깊이 공명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새로이 보이는 건, 또 <소년이 온다>를 건너 <작별하지 않는다>에 이르기까지 한국사의 비극이며 국가적 폭력이 남긴 파장에 대하여 외곽부터 섬세하게 다가서는 민감한 감수성이 아직 한국 문단에 살아남아 있다는 점일 테다.

보다 전격적으로 다가서고 문제의 근원을 파헤쳐 거세게 몰아치는 문학에도 나름의 가치가 있는 것이지만, 이와 같이 에둘러 돌아가며 익숙한 시선과 민감한 감수성을 드러내는 작품에도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여긴다.

무엇보다 한강의 노벨상 수상은 무척이나 멋진 일이 아닌가. 한강을 애정했던 이들에겐 그들의 작가가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일일 것이며, 그에게 익숙지 않은 이에게도 무려 노벨문학상 수상자보다 더 좋아하는 작가가 한국 문단에 수두룩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한국문학의 깊이와 넓이를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단 사실과 동시에, 시대의 아픔을 놓치지 않고 어루만져온 이들에게 한국사회가 먼저 보내지 않은 격려를 노벨위원회가 보내주었음을 기쁘게 여길 뿐이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서평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독서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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