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디or보기]김주형의 ‘라커룸 파손’ 사태, 더 이상 확대는 멈춰야 한다
지난 2주간 국내 골프계는 난데없는 광풍에 휩싸였다. 그 진원지는 김주형(22·나이키)이었다. 본보가 ‘김주형, 연장전 패배 분풀이로 락커룸 파손해 구설수’라는 제하의 기사(국민일보 10월 28일 인터넷판)를 최초로 게재하면서다.
사건은 지난달 24일부터 27일까지 나흘간 인천 송도 잭니클라우스GC에서 DP월드투어와 KPGA투어 공동 주관으로 열렸던 제네시스 챔피언십 최종 라운드 직후에 발생했다. 당시 김주형은 연장전에서 선배 안병훈(33·CJ)에게 패해 준우승으로 대회를 마쳤다.
기사는 제보를 받고 고민 끝에 작성됐다. 지난 34년간 국내외 골프 현장을 취재한 골프 전문 기자로서 골프의 근간을 뒤흔든 일탈 행동이라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후 여러 매체에서 후속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김주형의 해명도 시시각각 변하긴 했지만 이어졌다.
처음 해명은 연장전에서 패한 뒤 스스로에게 너무 화가 나 분을 삭이지 못해 나온 우발적 행동으로써 사과드린다는 게 골자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프레임이 전환되기 시작했다. 일부 매체를 통해 ‘발로 차거나 주먹으로 치지 않았다’, ‘문을 열었는데 저절로 떨어졌다’, ‘경첩 나사가 풀려 있었다’로 해명이 바뀌기 시작했다.
급기야 한 골프 전문 케이블 채널에 출연해서는 처음 해명과는 180도 달라진 주장을 펼쳤다. 문이 떨어질 것 같아 안전을 위해 캐디, 매니저와 함께 문을 떼서 옆에 세워 뒀는데 아침에 일어나 기사를 보고 너무 황당했다는 것이었다.
한 마디로 자신의 잘못은 전혀 없고 시설을 제대로 점검하지 않은 클럽 측에 문제가 있다는 의미로 충분히 읽힐 수 있는 해명이었다. 이후에 나온 기사는 죄다 그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현장 목격자의 증언이 나오지 않은 가운데 스스로 유일한 목격자라 생각한 김주형의 입을 통해서만 증언이 마치 중계되듯 이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당시 상황을 가장 잘 아는 잭니클라우스GC마저 초기 대응과 달리 시간이 지나면서 아예 입을 닫고 말았다는 것도 그런 기류가 형성되는데 한몫했다. 클럽 측의 한 관계자는 “할 말은 많지만 지금은 노코멘트”라고 했다. 또 한 인사는 “시끄러운 걸 싫어하는 모기업(포스코 그룹)의 기업 문화를 이해해달라”고 했다.
김주형의 해명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다. 그게 사실이라면 지나가던 소가 웃을 일이다. 골프장이 다름 아닌 잭니클라우스GC이기 때문이다. 정회원수 250명, 회원권 거래 가격이 30억 원이지만 시중에 매물을 찾을 수 없는 우리나라 프라이빗 회원제 골프장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곳이다.
그런 잭니클라우스GC의 락커룸 문이 시설 낙후와 관리 소홀로 ‘월클’ 골프 선수를 자칫 위험에 빠트리게 했다고 한다면 그걸 믿을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어쨌든 간에 이번 사태로 잭니클라우스의 권위와 명예 실추는 불가피해졌다. 다수의 회원이 클럽 측의 수세적 대응에 엄중 항의를 한 것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일부 격앙된 회원들은 김주형의 영구 출입 정지를 요구하기도 했다.
누군가가 말한다. ‘만약 이런 일이 마스터스 개최지 오거스타 내셔널GC에서 발생했더라면 어떤 결론이 내려졌을까’라고. 물론 그런 정제되지 않은 행동을 한 선수는 지금껏 없었고 앞으로도 나오지 않을 것이다. 설령 나오더라도 잭니클라우스GC와 달리 오거스타GC의 추상같은 조처가 내려질 것이다. 그런 점에서 클럽의 권위와 명예를 스스로 내팽개친 잭니클라우스GC의 처신은 여전히 납득이 가지 않는다.
이번 사태는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는 꼴이 돼버렸다. 김주형 측이 최초의 사과 기조를 그대로 유지했더라면 혈기왕성한 젊은 선수의 우발적 행동으로 어쩌면 너그러이 넘어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김주형 측은 그 길을 택하지 않았다. 자신의 허물을 덮기 위해 무리수를 둬 사태를 더 키우는 우를 범했다.
연일 후속 기사가 쏟아지는 가운데서도 기자는 줄곧 추이를 지켜보았다. 김주형에게 소명 기회를 주고자 6일 오후 2시로 예정된 KPGA 상벌위원회에서 김주형의 소명과 위원회의 결론을 확인한 뒤 후속 행동을 하는 게 온당하다는 판단에서였다. 이날 상벌위원회는 예정대로 개최됐으나 김주형은 서면 진술서를 제출하고 불참했다. 대신 법률 대리인이 출석해 1시간가량 소명을 했다.
KPGA가 3시간가량의 상벌위원회를 마친 뒤 발표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하루 전날 제출한 김주형의 서면 진술서에 ‘우승을 놓쳐 기분이 상해 거칠게 락커룸 문을 잡아당겨 문이 파손됐다’는 내용이 있다. 이를 근거로 상벌위원회는 자신의 감정을 부적절하게 표출, 기물이 파손된 점을 고려해 선수로서 품위 유지 의무를 위반한 것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위원회는 다만 재물 손괴의 정도가 크지 않고 골프장이 이를 크게 문제 삼지 않는 점, 선수가 간접적으로 잘못을 어느 정도 시인하고 사과를 표한 점, 그리고 경기가 진행되는 경기장이 아닌 라커룸에서 발생한 일인 점을 고려해 가장 낮은 수위의 징계인 ‘서면에 의한 경고 조치’ 처분을 내렸다.
이 처분을 김주형이 받아들일 수 없다면 재심을 청구할 수 있다. KPGA 상벌위원회는 징계 처분에 대해 이의가 있을 시 징계 통지를 받은 날로부터 15일 이내에 위원회에 재심을 청구하도록 하고 있다.
기자는 처음 기사를 게재하고 나서 한동안 꽤 많은 항의성 문자와 전화에 시달렸다. 심지어 오해가 있었다는 걸 인정하고 결자해지의 심정으로 매듭을 풀어 주길 바란다는 사람도 있었다. 오보를 인정하라는 협박으로 느껴졌다. 상벌위원회의 결정 직후엔 사진을 찍어 유포한 사람이 품위 유지 의무를 위반했지 김주형은 아무 잘못이 없다는 문자도 받았다.
상벌위원회의 결정으로 그런 행위는 이제 멈췄으면 한다. 결코 선수를 위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맹목적으로 허물을 덮어 주는 행위는 해당 선수에게도 절대 도움이 안 된다. 선수를 사랑하고 아끼는 방법은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전도유망한 젊은 선수가 곁길로 빠지지 않도록 인도하는 건 어른들의 몫이다. 그리고 그게 진짜 자신이 좋아하는 선수를 위하는 일일 것이다.
또 하나 명심할 것은 영원한 비밀은 없다는 것이다. 진실은 언젠가 밝혀지기 마련이다. 당시 상황을 목격한 목격자와 관련 증거가 없을 것으로 단정하는 건 김주형 측의 희망사항이다. 시기상조일 뿐 언젠가 공개될 개연성은 농후하다. 그 여부는 김주형과 주변 사람들의 향후 행동 여하에 전적으로 달려 있을 것이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절대 가릴 순 없기 때문이다.
아무쪼록 김주형이 이번 사태를 자성의 계기로 삼아 세계적인 골프 선수로 성장하길 진심으로 바란다.
정대균 골프선임기자 golf560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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