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내려가 부담 더 커진다는데…생보사 저축보험 '불나방 경쟁'
새 회계로 재무적 부담 확대되면서
판매 위축 점쳐졌지만 오히려 활황
예상 빗나간 현실에 쌓이는 리스크
국내 생명보험사들의 저축성 상품 판매량이 올해 들어 3조5000억원 넘게 불어나면서 반년 동안에만 8조원에 육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새로운 국제회계기준(IFRS17)으로 인해 저축성보험을 둘러싼 생보사의 재무적 부담이 커지면서 영업에 제동이 걸릴 것으로 봤지만, 현실은 예상과 정반대인 모습이다.
이런 와중 금리 인하로 생보업계가 받는 압박감이 더욱 가중될 것으로 보이는 만큼, 저축성보험을 두고 벌어지는 불나방식 경쟁에서 잠시 물러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8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22개 모든 생보사들이 저축성 상품에서 거둔 초회보험료는 총 7조9623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79.1%(3조5161억원) 늘었다. 초회보험료는 고객이 보험에 가입한 뒤 처음 납입한 보험료로, 보험업계의 성장성을 가늠하는 대표적 지표다.
생보사별로 보면 교보생명의 저축성보험 초회보험료가 1조8273억원으로 같은 기간 대비 3.3% 줄었지만 여전히 최대였다. 그 다음으로 한화생명이 1조5695억원으로, NH농협생명은 1조4282억원으로 각각 1599.2%와 6288.9%씩 해당 금액이 급증하며 뒤를 이었다. 삼성생명의 저축성 상품 초회보험료는 1조2853억원으로 13.1% 감소했지만 아직 조 단위를 유지했다.
이어 중·소형 생보사들의 성장세가 가팔랐다. ABL생명은 4573억원으로, 동양생명은 4267억원으로 각각 3만8196.4%와 11만9426.1%씩 저축성보험 초회보험료가 폭증했다. 푸본현대생명도 3807억원으로, 신한라이프생명은 2345억원으로 각각 10.5%와 3188.8%씩 관련 실적이 증가했다. KB라이프생명의 저축성 상품 초회보험료 역시 2145억원으로 1941.2% 늘며 규모가 큰 편이었다.
생보업계의 이같은 저축성보험 확대에 눈길이 가는 이유는 당초 예상에서 크게 벗어난 흐름이라서다. 보험사 회계에 지난해부터 IFRS17이 도입되면서, 시장에서는 저축성 상품 영업이 크게 위축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이는 IFRS17 적용 이후 지나친 저축성보험 판매는 생보사에게 짐이 될 거란 분석 때문이었다. IFRS17에 따라 저축성 상품은 소비자에게 돌려줘야 할 환급금 규모가 크고 부채로 잡히게 된 만큼, 재무 건전성 측면에서 관리가 까다롭게 됐다. 또 IFRS17 시행으로 보험사의 부채 평가 기준이 원가에서 시가로 바뀌면서, 가뜩이나 보험사의 보험금 부채 부담은 크게 확대된 상황이다.
여기에 더해 한동안 지속돼 온 역대급 고금리 기조가 저물고 내리막이 시작된 현실도 걱정을 키우는 대목이다. 시장 금리가 내려갈수록 높은 이자율을 무기로 판매된 저축성 상품은 보험사에게 이차역마진을 안기며 애물단지가 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고금리로 판매된 저축성보험은 가입자에게 돌려줘야 할 이자가 많은데, IFRS17은 이 차이를 모두 부채로 계산한다.
한국은행은 이번 달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연 3.25%로 0.25%포인트(p) 내렸다. 이로써 2021년 8월 시작된 통화 긴축 기조는 3년 2개월 만에 비로소 종지부를 찍었다.
앞서 한은은 2022년 4월부터 지난해 1월까지 사상 처음으로 일곱 차례 연속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이중 7월과 10월은 기준금리를 한 번에 0.5%p 올리는 빅스텝을 단행했다. 이에 따른 한은 기준금리는 3.50%로, 이번 금리 인하 전까지 2008년 11월의 4.00% 이후 최고치를 유지해 왔다.
시장에서는 저축성보험 영업에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보험사 입장에서 저축성보험은 일시납 가입이 많은 특성상 유동성을 확보하기 좋고, 영업 포트폴리오를 다양하게 유지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도 상품을 유지할 필요성이 충분하다"면서도 "IFRS17이 가져올 부정적 영향과 시중금리 인하에 따른 장기적 리스크 등 금리에 민감한 성격을 고려하면, 현시점에서의 판매 확대는 자칫 출혈경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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