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은 사과했지만, 국민은 사과받지 못했다” [현장에서]

허진 2024. 11. 8.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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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7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실에서 대국민담화 및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현동 기자


“사과는 했는데, 왜 사과받지 않은 기분이 드냐.”

윤석열 대통령의 7일 대국민담화 및 기자회견을 현장에서 지켜본 뒤 회견장을 나서자 휴대전화에 제법 많은 양의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게 바로 저 문구였다. 15분의 대국민담화, 125분의 기자회견을 관통하는 가장 적확한 촌평이었던 까닭이다.

윤 대통령은 분명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제 부덕의 소치”라며 “국민 여러분께 먼저 죄송하다는 말씀, 진심 어린 사과의 말씀부터 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평소 사과에 인색하단 평가를 받던 윤 대통령이 전향적인 모습을 보이는 듯싶었다.

하지만 기자단과의 질의응답이 길어질수록 첫 인상은 희미해져 갔다. 김건희 여사 문제에 관해 윤 대통령은 “침소봉대는 기본이고, 없는 것까지 만들어서 그야말로 저를 타깃으로 해서 제 처를 많이 악마화시켰다”고 답했다. 윤 대통령의 말대로 대선 레이스 초반 김 여사를 겨냥한 ‘쥴리’ 논란 등 좌파 진영의 마녀사냥은 극심했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을 고리로 한 특검법 역시 정쟁용 성격이 강했다. 이는 대다수 국민도 인지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후 불거졌던 디올백, 한남동 라인, 명태균 메시지 논란 등도 단순히 ‘김건희 악마화’의 산물이었을까.

결국 회견 막바지에 ‘구체적으로 무엇에 대한 사과냐’는 물음엔 “구체적으로 말하기가 어렵지 않으냐”며 “(경남 창원 국가 첨단산업단지 선정 개입 의혹은) 사실과 다른 일이기 때문에 그것은 인정할 수도 없고 모략”이라고 했다. 사과의 시간은 짧고, 변명의 시간은 길었던 회견으로 전락하는 순간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7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실에서 열린 '대국민담화 및 기자회견'에서 국민들에게 사과하며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명태균씨 통화 녹취와 관련해 공천 개입 의혹을 설명하는 과정에선 대통령의 안일한 인식이 드러났다. “누구를 꼭 공천해 주라고 그렇게 사실 얘기할 수도 있다. 그게 외압이 아니라 의견을 얘기하는 것”이란 발언은 대통령의 공천 개입이 별 문제가 아니라는 것처럼 들릴 수 있었다. 과거라면 모를까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진박’ 공천에 개입한 혐의(공직선거법 위반)로 징역 2년을 선고받은 2018년 이후부터는 엄격히 금지되는 행위다. 주지하다시피 당시 박 전 대통령을 기소한 사람은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었다.

사실 이번 회견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떨어질대로 떨어진 국정운영 동력을 반전시킬 수습책을 내놓는 것이었다. 윤 대통령의 말처럼 “우리의 생각은 과거에 가 있고, 현실은 그렇지 못한 부분”일 수도 있지만 인적 쇄신은 대통령의 가장 강력한 권한인 인사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그럼에도 윤 대통령은 속 시원한 답변을 하지 못했다. ‘총리 추천을 야당으로부터 받겠다’ 같은 파격적 제안을 설사 못 한다 해도 ‘전면 개각을 통해 심기일전하겠다’와 같은 의지 표명도 없었다. 지지율을 올릴 수 있는 방안을 묻자 “(지지율을 올리는) 꼼수 같은 것은 저는 쓸 줄도 모르고 제 체질에도 안 맞다”고 답변한 것이 고작이었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22일 부산 범어사를 방문해 “돌을 던져도 맞고 가겠다”고 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마이 웨이’로만 읽혀서다. 윤 대통령의 추진력은 의대 정원 증원 문제만 보더라도 누구나 알 수 있다. 국민은 지금 왜 그런 추진력을 자신과 김 여사 문제 해결에 쓰지 못하는지 묻고 있다. “제 진심은 늘 국민 옆에 있었다”는 대국민담화 속 발언이 국민에게 진심으로 다가가려면 이제는 윤 대통령이 변해야 한다.

허진 대통령실팀장

허진 기자 b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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