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책과 길] 여름 태생 아이들은 왜 독감에 더 잘 걸릴까

맹경환 2024. 11. 8.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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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차트 속에 숨은 경제학
아누팜 B. 제나·크리스토퍼 워샴 지음, 고현석 옮김
어크로스, 424쪽, 2만2000원
게티이미지뱅크


언제 어느 병원을 가든 최상의 진료를 받을 수 있다고 기대한다. 사실은 다르다. 너무나 많은 우연에 의해 생각지도 못한 변수가 발생한다. 발목을 다쳐 응급실을 갔을 때 담당 의사가 누구인지에 따라 진료 경로가 달라질 수 있고, 마침 대기실 옆 사람이 독감 환자였다면 2주 뒤 독감 진단을 받을 수도 있다. 의사이자 경제학자와 통계학자로 의학계 괴짜로 불리는 저자들은 우연과 변수에 주목했고 그에 따른 결과도 달라진다고 주장한다. 이들의 분석 방법은 대상을 치료군과 대조군으로 나눠 추적·관찰하는 전통적인 ‘무작위 비교 분석’이 아닌 경제학을 비롯한 일부 사회과학에서 활용되고 있는 ‘자연 실험’이다. 자연 실험은 연구자의 통제 범위 밖의 자연적 요인의 영향을 분석해 의미 있는 결과를 찾아낼 수 있다.

예를 들면 대통령의 노화 속도가 빠르다는 가설을 입증하기 위해 무작위로 선발된 사람들을 일부(치료군)는 대통령의 삶을 살게 하고, 나머지(대조군)는 그렇지 않은 삶을 살도록 한 뒤 노화 정도를 비교하는 것은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역대 대선에서 당선된 그룹과 2위를 한 그룹을 비교하면 가설이 맞는지 확인할 수 있다. 실제 분석 결과에 따르면 대통령의 노화 속도가 빠르다.

자연 실험의 아이디어는 주변에서 얻을 수 있다. 여름에 태어난 자녀를 둔 저자들은 출생 직후 소아과 정기 검진을 받은 뒤 가을에 다시 독감 예방 접종을 받는 것이 번거롭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실제 여름에 태어난 아이들이 독감에 걸릴 확률이 높은지 확인하기 위해 자연 실험을 했다. 특정 환자에게 어떤 처방과 치료가 진행됐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보험금 청구 내역이 훌륭한 데이터가 됐다. 보통 생일 때쯤에 받는 정기 건강 검진 때 독감 예방접종을 같이 받을 가능성이 큰 10월에 태어난 아이들의 경우 55%가 예방접종을 받았지만, 5월에 태어난 아이들은 그 비율이 40%에 불과했다. 5월에 태어난 아이 100명 중 15명이 10월에 태어났다면 예방 접종을 받을 수 있었다는 얘기다. 많은 숫자가 아니라고 할 수 있지만 전국 단위로 범위를 넓히면 수십만명에 달할 수 있다. 예방 접종을 하지 않으면 독감에 걸릴 확률은 높아진다. 예측대로였다. ‘우연히’ 여름에 태어난 아이들은 가을에 태어난 아이들보다 독감 진단 확률이 올라갔다. 미국에서 성인들은 병원이 아닌 집 근처 약국에서도 예방 접종을 받을 수 있다. 저자들은 아이들이 10월에 태어나게 만들 수 없는 만큼 아이들의 예방 접종 접근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지적한다.

미국의 학기는 대부분 9월 1일 시작한다. 생일이 8월 31일이냐 9월 1이냐에 따라 어떤 차이가 있을까. 8월 31일에 태어난 아이는 그 전해 9월에 태어난 아이보다 364일이나 어리지만 같은 학년이다. 나이가 어릴수록 1년 가까운 시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스포츠 분야에선 같은 학년이라도 생물학적인 나이가 많은 선수들이 더 뛰어난 기량을 보인다는 ‘상대 연령 효과’가 입증돼 있다. 저자들은 ‘상대 연령 효과’가 의료 분야에서도 적용될 수 있다는 가설을 세웠다. 특히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ADHD)에 주목했다. 입학 기준일이 9월 1일인 주에서 8월에 태어난 아이들이 동일 학년에서 가장 생물학적 나이가 많은 전년 9월에 태어난 그룹보다 ADHD 진단 및 치료 비율이 34% 높다는 점을 확인했다. 가설이 옳은지 확인하기 위해 7월 출생 그룹과 8월 출생 그룹 사이, 9월 출생 그룹과 10월 출생 그룹 사이의 ADHD 진단율을 각각 비교했더니 별 차이가 없었다. 저자들은 “8월생 아이들이 과잉 진단과 과잉 치료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면서 “의사들이 상대 연령 효과를 고려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책 속에는 다양하고 흥미로운 자연 실험 결과들이 제시된다. 마라톤 대회가 열리는 날 심장 마비 또는 심정지로 입원한 65세 노인환자가 30일 이내에 사망할 확률은 마라톤 대회가 없는 날보다 높았다. 이유는 교통 통제로 인해 응급환자의 이송시간이 늘었기 때문이다. 의료 당국의 정기 조사가 진행되는 기간의 수술을 받은 환자의 평균 사망률은 조사가 없는 주에 비해 낮았다. 감시자의 존재 여부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외과 의사가 생일날 수술을 집도한 환자의 사망률은 높아졌다. 수술을 마치고 있을 생일 파티 생각에 주의력이 떨어졌을 수도 있다.

저자들은 “의료에서 우연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한 연구는 환자의 건강과 우리 사회의 안녕에 기여할 수 있다”면서 “사용 가능한 데이터 풀과 디지털 분석 도구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활용하면 우리 모두의 건강 결과를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한 가지 사례를 제시한다. 2021년 2월 텍사스주에 몰아친 한파로 대규모 정전 사태가 발생했고 주민 수백명이 일산화탄소 중독 진단을 받았다. 유독 가스가 발생하는 휴대용 발전기 때문이었다. 저자들은 자연 실험에 나섰다. 미국의 주요 정전에 대한 에너지부의 자료와 보험 청구 데이터를 사용해 정전이 48시간 이상 지속될 경우 일산화탄소 중독 위험이 기준치보다 9.3배 높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위험을 정량화할 수 있다면 위험을 낮출 수 있는 개선책도 마련될 수 있다는 것이다.

⊙ 세·줄·평 ★ ★ ★
·괴짜 의사들의 괴짜 연구 결과가 흥미롭다
·병원과 의사들을 다른 눈으로 보게 된다
·불필요한 내용이 없고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맹경환 선임기자 khmae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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