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안보 자립’ 석유·가스·조선·방산 수혜… ‘IRA 존폐기로’ 車·배터리 비상… 반도체 안갯속
대중 제재에 반사이익 기대도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에 따라 국내 산업별 희비가 극명하게 갈릴 전망이다. 석유·가스·조선·방산 업계는 규제 완화 정책 기조에 힘입어 반사이익을 볼 것으로 기대되는 반면 조 바이든 행정부 덕을 봤던 이차전지·전기차·건설 업계는 공포에 직면해 있다. 반도체의 경우 미국 보조금 경쟁에서 밀릴 수 있다는 우려와 중국 업체들의 추격을 따돌릴 기회가 될 것이라는 낙관론이 교차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석유·가스 개발을 통해 에너지 비용을 낮추겠다고 공언해왔다. 에너지 가격이 하락하면 국내 정유·액화천연가스(LNG) 업계는 비교적 낮은 가격에 에너지를 수입해 수익성을 높일 수 있다. 천연가스를 수송할 운반선 건조 기술력을 가진 국내 조선 업계에도 반가운 소식이다. 트럼프 당선인이 7일 윤석열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한국 조선업계의 도움과 협력이 필요하다고 언급한 것도 조선 업계의 기대를 높였다. 국내 업체들이 준비하던 미 해군 유지·보수·정비(MRO) 시장 진출에도 청신호가 켜졌다.
반면 전기차 업계는 20%에 달하는 기본관세가 실제 도입될 경우 판매량이 크게 줄어들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대당 7500달러에 달하는 전기차 세액공제가 축소되면 판매량 저하로 이차전지 업계의 타격도 불가피하다. 조성대 한국무역협회 통상지원실장은 “인플레이션감축법(IRA) 폐기를 반대하는 공화당 의원들이 꽤 있지만 실제로 폐기가 없을 것이라고 낙관하기는 어렵다”며 “면밀한 모니터링과 의원별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건설 업계는 트럼프 당선인의 공격적 외교 정책이 불러올 리스크에 노심초사하고 있다. 해외건설협회는 보고서에서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 외교 정책은 중동에서 미국의 군사적 개입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며 “역내 정치적 불안으로 대규모 투자나 주요 프로젝트 지연이 우려된다”고 밝혔다. 9월 말 기준 한국 건설사의 해외건설 지역별 계약 현황에서 중동은 57.2%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반면 전자·반도체 업계는 불확실성이 더 커지면서 예측이 불가능한 시계 제로 상태에 빠져 있다. 우선 미국 칩스법(반도체지원법) 혜택을 받던 우리 기업들이 약속된 보조금을 받을 수 있을지가 미지수다. 본래 삼성전자는 반도체지원법에 따라 64억 달러(약 8조9400억원)의 보조금을 받기로 돼 있었다. 트럼프 당선인은 “우린 부자 기업들에 수십억 달러를 내어주고 있다”며 반도체지원법 대신 관세 정책으로 투자를 유도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반도체지원법 자체를 폐기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이주완 전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반도체지원법 폐기는 의회 동의까지 거쳐야 하는 사안이라 독단적 결정이 불가능하다. 다만 미국 기업에 우호적으로 보조금을 배분하는 식의 조정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강력한 대중(對中) 제재는 양날의 검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미국 상무부의 VEU(검증된 최종 사용자)에서 탈락하면 당장 중국 공장에 첨단 반도체 장비 반입이 막히며 운영에 차질이 생긴다. 반면 대중 제재로 CXMT·SMIC 등 중국 반도체 업체들이 주춤하는 사이 한국이 기술 격차를 벌리며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낙관론도 있다. 이 전 연구위원은 “트럼프 당선인이 1기 행정부 때보다 더 강력한 반도체 장비 반입 제한 조치를 시행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고 했다.
반도체 업계의 운명은 트럼프 당선인이 취임하고 난 뒤에야 서서히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학과 교수는 “유세 기간에 공개한 강경한 정책을 그대로 추진할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라며 “그가 공언한 것처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의 조기 종식에 성공할 경우 오히려 글로벌 경영 환경은 더 안정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지훈 권중혁 윤준식 임송수 기자 germa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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