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주도적으로 공부하고 질문 풍성한 교실 만들고 싶어”
정근식 서울시교육감은 ‘서울 교육의 수장에 오른 소감’을 묻자 손사래부터 쳤다. ‘수장’이란 표현 말고 ‘동반자’란 말을 써달라고 했다. 자신은 학생과 학부모, 교사의 동반자 역할을 맡았다고 강조했다. 적어도 올해 말까지는 학교 현장의 얘기를 듣는 데 집중하겠다고 했다.
진보 진영 단일후보로 추대돼 과반 득표했지만 뜻을 펼 환경이 녹록하진 않다. 보수성향의 정부와 서울시장, 시의회 등에 포위된 형국이다. 그는 정치 지형이나 이념의 이분법을 상당히 경계하는 모습이었다. 교육감은 교육 주체들과 소통하는 사람이지 싸우는 자리가 아니라고도 했다.
지난달 17일 임기를 시작한 정 교육감을 지난 5일 교육감 집무실에서 인터뷰했다. 그는 “학생이 주도적으로 공부하고, 질문이 풍성한 교실을 만들고 싶다”고 강조했다. 아래는 일문일답.
만난 사람=이도경 교육전문기자
-과반 득표로 당선됐다. 선거 결과를 어떻게 보는가.
“50.2%를 강조하는 분도 있고, 23.5%를 말하는 분도 있다. 앞의 숫자는 제 득표율, 뒤는 보궐선거 투표율이다. 낮은 투표율을 강조하시는 분들은 대표성이 충분하지 않으니 승리에 우쭐대지 말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거라고 생각한다. 저도 방점을 ‘23.5’에 찍고 저를 지지하지 않은 분들의 목소리를 좀 더 열심히 경청하려는 마음을 갖고 있다.”
-진보 후보의 과반 달성은 윤석열정부 지지율이 반영된 결과라는 분석도 있다.
“(윤석열정부의 낮은 지지율이) 일부 작용했다고는 생각하지만 그것보다는 교육감 선거의 특성이 작용했다고 본다. 교육감 선거가 기본적으로는 정치 지형 속에 있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지만 교육이라고 하는 고유한 특성이 있다. 만약 정부 지지율이 크게 작용했다면 (보수 후보와) 훨씬 격차가 컸을 것이다. 아무튼 좀 겸허하게 출발하고 싶다.”
-취임 1호 결재가 ‘서울 학습진단치유센터(가칭) 설치’였다.
“기초학력 보장을 통한 교육격차 극복을 가장 시급한 문제로 생각했다. 센터는 학교 안팎에서 이뤄지고 있는 ‘다중 학습안전망’ 중 학교 밖의 지원 기능을 수행한다. 센터의 전문적인 진단과 지원을 통해 모든 학생의 개별 맞춤형 교육이 가능할 거로 기대한다. 최근 학생들의 어려움은 매우 복합적이고 다양한 요인으로 발생한다. 예컨대 난독증, 경계선지능 등으로 발생하는 어려움을 학교가 전부 돌보긴 어렵다. 교육청이 대학, 지자체, 전문기관 등과 협력해 심층 진단부터 맞춤 지원까지 ‘원스톱 체계’를 구축하겠다.”
-학생 개별 맞춤형 교육을 강조했다.
“학교는 학생들의 잠재능력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이를 끌어내는 기능을 해야 한다. 기존 지식을 학생에게 심어주는 일은 인공지능(AI)으로 대체된다. 교육 선진국은 학생의 시험 점수가 높은 국가를 말하는 게 아니다. 누구나 자기가 배우고 싶은 걸 배우고 그 속에서 즐거움을 찾고 이를 통해 사회에 기여하는 그런 환경을 갖춘 곳이라 생각한다. 이런 환경 속에서는 학생들의 경쟁력도 높아진다. 공부와 놀이가 구분되지 않는 상태에서는 (학습 과정에서의) 고통 역시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다.”
-교사 1명이 20~30명을 가르치는 환경에서 개별 맞춤형 교육 가능한가.
“일단 학급의 학생 수가 더 줄어야 한다. 선생님이 학생과 관계를 맺는 시간도 많아져야 한다. 교사가 학생의 적성이나 능력을 제대로 파악하도록 충분한 시간을 줘야 한다. 교사 잡무를 줄이는 부분도 있고, 기본적으로 학년이 바뀌면 담임교사가 바뀌는데, 다른 방식은 없을까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이런 변화가 하루아침에 가능한 것은 아니다.”
-객관식 지필평가를 ‘과거형 학력’으로 규정했다. ‘미래형 학력’이란.
“미래형 학력은 학생 스스로 삶과 학습을 주도하는 ‘학생 주도성’과 ‘질문하는 힘’이다. 질문하는 능력은 그냥 나오는 게 아니라 수많은 독서와 글쓰기를 통해 길러진다. 디지털 기기를 활용한 정보를 찾아 자기 것으로 만드는 능력도 필요한 부분이다. 질문하는 교실을 만들고 싶다. 우리는 세계적인 석학을 데려와 강연을 해도 질문 있냐고 물으면 아무도 손을 안 든다.”
-교육부도 학생 맞춤형 수업을 위해 AI 디지털 교과서를 추진하고 있다.
“오는 29일 AI 교과서 검정 합격 공고가 이뤄지고 12월부터 학교들이 교과서를 선정해야 한다. 선정된 교과서로 교사 실습 및 연수도 진행해야 한다. (교육부가) 급하다고 생각한다. AI 교과서가 연착륙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 가장 이상적인 방식은 검증 후 도입이다. 학교 현장의 우려가 있는 게 사실이다. 신중한 검토와 토론이 필요하다. AI 교과서가 나오면 학교 현장의 반응을 확인하겠다.”
-AI 교과서를 학교 현장에서 거부한다면 교육부와 맞설 생각인가.
“어떤 사람들은 교육감이 싸워주길 원하지만 교육감은 싸우는 사람이 아니다. 서로 다른 의견을 조정해서 학부모들이 안심하고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을 모색하는 사람이다. AI 교과서는 충분한 검증과 숙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본다.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등을 통해 의견을 나누고 정부와 소통할 생각이다.”
-남은 임기 서울 교육을 어떻게 이끌 것인가.
“현장 얘기를 많이 듣고 싶다. ‘당신의 교육 철학을 말하라’고 하시는데 지금은 들어야 할 타이밍이다. 강남 3구에 제가 관심이 없다고 하는데 아니다. 관심, 정말 많다(웃음). 강남 3구를 포함해 현장을 많이 다니며 연말까지는 듣는 데 집중하겠다.”
이도경 교육전문기자, 정리=김용현 기자 yid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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