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윰노트] 노래가 말을 걸 때

2024. 11. 8.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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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제가 'APT.'서 건넨 대화종종 활용된 음악의 치트키심리적 거리감 크게 줄여줘여기 가도 APT., 저기 가도 APT.였다.

블랙핑크의 로제가 오는 12월 발표할 첫 솔로 앨범 'rosie'에 앞서 공개한 노래 'APT.'는 발표와 동시에 국내외를 막론하고 빠른 속도로 인기를 높였다.

노래에 불현듯 등장하는 일상적 대화는 사실 시대를 막론하고 다양하게 활용된 음악의 치트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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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하 대중음악평론가

로제가 'APT.'서 건넨 대화
종종 활용된 음악의 치트키
심리적 거리감 크게 줄여줘

여기 가도 APT., 저기 가도 APT.였다. 블랙핑크의 로제가 오는 12월 발표할 첫 솔로 앨범 ‘rosie’에 앞서 공개한 노래 ‘APT.’는 발표와 동시에 국내외를 막론하고 빠른 속도로 인기를 높였다. 히트곡 탄생의 A부터 Z까지 고루 갖춘 똘똘한 노래의 숨겨진 킬링 포인트는 다름 아닌 곡의 인트로다.

‘채영이가~ 좋아하는~ 랜덤~ 게임~ 랜덤~ 게임~ 게임~ 스타트!’

술자리에서 누구나 한 번쯤 양팔을 빙글빙글 돌리며 외쳐봤을 익숙한 구호에 맞춰 ‘APT.’는 힘차게 출발한다.

실제 사석에서 녹음됐다 해도 믿을 법한 인트로는 얼핏 손쉬운 아이디어 같아도 의외로 꽤 복잡한 역할을 담당한다. 익숙한(국적에 따라서 매우 낯설 수도 있는) 리듬이 주는 솔깃함, 지금부터 뭔가 재미있는 게 시작될 것 같다는 설렘, 화려한 톱스타 ‘로제’가 아닌 ‘채영’이로서 전하는 일상 브이로그적 매력.

여기에 ‘건배, 건배’를 외치고 태극기를 흔드는 브루노 마스 모습이나 소위 ‘빨뚜’로 불리는 빨간색 뚜껑 소주와 맥주를 최적의 비율로 섞어 만드는 소맥을 소개하는 로제의 소탈함이 더해지면 인트로가 기대한 큰 그림의 완성이다.

‘APT.’를 듣기 전과 들은 후 대중과 로제의 심리적 거리는 분명 한 뼘 이상 가까워져 있을 것이다.

노래에 불현듯 등장하는 일상적 대화는 사실 시대를 막론하고 다양하게 활용된 음악의 치트키였다. 멜로디와 노랫말로 이뤄진 노래라는 하나의 완결된 세계 속에 이 모든 걸 이끌던 목소리가 갑작스레 상대에게 말을 거는 순간, 사람들은 마치 스크린 속 배우가 정면을 쳐다보며 관객에게 말을 거는 것 같은 생경함을 느낀다.

그룹 전람회의 1집 ‘Exhibition’ 수록곡 ‘여행’이 문득 떠오른다. 1993년 MBC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차지하며 데뷔한 이들의 첫 앨범 프로듀서는 가수 신해철이었다.

앨범을 작업하며 스튜디오에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던 김동률, 서동욱은 ‘생 브라스(Brass)는 돈이 많이 든다’며 걱정한다. 그 위로 ‘돈 걱정은 네가 하는 거 아니니까 그냥 해!’라 소리치는 신해철의 목소리는 이 앨범과 한 시절을 보낸 이들에게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특별한 순간이다.

더 과거로 시계를 돌리면 마이클 잭슨과 폴 매카트니가 함께한 ‘The Girl is mine’ 이야기를 해볼 만하다. 팝 역사의 영원한 이정표로 남을 앨범 ‘Thriller’에 수록된 곡은 노래가 발표된 당시 창창한 스물넷이던 마이클 잭슨과 막 마흔에 들어선 폴 매카트니의 묘한 나이 케미로 시종일관 팽팽한 긴장감을 만드는 재미있는 노래다. 같은 상대를 두고 ‘그녀는 내 거’라며 티격태격하던 두 사람은 곡의 마지막, 서로를 도발하며 진검승부를 던진다.

‘Michael, we’re not gonna fight about this, okay?(마이클, 우리 이걸로 싸우지 말자, 응?)’ 하고 은근히 화해를 청하는 폴 매카트니에게 ‘you keep dreaming(계속 꿈이나 꾸세요)’라고 응수하는 마이클 잭슨의 젊은 패기에는 지금도 웃음이 난다.

지난해 11월 발매된 싱어송라이터 도재명의 ‘21st Century Odyssey’도 떠오른다. 밴드 로로스 활동에 이어 특유의 사색적인 음악을 자신만의 속도로 우직하게 만들어가고 있는 그는, 앨범을 만드는 동안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위한 자리를 앨범 후반에 만들어 놓았다.

노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에는 신나게 동요를 부르는 어린 도재명과 ‘다시 한번 불러보라’며, 아마도 그때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장면을 눈에 담았을 아버지의 목소리가 같이 흐른다.

카세트테이프에 녹음돼 있던 음성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시간의 흐름 속, 그때는 감히 상상도 못했던 지금을 담담히 그리는 음악에 그 어떤 멜로디와 가사도 대체할 수 없는 처연함을 더한다. 기꺼이 말을 걸 때, 노래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우리의 마음을 이끈다.

김윤하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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