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 트럼프의 귀환, 비관적으로만 볼 필요 없다
장사꾼 트럼프, 韓과 협조가 미국에도 이익임을 알게 해야
맞상대 윤 대통령의 역할 막중 외치 성공 위해 변화 필요하다
1년 전인 지난해 11월 18일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표지 기사 제목은 ‘2024년, 세계가 직면한 가장 큰 위험은 트럼프’였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선이 주는 디스토피아적 모습을 예고하며 재등장을 경계했다. 설마는 현실이 됐다. 트럼프는 4년간의 와신상담 끝에 복귀에 성공했다. 세계의 흑역사가 시작될 것인가.
극단적 자국 우선주의, 즉흥적 국정 운영, 이분법적 세계관, 혐오와 차별적 사고. 트럼프 1기 정부가 보여준 모습이다. 이번 대선 기간의 언행에서도 개선 조짐이 보이지 않았다. 중국에 대해선 관세를 60%로, 동맹들에게도 10%대의 보편관세를 매기겠다고 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하루 만에 끝내겠다며 사실상 침략국 러시아 편을 들어주고 있다.
한국도 ‘트럼프 포비아’의 예외지대가 아니다.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100억 달러(약 14조원) 요구, 북한 김정은과의 직거래 시사, 우리 기업에 대한 보조금 축소·관세 부과 공약에 앞이 캄캄하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미국이 보편 관세를 부과하고, 주요국이 맞대응하면 한국 수출이 최대 448억 달러 감소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렇다고 망연자실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수출로 먹고 사는 분단국가로서 미우나 고우나 세계 최강국 리더의 안보와 경제 정책을 주시하고 동참해야 하는 건 숙명이다. 위기에는 항상 기회가 따라다닌다. 아무리 자국만 챙긴다 한들 미국만 100을 얻고 나머지가 0이 되는 일은 없다. 국익을 위해 최대한 우리 지분을 늘리는 실사구시 대응이 절실하다.
결국 지피지기다. 트럼프의 성향과 1기 집권 시절을 복기하면 현 상황이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트럼프는 타고난 장사꾼이다. 그는 자서전 ‘거래의 기술’에서 거래를 예술이라 했다. 거래 지침으로 꼽은 대표적인 게 ‘크게 생각하라’ ‘항상 최악의 경우를 예상하라’ ‘사업을 재미있는 게임으로 만들어라’다. 상대의 패가 좋아 다시 생각하게 되고 판을 유리하게 만들 수 있다면 입장을 쉽게 바꾸기도 하는 이가 트럼프다. 재임 중 중국 수출품에 25% 관세를 부과했다가 중국의 맞대응과 500억 달러 상당의 미 농산물 구매 의사를 접하자 1년 만에 보복을 중단했다. 그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탈퇴를 공언했지만 캐나다, 멕시코 정상과의 협의 후 재협상을 했다.
트럼프의 최대 관심사는 중국 견제다. 한국의 반도체 기업 없이 미국이 중국과의 인공지능(AI)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테슬라 등 미국 제조업의 역량 강화에 한국 제조업만큼 도움을 줄 곳이 어디있나. 끊임없이 인식시켜야 한다. 7일 윤석열 대통령의 당선 축하 전화를 받은 트럼프는 “미국 조선업이 한국의 협력을 필요로 한다”고 먼저 말을 꺼냈다. 한국 산업의 킬러콘텐츠는 의외로 효용 가치가 클 수 있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는 동안, 중국과의 첨단 기술력 격차를 다시 벌릴 기회도 된다.
안보 문제 역시 수싸움이 동반된다. 자유민주주의의 가치 동맹이라고 자연스레 대접해줄 사람이 아니다. 트럼프가 떠난 이후 4년간 김정은이 얼마나 위험인물이 됐는지, 한국과의 동맹으로 얻는 이득이 김정은과의 딜보다 얼마나 우위에 있을지를 알려줘야 한다. 2020년대 이후 전 세계에 본격 도래한 ‘경제 안보’ 국면을 트럼프가 한국을 다시 생각하는 계기로 삼도록 해야 할 것이다.
방향이 섰다면 게임플레이어의 역할이 중요하다. 윤 대통령의 어깨가 무겁다. 원칙을 고집하지 않는 유연하며 임기응변에 능숙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의 허세도 적극 활용해야 한다. 7일 통화에서 윤 대통령은 “MAGA(마가·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슬로건으로 대승을 거둔 것을 축하한다” “한·미·일 협력이 견고해진 건 재임 기간 트럼프 대통령의 기여 덕분”이라고 전했다. 트럼프의 어깨가 으쓱거렸을 것이다. 시작은 좋다.
다만 외치를 잘 하려면 내부의 지지와 단합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지금의 윤 대통령과 정부의 신뢰도로는 곤란하다. 트럼프의 안보·경제 공약들은 하나같이 우리 사회에 파장을 일으킬 만한 것들이다. 원만한 여론 수렴과 대국민 설득이 선결 과제란 얘기다. 10%대 지지율로는 어림 없다. 내치와 외치는 따로 놀지 않는다. 트럼프와의 거래를 앞두고 있다. 한국의 대표 딜러로서 소기의 성과를 얻어야 한다. 이를 위해선 많은 변화가 필요하다.
고세욱 논설위원 swk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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