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그릇을 매만지는 사람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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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서울 가회동에 갔을 때의 일이다.
그릇은 나의 손 오목에 쏙 들어왔다.
그릇 두께가 한지를 몇 겹 포개 놓은 것처럼 얇아서 종잇장처럼 가벼웠다.
설거지할 때마다, 연약한 그릇이 깨질 것만 같아서 나는 지나치게 조심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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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 그릇이 절대 쓰러지지는 않게 그러나 조금/화난 채/조금은 참은 채로 선택되어 진열된 가게를/좋아한다./사랑하는 사람에게 나는/그곳에서 찬물처럼 부드러운 몸가짐으로 돌아다닐 수 있는 나의 질서를 보여주고 싶다.// 만지면 그릇만 생각나는 그릇을/만지게 하고 싶다. (…) 나를 깊이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 사랑하는 사람이 알았으면 하는지/영영 몰랐으면 하는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 마음은 이상하게 바뀐다.’(‘폭포 열기’, 문학과지성사, 2024)
몇 해 전, 서울 가회동에 갔을 때의 일이다. 아담하고 연한 쑥빛 그릇이 단박에 눈길을 사로잡았다. 종지로 쓰기엔 좀 크고, 국그릇으로 쓰기엔 폭이 좁았다. 그릇은 나의 손 오목에 쏙 들어왔다. 마치 그릇이 손에 안기는 것 같았다. 그릇 두께가 한지를 몇 겹 포개 놓은 것처럼 얇아서 종잇장처럼 가벼웠다. 그릇의 굽이 낮은 것도 마음에 들었다. 나는 비싼 가격표를 보고 망설이다가, 충동구매를 하고 말았다. 곁에 가까이 두고 생각날 때마다 보고 싶었다.
그게 문제였다. 설거지할 때마다, 연약한 그릇이 깨질 것만 같아서 나는 지나치게 조심해야 했다. 결국 몇 번 쓰지도 않고 선반 위에 고이 모셔두게 됐다. 정작 자주 손이 가는 그릇은 마트에서 산 밥그릇이었다. 어떤 감정은 ‘고급 그릇’과도 같다. 깨질까봐, 고이 모셔둘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관심이 없는 게 아니다. 길들이거나 바꾸려 들지 않고, 그저 바라만 본다.
‘나를 깊이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 때, 시인은 그 관계를 사납게 깨트리지 않는다. 조금 화가 난 채로, 진열대에 정돈된 그릇을 보듯 자신의 내면을 침착하게 살핀다. 그리고 사랑하는 이에게는 여러 사념을 걷어내고 ‘만지면 그릇 생각만 나는 그릇’을 만지게 하고 싶은 것이다. 이렇게 우아하게 정돈된 자세를 보여주고픈 마음이 사랑이 아니라면, 우리는 그 마음을 무어라 바꿔 부를까?
신미나 시인 겸 웹툰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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