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정치적으로, 법적으로, 상식적으로

최승욱 2024. 11. 8.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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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으로, 법적으로, 상식적으로 아무 문제 될 게 없다."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될 수 없다고 대통령실은 주장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정치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는 대통령실의 주장은 온당한가.

윤 대통령과 명씨의 육성 녹음이 공개되고, 대통령실의 해명이 거짓 해명 논란에 휩싸이자 한 야당 중진 의원은 "이제부터는 윤 대통령이나 대통령실 말은 아무도 안 믿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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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욱 정치부 차장


“정치적으로, 법적으로, 상식적으로 아무 문제 될 게 없다.”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지난 1일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한 말에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전날 170석의 거대 야당이 폭로한 윤석열 대통령과 명태균씨 사이 육성 녹음에 대한 ‘대통령실 2인자’의 인식이 그대로 녹아 있었기 때문이다.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될 수 없다고 대통령실은 주장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대통령실은 지난달 8일 “(경선) 이후 대통령은 명씨와 문자, 통화한 사실이 없다고 기억한다”고 해명했고, 육성이 공개된 지난달 31일엔 “윤 당선인과 명씨가 통화한 내용은 특별히 기억에 남을 정도로 중요한 내용이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기억에 없을 뿐 통화를 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기에 거짓말이 아니란 얘기다. 게다가 ‘당선인’ 신분이기에 법적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를 두고 법조계의 한 지인은 “검찰 조사를 앞둔 의뢰인에게 하는 변호사의 조언 같다”고 말했다. 세상의 인식이 이렇다.

정치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는 대통령실의 주장은 온당한가. 윤 대통령과 명씨의 육성 녹음이 공개되고, 대통령실의 해명이 거짓 해명 논란에 휩싸이자 한 야당 중진 의원은 “이제부터는 윤 대통령이나 대통령실 말은 아무도 안 믿게 됐다”고 말했다. 그런데 대통령실은 당일 또다시 ‘대통령의 기억’에만 기대 두 사람 간 ‘의미 없는 통화’가 대체 무슨 문제냐는 식의 해명을 내놓았다. 대통령의 국정 운영 최대 동력은 국민 신뢰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6년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당시 기자회견에서 재발 방지 약속도, 취재진 질문에 대한 답변도 없이 1분40초짜리 사과문만 낭독한 뒤 퇴장했다. 이후 박 전 대통령의 지지율은 5%까지 수직낙하했고, 2주 만에 특검과 검찰 수사 등을 모두 수용하겠다는 내용의 대국민 담화를 발표해야 했다. 그러나 모두가 지켜봤듯 끝내 국민 신뢰는 회복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서 끌려 내려왔다. 이 모든 일이 불과 8년 전에 일어났던 일인데, 지금 대통령실의 ‘정치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는 인식은 과연 온당한 것일까.

상식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는 대통령실의 인식은 마치 중증 질환처럼 훨씬 더 위태롭다. ‘명태균 논란’에 많은 국민이 이렇게 화를 내는 이유 중 하나는 이번 논란이 국민의 자존심을 바닥까지 긁어놓았기 때문이다. 명씨는 대통령을 향해 ‘장님 무사’라 하고, 영부인을 향해서는 ‘앉은뱅이 주술사’ ‘지(대통령) 마누라’라며 사실상 ‘멸칭’에 가까운 표현을 썼다. 게다가 대통령과의 통화 녹취를 주변에 들려주며 대통령 부부를 ‘뒷배’로 과시하기까지 했다. 이뿐 아니다. 명씨는 자신이 윤 대통령의 집을 수시로 드나들었다고 주장했고, 명씨가 ‘꿈자리가 사납다’고 해서 대통령이 해외순방 출국 일정을 바꾸었다는 얘기뿐 아니라 명씨 조언에 따라 윤 대통령이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 사망 당시 조문을 생략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심지어 그가 대통령에게 “5년을 버틸 내공이 없으니 ‘젖은 연탄’ 보수의 ‘번개탄’ 역할만 2년 하고 내려오라 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지금 국민이 마주하는 분노는 이런 사람과 대통령이, 이런 사람과 영부인이 사사롭게 연을 맺고 아무렇지 않게 연락을 주고받았다는 데서 오는 일종의 자괴감일 것이다. 명씨와 그를 둘러싼 이 같은 허망한 이야기가 어디까지 사실인지 아직 알 수 없지만 임기 반환점도 돌지 않은 정권에서 이런 이야기가 터져나오는 것 자체가 상식적이지 않다. 그런데도 ‘상식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는 오늘 대통령실의 인식은 너무나 위태로워 보인다.

최승욱 정치부 차장 apples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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