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나라처럼 지연 작전 안 통해… 이젠 철저한 협상의 시간”

신준섭,이의재 2024. 11. 8.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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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유명희 前 통상교섭본부장
유명희 전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7일 국민일보 본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들어서면 통상이 주된 정책 수단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관세 정책이 더 강력해질 것”이라며 “철저한 협상의 시간이 됐다”고 말했다. 이한형 기자


자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세계 각국에 꺼내 들 카드 중 가장 주목받는 것은 ‘관세’다. 과거 트위터(현 엑스)에서 자신을 ‘관세맨(Tariff Man)’이라고 칭했던 트럼프 당선인의 정책 기조는 재집권 이후 더 강화될 전망이다. 동맹국인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트럼프 행정부 1기 당시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을 맡았던 유명희 전 본부장은 “이번엔 관세가 더 강력해질 것”이라며 “철저한 협상의 시간이 됐다”고 평가했다.

유 전 본부장은 7일 국민일보와 인터뷰에서 “2기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면 통상이 주된 정책 수단이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일방적 관세 인상, 수출통제와 투자심사 강화 그리고 인플레이션감축법(IRA) 관련 보조금 축소 등 세 가지 요소가 한국에 큰 불확실성과 리스크를 줄 수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관세 정책은 1기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장벽이 될 가능성이 크다. 유 전 본부장은 “1기 때는 ‘보편관세’라는 말이 없었지만 지금은 모든 국가에 10%를 부과하겠다는 얘기를 한다”며 “여기에 미 여야가 자국우선주의와 보호무역주의를 초당적으로 지지하고 있어 더욱 강력한 관세 정책이 펼쳐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수출 의존도와 대미 의존도가 높은 상황에서 이는 큰 우려를 낳고 있다. 삼정KPMG 경제연구원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8월 기준 미국의 한국에 대한 무역수지 적자는 445억 달러다. 미국과 교역하는 국가 중 8위에 해당한다. 유 전 본부장은 “트럼프 당선인은 각국과 정상회담 준비 시 ‘그 나라와의 무역수지 적자가 얼마인가’가 첫 질문이라고 한다”며 “2018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기 주장이 나왔을 때 한국은 적자 순위 14위였는데 지금은 8위”라고 설명했다. 이어 “무역수지 적자의 상당 부분이 자동차 및 자동차부품 수출에서 비롯된 만큼 한국에 결코 좋은 상황이 아니다”고 덧붙였다.

다만 한국보다 적자 규모가 큰 국가가 많아 트럼프 당선인이 첫 타깃으로 삼을 가능성은 낮다. 8월 누적 기준으로 트럼프 당선인이 60% 관세를 예고한 중국이 1847억 달러의 무역적자로 압도적 1위이며, 이어 멕시코(1090억 달러) 베트남(776억 달러) 순이다. 유 전 본부장은 “멕시코와 캐나다와의 무관세협정(USMCA)은 재협상 대상”이라며 “특히 멕시코산 자동차에 대해 트럼프 당선인은 100~200%가 아니라 최대 2000%의 관세를 예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멕시코에 진출한 중국 기업들이 생산한 자동차를 우회 수출하지 못하도록 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유 본부장은 유럽연합(EU)과 베트남도 트럼프 당선인이 재협상에 나설 우선순위로 고려하는 국가로 꼽았다.

하지만 한국도 결국 트럼프 행정부의 제재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다. 유 전 본부장은 “매를 먼저 맞느냐 나중에 맞느냐의 차이”라며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트럼프 행정부 1기 때 협상 경험으로 봤을 때 당시 미국은 다른 나라들처럼 지연 작전이 통하지 않았다”며 “협상을 지연하다가는 트럼프 행정부가 (무역제재) 조치를 먼저 단행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가 기억하는 사례는 수입산 철강에 대한 관세 부과다. 유 전 본부장은 “2018년 3월 8일 무역확장법 232조를 발동해 25% 관세를 부과한 뒤 각국과 빠르게 협상을 진행했다”며 “모든 협상을 한두 달 사이에 마무리했다”고 회상했다.

유 전 본부장은 당시 협상 경험에 대해 “232조 조치 발동은 냉전시대 이후 처음이었기에 ‘설마’ 하고 방심했는데, 트럼프 당선인은 이를 단행했다”며 경각심을 강조했다. 이어 “FTA 체결국이라고 봐주는 것도 없었다”며 “트럼프 당선인에게 유일하게 예측 가능한 점은 그가 예측 불가능하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조 바이든 행정부와의) 지난 4년간이 협력과 협의의 시간이었다면 이제는 철저한 협상의 시간”이라며 “모든 가능한 시나리오를 철저히 준비하고 협상 시작과 타결의 시점을 신속히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당선인의 비전통적 협상 방식도 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유 전 본부장은 “보통 통상 협정은 통상 내에서만 연계하지만 트럼프 당선인은 이런 경계가 없다”며 “‘패키지 딜’이 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다양한 영역을 넘나드는 패키지를 준비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방위비 분담금 문제가 통상 협상의 한 항목이 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한국 기업의 대응 방안에 대해 유 전 본부장은 “지금은 큰 정부와 정부 개입의 시대”라며 “정부와 기업이 긴밀히 정보를 공유하고 협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기업들이 자체적으로 공급망 리스크를 점검하고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유 전 본부장은 “베트남이 미국에 수출한 품목 중 20%가 우리 기업이 투자한 부분”이라며 “미국이 베트남에 무역장벽을 세우면 한국 기업도 타격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1차부터 3차까지의 공급망 전체를 관리하는 시각으로 접근하고, 다변화를 통해 리스크를 줄여야 한다”고 제언했다.

신준섭 이의재 기자 sman32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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