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환의 퍼스펙티브] 북의 핵·미사일 올인, 미국 우선주의와 양립 불가
북의 우크라이나 파병과 트럼프의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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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질서 충돌 현장 우크라이나
북 파병으로 지정학적 판도 변화
트럼프 당선은 조기 종전의 변수
북, 핵 고집 속 난국 돌파 어려워
」
지난 6월 평양에서 열린 북·러 정상회담은 북한군의 우크라이나 전쟁 파병의 전조였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당시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관계에 관한 조약’을 맺었다. 쌍방 중 어느 일방이 무력 침공을 받아 전쟁 상태에 처하는 경우 “지체 없이 자기가 보유하고 있는 모든 수단으로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평양 정상회담을 계기로 북·러는 ‘한 전호(하나의 참호)’에서 ‘다극화된 세계질서 수립’을 위해 노력하고, 미국 중심의 ‘이중 기준’, ‘규정에 기초한 질서 강요’에 맞서 싸우는 공동 전선을 구축하며 동맹관계를 복원했다.
우크라이나 전장의 트럼프 변수
지난 5일 진행한 미국 대선에서 당선된 트럼프 공화당 후보는 선거 캠페인에서 “당선되면 24시간 이내에 러시아와 타협해 전쟁을 끝낼 수 있다”고 장담했다. 이 언급이 현실이 되면 우크라이나 전쟁은 조기에 끝날 수도 있다. 북한이 트럼프의 당선을 예상하고, 그리고 전쟁의 조기 종식을 염두에 두고 파병을 결정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다만, 트럼프의 언급대로 조만간 전쟁이 끝난다면 2차 대전 말미에 대일 선전포고를 하고 한반도 38도선 북단의 관할권을 확보한 소련처럼 북한은 짧은 기간 참전으로 상당한 전리품을 챙길 수 있다. 어쩌면 북한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뛰어들며 이미 외화, 식량, 에너지, 첨단무기 기술 등 많은 것을 얻었을 수도 있다. 드론과 위성 등 첨단 장비를 동원한 현대전의 경험도 쌓을 수 있다. 북한군의 파병은 분명 우리의 안보에 영향을 주고, 최악의 경우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남북한이 충돌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특히 경우에 따라 3차 세계 대전의 가능성마저 제기되는 상황이다. 개전 초기부터 확전 가능성을 언급했던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지난 5일 북한군의 전장 투입 소식을 전하며 “세계 불안정성의 새 장을 열었다”고 했다. 푸틴 대통령의 측근으로 꼽히는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도 최근 “(서방이)기름을 끼얹으면 3차 세계대전을 겪게 될 것”이라고 위협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확전이냐 중단이냐 분기점에 서 있다. 북한군의 참전으로 악화일로인 우크라이나 전쟁이 트럼프의 당선으로 전기를 맞은 것만은 분명하다.
트럼프가 언제, 어떤 방식으로 우크라이나 전쟁 휴전에 개입하느냐에 따라 북한군의 피해 규모도 달라질 수 있다. 트럼프는 내년 1월 20일 취임한다. 그가 취임 이전에 휴전 협상이 진전될 수도 있지만 지금 당장 휴전이 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그렇다면 최소 3달 안팎의 기간이 지속할 수 있고, 휴전 얘기가 시작되면 유리한 고지를 확보하기 위해 보다 치열한 전투가 벌어질 수도 있다. 금명간 전투에 투입할 것이란 관측이 많은 북한군의 대규모 희생과 막대한 손실을 피할 수 없다.
세력 충돌의 열점 된 우크라이나
우크라이나 전쟁은 사실상 3차 세계대전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나라가 관여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EU),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등 서방이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고, 북한 등 반서방 국가들은 러시아 편에 서 있다. 이렇듯 많은 국가가 개입하고 있는 건 우크라이나 전쟁이 가져올 세계 질서의 변화를 의식해서다. 우크라이나는 소비에트 연방의 15개 공화국 중 하나였다. 소련 해체 이후엔 독립국가연합(CIS)의 일원이었지만 경제지원과 안전 보장을 대가로 핵무기를 폐기하고 친서방국가가 됐다. 우크라이나는 경제적 번영과 안전보장을 확보하기 위해 미국 중심의 ‘규칙 기반 질서(RBO)’ 즉 서방으로 편입하기를 희망했다. 반면 러시아는 미국과 유럽의 동진을 막으려는 차원으로 2014년 크림 반도 무력 편입에 이어 전쟁을 일으켰다. 우크라이나가 서방과 러시아 사이의 세력 확장을 위한 질서 충돌의 열점 지역이 된 것이다.
러시아와 밀착해 파병을 강행한 북한을 바라보는 중국은 “그들이 알아서 할 일”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핵·미사일 고도화에 이어 러시아에 다가선 북한에 대한 중국의 불편한 심기는 여러 곳에서 감지된다. 미·중 전략 경쟁을 버거워하는 중국이 북·러 동맹에 발을 뺀 게 대표적이다. 중국과 북한은 1961년에 맺은 ‘조·중 우호, 협조 및 상호원조조약’을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다. 2018년 6월 북·미 정상회담을 추진하면서 김 위원장은 중국을 방문해 ‘한 가족’, ‘한 참호’란 표현으로 중국과의 유대를 강조했다. 그러나 최근 북한은 러시아에 ‘한 전호’, ‘혈연의 유대’를 강조하며 하루가 다르게 다가서고 있다.
그래서인지 북한과 중국은 국교 수립 75주년을 맞은 올해를 ‘조중친선의 해’로 설정했지만, 정상회담은 고사하고 이렇다 할 고위층 교류조차 멈춰 섰다. 양측은 2015년에 완공한 신압록강 대교조차 개통하지 못할 정도로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중국 역시 지난 6월 평양에서 북·러 정상회담이 열리는 시기에 서울에서 한·중 차관급 외교 안보대화를 하고, 북한의 파병이 이뤄지고 있는 이달 초 한국에 단기 비자 면제 정책을 발표했다. 현재의 북·중 관계를 가늠할 수 있는 부분이다. 북한이 한때 ‘사회주의 배신자’로 낙인찍었던 권위주의 러시아와는 동맹관계를 복원했지만, 사회주의 혈맹인 중국과의 관계는 오히려 서먹해진 결과다.
G2 국가로서 자본주의 세계 경제에서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중국이 한·미·일 대 북·중·러가 대립하는 신냉전 구도에 얽힐 이유는 없다. 오히려 중국은 서방 세계와 경제적 상호 의존성을 중시하는 입장이다. 미국 중심의 ‘규칙기반질서’ 구축 움직임에 맞서 브릭스(BRICS,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 등 신흥 경제 4국) 국가들과 협력을 강화하고, 동시에 남반부 개발 도상국인 글로벌 사우스에 대한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북한의 러시아 밀착, 외통수 될 수 있어
북한군의 파병 이전만 해도 우크라이나 전쟁의 최대 승자가 북한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궁지에 몰린 북한을 구원한 것은 러시아다. 파병 이후에도 북한이 승자가 될지는 두고 봐야 한다. 수만 명이 희생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사람이 김정은이란 얘기도 돈다. 최고지도자의 결정에 토를 달지 않도록 교육받은 북한 주민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인민대중제일주의정치’를 표방한 김정은 정권이 인민을 타국 전장으로 보내 대규모 사상자가 발생할 경우 국내 정치적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핵 보유국의 자신감을 반영해서 대규모 병력을 러시아에 파병하여 경제적 어려움을 해소하고 첨단 군사기술을 획득하려 하지만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할 경우 파병의 정당성을 찾을 수 없다. 북한이 권위주의 편에서 얻을 이익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적대적 두 국가’를 표방하며 한국과는 장벽을 쌓고, 전통적 사회주의 우방인 중국과는 소원해진 북한이 우크라이나 전장으로 달려간 건 김정은 정권이 스스로 만든 외통수이자 무리수가 될 게 뻔하다. 북한이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두 주축 국가인 미·중을 멀리한 채 권위주의 러시아와 손을 잡은 건 경직성에 바탕한 수령 체제 유지를 정책의 최우선 순위로 삼은 김정은 정권의 태생적 한계 때문이다.
마침 김 위원장을 친구라고 여기는 트럼프가 귀환했다. 그러나 지난 4년 동안 미국의 이익을 침범하겠다면서 핵과 미사일 개발에 ‘올인’하며 변해 있는 김정은을 미국 중심주의를 표방하는 트럼프가 여전히 친구로 여길지는 미지수다. 김 위원장의 러시아 파병 결정이 트럼프의 귀환 뒤 휴전을 계산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북한의 핵과 미사일은 분명 미국의 안보, 이익을 훼손하는 요소다. 북한이 핵을 보유하면서 수령 체제 유지를 고수하는 한 현재의 어려운 상황을 벗어나기 어렵다는 뜻이다. 김 위원장이 2018년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유예하고 트럼프를 만났을 때 협상에서 진전된 결과가 있었던 게 예다. 김 위원장에게 이번 겨울은 세계 질서가 충돌하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할 게 아니라 국익과 실리를 중시하는 트럼프와의 협상 테이블 복귀를 준비해야 하는 그 시점이다.
고유환 동국대 명예교수·전 통일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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