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 올려치기’시대에 읽는 옛 선비의 ‘빈부설’ [문소영의 문화가 암시하는 사회]
“가난하게 되는 사람은 의지가 나태하고 계획이 허술하고, 남에게 빌리면 갚을 생각이 없고, 놀이에는 제 분수를 헤아리지 않아서 의복과 신발은 반드시 유행을 따르려 하고, 새로운 물건은 언제나 남보다 앞서고자 하여 (…)”
자기계발서의 한 구절인가? 놀랍게도 이것은 조선 후기의 선비 윤기(尹愭··1741~1826)가 그의 문집 『무명자집』에 남긴 ‘빈부설(貧富說)’의 한 구절이다. 소득 수준에 맞지 않게 ‘신상 명품’을 사는 일이 200년 전 조선에서도 흔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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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위 10% 삶을 ‘평균’으로 착각
과소비 불러 더욱 부와 멀어져
일찍이 이를 지적한 조선 문인
‘분수 맞게 살고 존엄을 지켜라’
」
200년 전 조선의 ‘신상 유행’
2~3년 전부터 ‘평균 올려치기’라는 말이 유행이다. 대학은 ‘인서울’ 4년제는 나와야 하고, 결혼할 때 집은 수도권 자가는 되어야 하며, 고급 브랜드의 백이나 자동차가 있어야 하는 등, 실제로는 상위 10~20% 이내에 해당하는 학력·자산·소비 수준을 ‘평균’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세태를 꼬집는 말이다. 모 TV 드라마에서는 350만원이 “쥐꼬리만 한 월급”이라고 해서 빈축을 사기도 했다. 올해 초 통계청 발표를 보면 2022년 기준 임금근로자의 평균소득이 바로 353만원이다. 게다가 전체 근로자를 임금 순서대로 줄을 세웠을 때의 가운데 값인 중위소득은 더 낮은 267만원이다.
과도하게 높게 잡힌 ‘평균적인 삶’은 많은 사람에게 패배감과 박탈감을 불러일으키기 마련이다. 가뜩이나 예로부터 ‘남들만큼은 살아야 한다’는 비교와 눈치가 강한 한국 사회다. 최근 10여 년간 저마다 화려하고 즐거운 모습만을 보여주는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의 발달과 셀럽들의 일상을 다루는 관찰 예능이 ‘평균 올려치기’ 현상을 부추겨 사회 전체의 스트레스와 불행을 가중해 왔다.
‘평균 올려치기’가 심각한 수준인 것은 ‘한국의 상위 1% 부자가 되려면 자산이 얼마여야 하는가’ 뉴스에 달린 댓글들만 보아도 알 수 있다. 2022년 통계청 데이터 바탕 분석에 따르면, 그 커트라인은 가구당 순자산(자산에서 부채를 뺀 것) 기준으로 32억8천만원이다. 그보다 앞선 2021년 금융업계 데이터 분석에서는 29억원이 합격선이었다. 그런데 뉴스 댓글 등 인터넷 반응은 “그렇게 적다고?” “못 믿겠다”가 대다수다.
‘영 앤 리치’라는 허상
또한 2021년 분석에서 1% 부자 가구주 평균 나이는 63세였다. 이른바 ‘영 앤 리치’는 매우 드문 것이다. 그러나 소셜미디어에는 진짜인지 아닌지 모를 ‘영 앤 리치’ 인플루언서가 넘쳐나며 그들에 의해 ‘평범한 소비’ 수준이 ‘올려치기’ 되어 젊은 세대의 골프 열풍, 오마카세 열풍이 일어났었고 ‘신상 명품’이 불티나게 팔려나간다. 조선 선비 윤기의 말대로 그렇게 “놀이에 제 분수를 헤아리지 않아서” 실제로 부자가 될 길은 점점 더 멀어지게 된다.
윤기는 ‘빈부설’에서 말했다. “부자가 재산을 늘릴 때는 부지런하고 검소하고 기회를 살펴 때에 맞추며, 남들이 하지 못하는 일을 행하고 견디지 못하는 고통을 견디며, (…) 계획을 긴밀히 세워 유혹되거나 꺾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 부유함을 이룰 수 있었다.” 이 또한 근면한 노동과 절약을 통해 돈을 모으는 한편 감당 가능한 수준까지만 위험을 수반한 투자를 병행하라는 자기계발 전도사들의 말과 일치해서 놀라울 따름이다. 그렇다면 윤기는 이것을 실현한 재테크의 왕이었을까? 그렇지 않다. 그는 평생 가난했다.
윤기는 몰락해가는 양반 가문에서 태어났다. 33세에야 소과에 합격해 성균관에 들어가서 20년을 늦깎이 대학생으로 지내다가 52세에야 대과에 급제했다. 『무명자집』을 협동 번역한 한국고전번역원과 성균관대 대동문화연구원에 따르면, 일찍이 재능을 인정 받았지만 집안이 한미한 데다가 부패에 영합하지 않는 올곧은 기질 때문에 당시 비리가 판치는 과거시험을 일찍 통과할 수 없었다고 한다. 대과 급제 후 관직을 맡은 후에도 권력자들의 눈치를 보지 않아 미관말직을 전전했다. 그는 그러한 사회 부조리를 낱낱이 기록으로 남기고 예리하게 비판했다. 그뿐만 아니라 주변의 다양한 풍습과 세태, 곤궁한 자신의 생활 등을 위트와 섬세한 감성이 돋보이는 시와 산문으로 풀어냈다. 그래서 그의 문집은 당대의 생활상을 담은 사료로서 큰 가치를 지닌다.
“부지런하고 검소해야 부자 돼”
그런 윤기가 74세 때 집에 온 손님과의 대화를 엮은 것이 ‘빈부설’이다. 손님은 부자들은 다 불인(不仁)하다며, 즉 나쁜 놈들이라며 열을 올렸다. 평생 가난하게 살아온 윤기가 크게 맞장구를 칠 것으로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윤기는 웃으며 “그대의 가난을 저들의 부유함과 바꿀 수 있어도 그대는 하지 않겠다는 말씀이오?”라고 물었다. 객이 분연히 “하지 않겠소”라고 대답하자 윤기는 다시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이는 당신의 진심이 아니오. 이른바 할 수 없는(不能) 것이지, 하지 않는(不爲) 것이 아니오. (중략) 공자께서 ‘부자를 구해서 되는 것이라면 비록 채찍을 잡는 일이라도 나는 하겠다’라고 하였으니, 어찌할 수 있는 데도 하지 않은 것이겠소. 예로부터 성현은 굳이 부자를 버리고 가난을 취하려고 했던 적이 없소.” 그러면서 그는 기록에 따르면 사실 공자와 맹자도 부유했다고 덧붙인다. 게다가 윤기는 가난한 사람은 “배고파 울고 추위에 부르짖는 처자를 보며 늘 이마를 찌푸리고,” 다른 사람들의 모욕과 배척을 당해 “스스로 본성을 상실하여 하지 못하는 짓이 없게” 되는 수가 있다고 경고한다. 스스로의 쓰라린 가난의 경험에서 나오는 통찰이 아닐 수 없다.
그는 또한 진심으로 안빈낙도를 즐기는 이들의 가난과 도적들의 부유함을 놓고 보면 당연히 가난을 택하겠으나 세상 전체의 빈부를 그렇게 싸잡아 볼 수 없다고 단언한다. “가난과 부유함이 비록 천명이지만, 스스로 초래하는 점도 있소”라면서 가난해지는 이유와 부자 되는 이유를 설명한다. 자신은 부패와 타협하지 않아 출세하지 못해 빈곤하면서도 그것을 모두의 경우로 일반화하지 않는 공정한 시각과 부의 축적에 대한 합리적이고 현대적인 생각이 놀랍다.
‘빈부설’에서 윤기가 궁극적으로 하고자 하는 말은 이것이다. “선비 된 자는 부자가 되어서 불인(不仁)하거나, 가난하다 하여 의(義)를 망각해선 안 되는 것이오.” 즉 부를 쌓기 위해 노력하되 안 되어도 천명으로 여기고 부에 집착하지는 말 것, 또 분수에 맞게 살고 가난하든 부유하든 자신의 존엄을 지키라는 것이다. 자신을 ‘이름 없는 자(無名子)’라 칭하면서도 재기와 통찰력 넘치는 수많은 글을 남긴 그는 진정 존엄을 지킨 높은 자존감의 인간이었다. ‘평균 올려치기’의 세상에 휘둘리지 않는 것은 바로 이러한 자존감이다.
문소영 중앙SUNDAY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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