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준봉의 시선] 한강의 노벨상 수상 뒷공론
한 달이 지났지만 사람들의 마음은 여전히 뜨겁다. 국내 첫, 아시아 첫 여성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에 대한 감정 말이다. 그 온도를 확인하고 싶다면 가까운 대형 서점을 찾으면 된다.
서울 강남대로 교보타워 지하의 교보문고 매장에 들어서면 커다란 가설 벽에 한강 작가에게 보내는 글귀가 적힌 포스트잇이 줄잡아 100개 넘게 붙어 있다. 이런 문구들이 보인다.
“노벨문학상 수상!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같은 시기를 살아가고 있음에 행복합니다. 독서 붐은 온다!” “한강 작가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존경스럽습니다. 제가 아직 10살이지만 커서 꼭 읽어보겠습니다. 10살 다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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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상 후 시·소설 판매 338만 부
당분간 아시아인 수상 힘들 듯
“소설은 질문” 교훈 새겨들어야
」
한강 책을 도맡아 내 특수를 누리는 창비·문학동네·문학과지성사, 3개 출판사가 밝힌 수치는 적응이 안 된다. 지난달 10일 수상 발표 이후 엿새 만에 100만 부를 기록한 한강 시·소설 누적판매 부수가 7일 현재 338만 부로 늘었다고 한다. 가령 창비는 노벨상 발표 이후 지금까지 『소년이 온다』와 『채식주의자』를 각각 80만 부, 70만 부 찍었다. 다음 달 10일(현지시각)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리는 한강의 노벨상 수락 연설이라는 또 하나의 이벤트를 대비하고 내년 초까지 판매할 물량이라고는 하지만 출판 역사(단기간 최다 판매 기록)를 새로 쓰는 중이다. 호사가들의 말대로, 내년 상반기 완성을 약속한 한강 차기작이 나올 때까지 싫든 좋든 우리는 한강의 시간, 한강의 시대를 살게 생겼다.
이쯤에서 작가 자신도 그러겠다고 밝힌 것처럼 우리에게 이 상의 의미가 과연 무엇인지 따져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한국은 이제 문화 선진국인가. 한강은 어떻게 상을 받았나. 어떻게 한국의 한강에게 노벨상의 순서가 돌아왔나.
노벨상 작가 하나 나왔다고 이제 우리도 문화, 독서 선진국이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원로 문학평론가 김화영씨는 “굉장한 사건”이라고 했다. 아무리 삼성과 현대를 많이 팔아도 한국을 아프리카와 다르지 않게 보던 보수적인 유럽인들에게 비로소 문명국임을 알렸다는 것이다. 평론가 정과리씨는 “대개 완성기의 작가에게 주는데 그런 점에서 파격”이라고 했다. 젊은데 받았다는 얘기다.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 윤상인 명예교수는 “노벨상은 잔인할 정도로 불공정한 상”이라고 했다. 작가의 출신 대륙과 성별 안배는 물론 정치적 고려도 한다. 문학 바깥의 요소가 개입되니 불공정이다. K 컬처, 한국의 경제적 존재감이 영향을 끼쳤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강이 아시아와 여성 쿼터를 이번에 한꺼번에 잡아먹었기 때문에, 직전 아시아 출신 수상자였던 중국의 모옌 이후 한강이 받기까지 12년이라는 세월쯤이 앞으로 지나야 다른 아시아 수상 작가가 나올 공산이 크다. 중국의 찬쉐(1954년생)나 일본의 하루키(1949년생)는 어렵지 않겠느냐는 거다.
노벨상 작가 한강은 몸값이 크게 뛰게 된다. 해외 행사 초청 시 아너라리움(honorarium)이라고 하는 사례금 공정가가 2만 달러에 비즈니스 항공권, 특급 호텔 숙박 제공이 기본이라고 한다(곽효환 전 한국문학번역원장).
귀한 몸이 되기 전 한강을 두 차례 인터뷰한 적이 있다. 2016년 맨부커상 발표 직전인 그해 5월 초 두 번째 인터뷰가 인상적이었다. 한강은 까다로워져 있었다. 더욱 철저해졌거나. 입말이 남아 있을 수밖에 없는 인터뷰 문답을 대대적으로 고쳐 달라고 요구했다. 품격 있는 문어체로. 들어줬다. 또 맨부커 후보작 『채식주의자』의 두 번째 중편 ‘몽고반점’에 대한 탐미주의적, 관능적 독법을 크게 경계했다. “소설을 써서 불특정 다수에게 읽힌다는 게 굉장히 무서운 일이라는 점을 절감했다”면서다.
제목으로도 뽑힌 그 인터뷰 기사의 핵심 문장은 이런 거였다.
“말하자면 200쪽짜리 질문이다. 소설을 하나의 질문으로 생각하고 읽는다면 세상에 어려운 소설은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답하기 어렵거나 불편하거나 고통스러운 질문들 속에 오래 머무르려 애쓴다. 내게는 소설 쓰기가 그 방법이다.” 노벨상 때문인지 비범하게 느껴진다. 쉽지 않은 그의 소설에 접근하는 독법이자 한강의 창작 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까다롭고 철저하게 소설 썼으니 노벨상 받았을 거라고 짐작만 할 뿐이다.
그런데 한강의 창작론을 다른 분야에도 활용해도 될 듯싶다. 가령 지리멸렬인 우리의 정치·경제에도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질문을 품고 접근하기보다는 모든 사안을 너무나 잘 안다는 쌍방이 마주치니 다툼이 일 수밖에 없다. 상대의 의도를 지레짐작해 단정 짓지 말자. 궁금해하자. 어불성설인가.
신준봉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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