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물가 불안에 한은 진퇴양난…금리 인하 늦춰지나

염지현 2024. 11. 8.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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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화정책 ‘트럼프 불똥’


트럼프 재집권 시대가 열리면서 한국은행(이하 한은)은 진퇴양난에 놓였다. ‘트럼프 정책 리스크’가 부각되면서 강달러에 추락하는 원화값, 물가 상승(인플레이션) 우려, 미국 통화정책 변화 가능성 등 다양한 암초가 등장해서다. 한은은 지난달 3년 2개월 만에 인하로 금리 경로를 틀었지만, 금융시장이 요동치면 적극적으로 통화정책을 펴기가 어렵다. 올해 마지막 금융통화위원회 회의가 열리는 오는 28일에 ‘동결’을 택한 뒤에도 추가 금리 인하 시점은 더 늦춰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트럼프 당선 소식에 가장 빠르게 반응한 게 달러당 원화가치(환율)다. 외환시장에서 원화값은 7일 오후 3시 30분 기준 전날보다 달러당 0.4원 하락한(환율 상승) 1396.6원에 거래됐다. 장 초반엔 1404.38원까지 밀려나며 시장의 심리적 마지노선인 1400원 선을 뚫었다. 주간거래 기준으로 1달러당 1400원 선이 깨진 것은 지난 4월 16일 이후 약 7개월 만이다. 상당수 전문가는 원화 약세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봤다. 이낙원 NH농협은행 전문위원은 “원화가치 하단(환율 상단) 예상치를 1420원까지 열어놔야 한다”고 봤다.

원화값이 맥을 못 추는 것은 트럼프발 수퍼달러(달러 강세) 영향이다. 2017년 트럼프 행정부 시절처럼 관세 장벽을 쌓는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울 것으로 예상하면서 미국 달러가치가 뛰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주요 6개국 통화대비 달러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지난달 초 101선에서 한 달여 만에 105.09로 솟구쳤다.

달러가치가 몸집을 키울 때 한은이 기준금리를 인하하면 상대적으로 원화가치가 더 떨어져 수입 물가를 끌어올릴 수 있다. 들썩이는 수입물가는 1%대로 진정된 소비자물가를 다시 자극할 우려가 있다는 점도 한은의 통화정책을 방해하는 요인이다.

최근 이창용 한은 총재도 금리 결정을 할 때 환율 변수를 고려하겠다고 했다. 그는 “환율(달러당 원화가치)이 높게 올라있고 상승 속도도 빠르다”며 “지난 10월 회의에서 고려요인이 아니었던 환율이 고려요인으로 들어왔다”고 언급했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 행보가 미뤄질 수 있다는 우려도 한은의 금리 경로를 꼬이게 하는 요인이다. 일반적으로 미국과의 기준금리 격차가 벌어지면 투자자가 이탈할 수 있어 신흥국들은 미국보다 앞서서 금리 인하 폭이나 속도를 높이진 않는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12월 기준금리 인하 전망치는 점점 낮아지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의 고관세와 재정확대 공약은 인플레이션을 부추길 수 있어서다. 이윤수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트럼프의 전방위적인 관세 도입은 미국의 수입물가를 높이고, 재정확대로 국채발행이 늘면 시장금리는 오를 수밖에 없다”며 “물가 부담이 커지면 연내 2차례 금리 인하 횟수는 한 차례로 줄 수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리스크로 한은의 통화정책 여력이 줄면 연말 국내 내수시장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조영무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은 “연말 수출이 둔화하는 상황에서 소비가 살아나는 등 내수 시장이 조금은 지탱해줘야 한다”면서 “하지만 (한은의) 금리 인하가 점점 어려워진다면 내수 부진은 가중될 수 있다”고 봤다.

염지현 기자 y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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