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계약의 그늘에 가려진 콜센터 교육생

한국비정규노동센터 2024. 11. 7.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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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비정규노동센터]

제가 다닌 콜센터에는 갓 대학교를 졸업한 사회 초년생, 새로운 분야로의 도전 등 여러 이유를 가진 청년들이 다녔습니다. 대기업인 원청을 대변하는 든든한 이미지의 용역회사 상담센터로, 모두들 안정된 직장에 대한 꿈을 가지고 있었지요. 우리는 몇 달 후 정직원이 되는 순간을 꿈꾸며 열의 있는 태도로 성실히 직무교육에 임했습니다.

교육 시작 후 두 달 반에 걸친 채용 준비 기간을 거치는데, 한 달 반 동안은 직무교육을 받는 교육생으로, 그 뒤 한 달은 실무 실습을 하는 신입 콜센터 상담사로, 직무 필기시험과 실무 시험에 모두 통과한 뒤에야 정식 직원이 될 준비를 마칩니다. 하지만 한 달 반, 6주간의 직무교육이 이루어지는 채용 준비 기간 동안 콜센터 교육생은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가짜 3.3%, 즉 자영업자로 분류됩니다.

그러나 교육생들은 자율성이 있는 프리랜서가 아닌 사측과 종속 관계에 속하는 엄연한 노동자입니다.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장소로 출근해 사측이 정한 스케줄에 의해 직무교육을 받습니다. 최초 서류 심사, 면접, 교육 기간 내 수차례의 필기 테스트와 실무 교육 과정을 거친 후에야 입사 자격이 주어집니다. 영업일 29일, 약 한 달 반 동안 개인 사유 또는 건강상 문제 등 어떠한 이유로든 2회 이상 교육 미참석 시 채용이 되지 않습니다. 점수 미달로 인한 탈락도 해당되는데 교육 기간 중 자발적인 퇴사를 포함해 탈락이 되는 경우도 교육비를 한 푼도 받지 못하고 떠나야 합니다.

'사업주 직업 능력 개발 훈련'은 콜센터 교육생들의 교육이 직무 능력 향상을 위한 교육이고 그 내용이 해당 업무에만 한정적으로 적용됩니다. 채용 예정자인 콜센터 교육생들이 받는 교육의 내용은 말 그대로 직무교육입니다. 사설 학원처럼 어떠한 기술이나 프로그램을 배우는 것도 아니고, 다른 콜센터에서는 활용할 수 없는, 원청사에서만 국한된 직무교육을 받지만, 해당 회사의 노동자가 아닌 교육생이라는 신분을 부여받아 원청사와 용역회사 그 어떤 곳에도 속하지 못 합니다.

직무교육 기간 교육생들의 교육비를 지원받은 용역회사는 교육 수료 후 채용이라는 수단을 빌미로 교육생들을 희망고문하고, 교육생들은 최저임금 이하로 책정된 교육비를 감내하며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 하는 신분으로 지내게 됩니다. 근로를 위한 직무교육을 받는 기간 동안 콜센터 교육생들은 노동자가 아닌 3.3% 공제를 받는 사장님이 됩니다. 왜 근로를 위한 직무교육을 받는 콜센터 교육생이 그동안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 하였는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 콜센터 산업 교육생 문제 해결을 위한 국회 토론회 지난 9월 1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콜센터 산업 교육생 문제 해결을 위한 국회 토론회를 진행하였다.
ⓒ 노노모 노동자성연구분과
3.3% 계약으로 인한 4대 보험 미가입으로 인건비 절감은 물론 노동자성을 부정하기 쉬운 수단으로 사용자는 책임을 회피합니다. 채용 예정자라는 수단을 빌미 삼아 교육에 성실히 임할 것을 강요하지만, 중도 포기자 및 탈락자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다는 것을 교육 기간 내에도 수차례 강조합니다. 책임회피에 대한 어두운 부분을 가리려는 듯 미래에 정직원이 되면 누릴 수 있는 혜택 등을 강조하며 교육생들을 희망고문합니다. 교육 기간 동안 콜센터 교육생들은 사업자로 위장된 노동자가 되는 것입니다.

시용 제도는 사용자가 노동자를 정식 채용하기 이전에 노동자의 직업 능력이나 업무 적격성을 판단하기 위해 일정 기간 시험적으로 고용 하는 것인데, 콜센터 교육생도 실제 근무를 하지 않는 교육 기간에도 종속적인 관계에 있으며 회사를 위한 근로를 제공했다고 보아야 합니다. 입사 예정자가 사용자의 관리 감독 하에 본래의 근로에 준하는 성격의 교육을 받는 노동자로 인정받아야 합니다.

또한, 가짜 3.3 꼼수 고용은 4대 보험 미적용을 넘어 노동자의 권리를 제한합니다. 국민연금과 건강보험,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은 실업, 상해, 질병 등으로 인해 노동자가 경제적인 불안감을 느끼지 않도록 국가에서 법적으로 보험 가입을 의무화한 사회보장제도입니다. 사용자가 자신이 고용한 노동자에게 사업소득세 3.3%를 직접 납부하게 해 사업소득자로 위장된 가짜 3.3 노동자입니다. 하지만 고용주는 책임회피 수단으로 너무 당연하게 이용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이러한 꼼수 고용의 행태는 콜센터 교육생뿐만이 아니라 사회의 여러 곳에 뿌리내린 악습입니다. 대기업의 하청으로 협력사라 불리는 하청업체에 소속된 노동자들도 무늬만 프리랜서인 가짜 3.3% 노동자로 수많은 현장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20년을 일한 베테랑 노동자도 가짜 3.3% 아래에서는 이제 갓 일을 시작한 신입 노동자와 동등한 임금과 대우를 받습니다.

또한, 고용 불안에 시달리며 근무합니다. 언제든지 누구라도 대체될 수 있는 교체가 쉬운 자리라는 것을 이러한 고용형태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스스로 자부심을 갖거나 안정된 직장이라는 것을 느낄 수 없는 환경으로 인해 존중받지 못하는 노동 자들은 '받은 만큼만 일하자'는 마인드로 본인의 업무에 열정적인 태도를 보이기 힘듭니다. 이는 서비스 제공 품질의 하락으로 이어져 소비자에게도 그대로 피해가 전해지는 것입니다.

이제는 대한민국 모든 콜센터 아웃소싱 업체들이 교육비라는 꼼수로 상담사들의 교육 기간 노동자성을 부정하고, 의무 재직기간을 빌미로 최소한의 교육비도 갈취하는 편법으로 인건비를 절감하는 현실을 부디 바로잡아야 합니다. 원청을 대변하고, 원청에 대한 고객의 민원을 해결해 주는 콜센터 상담사들이 정작 원청에서는 외면받고 용역업체에서는 임금을 착취당하고 있습니다. 저를 포함한 콜센터 상담사들이 자신의 권리를 찾고 정당한 대우를 받으며 일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노동자 개인 스스로가 움직여 노동자성을 인정받고 회사에 4대 보험 등을 요구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환경입니다. 사측과 종속적인 관계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이 3.3% 프리랜서 근무자가 아닌 노동자성이 인정되어 일하는 사람들 모두가 노동권을 존중받을 수 있도록 비정규직 노동 문제 해결에 적극적인 움직임이 있기를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격월간 <비정규노동> 169호에도 실립니다. 글쓴이는 한 콜센터 및 텔레마케팅 서비스업 관련 기업 교육생(익명)입니다. 이 글은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 발행하는 격월간 <비정규노동> 169호 11,12월호 '특집[비임금 노동자]' 꼭지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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