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말 된 대통령 '끝장토론'...사과 이유 묻자 엉뚱 답변

김경년 2024. 11. 7.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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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국민담화 및 기자회견] 윤 대통령 "구체적으로 말하기 어려워"... 모든 의혹 부인

[김경년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7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실에서 열린 '대국민담화 및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
ⓒ 연합뉴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였다.

7일 오전 10시부터 진행된 윤석열 대통령의 대국민담화 및 기자회견. 이번 행사는 시기나 내용, 형식 모두 초미의 관심을 끄는 자리였다.

명태균씨 녹취록 논란과 그에 따른 김건희 여사 공천개입 의혹 등으로 코너에 몰린 정국을 반전 혹은 만회할 수 '마지막 기회'라는 수식어가 붙었고, 그에 따라 윤 대통령의 입에서 어떤 사과 발언과 쇄신 방안이 나올지 주목됐다.

대통령실은 '국민들이 궁금해하는 모든 사안에 대해 소상히 밝히는' 자리가 될 것이라며 회견 시간과 주제에 제한이 없는 '끝장 토론'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재질문'이 가능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그러나 기자단과 사전에 협의한 결과라지만 기자 1인당 2개 이내의 질문으로 제한됐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재질문은 불가능했다. 전체 시간도 대국민담화를 포함해 이전과 비슷한 2시간 20분 정도에 마쳐야 했다. 결국 대통령실이 사전에 약속한 '끝장 토론'은 빈말이 돼버렸다.

고개 숙인 대통령... "사과 이유는 구체적으로 말하기 어려워"
▲ 대국민 사과하는 윤석열 대통령 윤석열 대통령이 7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실에서 '대국민담화 및 기자회견'에 앞서 국민들에게 사과하며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형식을 떠나 역시 중요한 건 대통령의 입, 즉 회견의 내용이었다. 상처받은 민심을 어루만지는 적절한 사과와 획기적인 국정 쇄신 방안이 나올지 주목됐다.

'쌀쌀해진 날씨' 걱정으로 시작해 '365일 24시간 노심초사하면서 국민의 삶을 챙기는 것이 대통령의 어깨에 놓은 책무'라고 말한 윤 대통령은, 대국민담화를 시작한 지 3분쯤 지나자 "저의 노력과는 별개로 국민께 걱정을 끼쳐드린 일들이 많았다고 생각한다"고 운을 뗐다.

이어 "민생을 위해,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시작한 일들이 국민 여러분께 불편을 드리기도 했고, 제 주변의 일로 국민께 염려를 드리기도 했다"며 "대통령은 변명하는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윤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저의 불찰이고, 부덕의 소치이고 국민 여러분께 죄송하다는 말씀, 진심 어린 사과의 말씀을 드리고 진행하겠다"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 오른쪽으로 비켜나 허리를 90도로 굽혀 인사했다.

평소 사과에 인색한 윤 대통령의 성격상, 혹시나 '대국민 사과' 없이 '대국민 자화자찬'으로 끝나는게 아니냐는 우려는 덜 수 있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대통령의 사과에는 무엇을 잘못했고, 왜 사과하는지 내용이 빠져있었다.

윤 대통령은 사과를 결심하게 된 배경과 이유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임기 2년 반을 돌아보고 앞으로 시작하는 가운데 국민들에게 감사의 말씀과 사과 말씀을 드려야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다소 엉뚱한 답을 내놨다. 국민들은 임기 중반도 안돼 나타난 국정 난맥상과 김건희 여사 문제에 대한 사과를 요구했는데, 대통령은 "국민들을 존중하고 존경하기 위해" 사과했다는 것이다.

결국 기자들은 후반부 보충 질문에서 사과를 하는 이유에 대해 재차 질문해야 했다. 한 기자가 "사과할 때 꼭 갖춰야 할 요건 중 가장 중요한 게 어떤 부분에 대해서 사과할지 명확히 하고 구체화하는 것"이라며 "(그게 명확하지 않으면) 마치 사과를 하지 않아도 될 만한 일인데 바깥에서 시끄러우니까 사과하는 거 아닌가 오해를 할 수도 있다"며 구체적인 답변을 요구하자, 윤 대통령은 "만약에 어떤 점에서 딱 집어서 한다면 그 부분에 대해서 제가 사과를 드리죠. 그리고 아닌 것은 또 아니라고 얘기를 하고. 그러나 사실은 잘못 알려진 것도 굉장히 많다"며 마치 마음에 없지만 억지로 했다는 뉘앙스의 답변을 했다.

다른 기자가 이어 "인정하실 수 있는 부분, 사과를 할 수 있다는 부분이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말해달라"라고 재차 묻자 "구체적으로 말하기가 좀 어렵지 않냐"며 "국민들께 이런 것으로 걱정 끼쳐드린 것은 저와 제 아내의 처신과 모든 것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안 생기도록 더 조심하겠다는 말씀"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실도 아닌 것을 가지고 '제가 거기 개입해서 명태균씨에게 알려줘서 죄송합니다' 그런 사과를 기대하신다면 그것은 사실과 다른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인정할 수도 없고, 그것은 모략"이라고 단호히 선을 그었다.
▲ 답변하는 윤석열 대통령 윤석열 대통령이 7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실에서 '대국민담화 및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 답변하는 윤석열 대통령 윤석열 대통령이 7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실에서 '대국민담화 및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거짓해명, 언론에 길게 이야기 할 수 없어서..."

당당하게 항변하는 모습은 다른 질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명태균씨와의 통화에 대해서는 "'요만큼'이라도 도움을 주려 노력한 사람에 대해서 매정하게 한 게 섭섭했겠다 싶어서 전화를 받아줬다고 제가 분명히 참모진에게 이야기했는데 언론에 이야기할 땐 이것은 이렇고 저것은 저렇고, 길게 이야기할 수 없어서 기본적인 말만 한 것 같다"며 '거짓 해명'이 나온 배경을 설명하고 "명태균씨와 관련해서 부적절한 일을 한 것도 없고 감출 것도 없다"고 강조했다.

여론조작 의혹에 대해서는 "제가 여론조사를 조작할 이유도 없고, 여론조사가 잘 나왔기 때문에 그것을 조작할 이유도 없고, 또 잘 안 나오더라도 조작한다는 것은 인생을 살면서 그런 짓을 해 본 적이 없다"고 적극 해명했다.

공천 개입에 대해서도 "대개 재·보궐에 나갈 사람들은 거의 정해져 있다"며 "당에서 진행하는 공천을 가지고 제가 왈가왈부할 수도 없고 인수위에서 진행되는 것을 꾸준히 보고받아야 하고 저 나름대로 그야말로 고3 입시생 이상으로 바빴던 사람(이어서 할 시간이 없었다)"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이어 "대통령 부인이 대통령을 도와서 선거도 잘 치르고 국정도 남들한테 욕 안 얻어먹고 원만하게 잘하기를 바라는 일들을 국정농단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국어사전을 다시 정의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억울해했다. 그러면서 "제가 검찰총장 할 때부터 일단 저를 타깃으로 하는 것이지만 저희 집사람도 침소봉대는 기본이고 없는 것까지 만들어서 그야말로 저를 타깃으로 해서 제 처를 많이 악마화시킨 것은 있다"고 덧붙였다.

김 여사의 대외 활동에 대해서는, "국민들이 다 보는 것이기 때문에 국민들이 좋아하면 하고 국민들이 싫다고 하면 안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도 "그래서 지금의 여론을 충분히 감안하고 또 그렇게 해서 어떤 외교 관례상, 또 어떤 국익 활동상 반드시 해야 한다고 저와 제 참모가 판단하는 일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중단해 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앞으로도 이런 기조를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당장 이달 중순으로 예정된 남미순방 동행 여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대통령실 인사 쇄신과 관련해서는 "'김건희 라인'이라는 말은 굉장히 부정적인 소리로 들린다"며 "대통령의 부인이, 대통령이 국민의 뜻을 잘 받들어서 정치를 잘할 수 있게, 대통령에 대해 아내로서 한 조언 같은 것들을 마치 국정농단화 시키는 것은 정말 우리 정치문화상이나 문화적으로도 맞지 않는 거라 본다"며 별거 아닌 투로 말했다.

국회 개원식과 시정연설에 불참한 데 대해서는, 피켓 시위와 막말·야유 등을 예로 들며 "난장판이 되는 모습에 대통령이 (국회에) 가는 걸 국민한테 보여주는 게 국회에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다"며 "그런 면에서 국회도 생각한 것"이라고 되받아쳤다.
▲ 윤석열 대통령 대국민담화 및 기자회견 윤석열 대통령 대국민담화 및 기자회견이 열린 7일 오전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텔레비전을 통해 중계방송을 보고 있다.
ⓒ 이정민
모든 의혹 부인 일관한 대통령, '마지막 기회' 놓친 건 아닐까

이날 기자들은 '끝장 토론' 여부와 관계없이 명태균 게이트나 김건희 여사와 관련된 현안을 거의 다 짚었다는 평가다.

그러나 제기된 의혹에 대해 예의 '달변'을 동원해 모두 부인하고 비켜 나가는 대통령의 허를 찌르는 데는 힘이 달렸다. 답변의 문제점을 인식하고도 바로 재질문할 수 없는 회견 방식에서 기인한 점도 크다.

이날 회견이 끝나고 자리를 뜨던 한 기자는 "오늘 새로 알게 된 것은 대통령의 부인이 대통령 핸드폰을 새벽 5시까지 만진다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결국 기자들도 묻고 싶은 건 다 물었지만, 대통령도 자신과 영부인의 입장을 충분히 해명하는 자리로 십분 활용한 회견으로 보인다. 그러나, 왜 했는지 모르는 대국민 사과와 막무가내 부인만 하는 기자회견으로 떠나가는 국민의 마음을 돌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영영 놓친 것은 아닐까.

회견 전인 4∼6일 진행한 것이지만 전국지표조사(NBS)에 따르면, 윤 대통령이 국정 운영을 잘하고 있다고 답한 응답자는 또다시 19%였다. 이는 2주 전과 비교해 3%포인트나 떨어진 수치로, 같은 조사 기준으로 국정 지지율이 20% 아래로 내려앉은 것은 취임 후 처음이다.

덧붙이는 글 |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 4일부터 6일까지 사흘 동안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2명을 대상. 통신 3사가 제공하는 휴대전화 가상번호(100%)를 이용한 전화 면접 방식. 응답률은 17.3%,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 3.1%포인트.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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