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희의 말, 그거 아세요?
흔한 이름을 가진 동명이인 '오마이뉴스 기자 박정훈'과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 박정훈', 두 사람이 편지를 주고받으며 각자도생의 사회에서 연대를 모색해 나갑니다. <편집자말>
[박정훈 기자]
그거 아세요 / 귤에 붙어 있는 하얀 거 이름은 귤락입니다 / 찰떡아이스는 세 알이었고 하와이안 피자는 캐나다에서 만들었죠 / 제가 또 계란을 기가 맥히게 삶습니다 / 우리 아빠 안경 썼어요 / 오늘 아침 쑥 캐고 옴
정훈님, 혹시 이 노래를 들어보셨나요? 이렇게나 독특한 가사를 가진 곡은 유튜버이자 작곡가인 과나가 만든 <그거 아세요>입니다. 나온 지 4년이 넘었지만 얼마 전 에스파의 카리나씨가 KBS Kpop 채널 '리무진서비스'에 나와 이무진씨와 듀엣으로 부르면서 화제가 됐습니다. 두 사람이 웃긴 가사에 화음까지 넣어 애절하게 부르더군요.
▲ 지난 10월 29일에 KBSKpop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리무진서비스' 프로그램 중 한 장면 |
ⓒ KBSKpop 유튜브 |
<그거 아세요>를 끝까지 다 들으면 조금 뭉클하기도 합니다. 실제 댓글 반응도 따뜻하고 귀엽다는 말이 상당히 많습니다. 사소하고 평범한 말과 일상이 노래가 된다는 점, 나아가 사람들이 남긴 댓글 중에 가족이나 사물에 대한 '사랑'을 표현한 것이 많아 온전히 가사에 실렸다는 점도요.
이 노래에서 '그거 아세요'는 무언가를 아느냐고 묻는 게 아니라 시시콜콜한 정보, 평소에 말하지 못한 진심 등을 전하기 전 넌지시 하는 말에 가깝죠. 지식이나 정보를 뽐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흥미로운 이야기를 갖고 온 친구가 "너 그거 알아"라고 말을 걸면 기대감이 생기죠. <그거 아세요>라는 곡이 정겨운 이유입니다.
▲ 네이버 모바일 메인 화면 |
ⓒ 네이버 |
그런데 정훈님, 그거 아세요? 과나의 <그거 아세요> 가사 속에 담긴 정보와 메시지는 재미있고 정겹기라도 하지, 요즘 온라인에서 주목받는 기사들은 공해에 가깝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지난주 포털 뉴스에서 본 대표적인 이슈는 명태균 게이트, SBS 플러스 예능 <나는 솔로>와 넷플릭스 예능 <흑백요리사> 출연자 논란이었습니다. 전자는 의미가 있더라도, 후자는 이렇게까지 기사가 많이 나오고 화제가 될 일인지 의문이었습니다.
<기자협회보>가 2021년 네이버에서 가장 많이 읽힌 뉴스 1~50위를 조사해 봤더니 "페이지뷰 상위권 대다수는 연예인이나 셀럽 관련 논란, 온라인 커뮤니티 발 기사"였다고 합니다. 독자들이 좋아한다는 이유로 언론사는 연성·저질화된 기사를 쏟아내고, 독자들은 이런 기사에 길들어 정작 알고 싶어했던, 알아야만 했던 정보를 놓치는 상황인 거죠.
<기자협회보>는 "깊이 있는 기획·탐사보도가 올라와도, 포털 이용자에 외면받기 일쑤"라고 지적합니다. 그러면서 "(언론사 입장에서) 생산이 쉽지 않은 '좋은 뉴스'는 안 읽히는 반면 수월히 내놓을 수 있는 '안 좋은 뉴스'가 많이 읽히고 수익 또한 담보된다고 할 때 합리적인 선택지는 분명하다"라고 현 상황을 설명합니다.
네이버에서 많이 읽힌 기사의 제목을 토대로 <그거 아세요>를 만들어보면 어떨까요. 위 기사에 나온 2021년 기준으로는 아래와 같습니다. 기괴하고 참담합니다.
"그거 아세요? 대구 상간녀 결혼식 습격 사건 / 레깅스만 입고 자주 외출하는 딸이 걱정돼요. 그거 아세요? 자고 일어났더니 얼굴이 괴물로 20대女 끔찍한 경고 / 처제와 결혼해서 아이가 생겼습니다."
반면 꼭 독자들에게 가닿아야 할 내용의 기사는 많이 나오지 않습니다. 김언경 뭉클 미디어 인권연구소장이 지난 2일 <열린라디오 YTN>에서 말한 내용 중 유독 가슴 아픈 부분이 있었습니다. 김 소장이 2024년 1월 9일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 통과되고 30일에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때까지 6대 종합일간지의 언론 보도 모니터링을 했다고 합니다. 그 결과 이태원 참사 관련 기사는 <경향신문> 45건, <한국일보> 19건, <한겨레> 17건, <중앙일보> 14건, <동아일보> 12건, <조선일보> 6건에 불과했습니다.
김 소장이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에게 직접 '언론에 서운한 것'을 물어보니 "언론들이 보도를 해주지 않은 것, 무관심한 것"이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 참사에 대한 국가의 대응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또 당시 정치적 국면하고도 연결되어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유독 보도량이 적었다고밖에 볼 수 없습니다. 참고로 <조선일보>의 경우 같은 기간에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의 근황을 소개하는 기사만 6건이었습니다. 그에 대한 특별한 이슈가 없었음에도 말입니다.
▲ 6일 오전 부산 남구 주택도시보증(HUG) 본사 건물 앞에서 '부산 전세 사기 피해자 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HUG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들은 HUG가 현재 피해자들을 상대로 진행 중인 소송을 취하하고 전세 사기 피해자와 국민에게 사과부터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 연합뉴스 |
기자들은 이슈를 발굴하고 이끌어나가기 보다는 이슈를 좇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또한 애써 의제화시킨 이슈조차도 지속시키는 힘이 부족합니다. '뉴스(News)'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기자들은 당장 화제가 되는 사건·사고를 전달하는 게 우선으로 여겨지니까요. '○○이 ○○을 덮었다'는 음모론이 여전히 나오는 이유일 테고요.
특히나 약자·소수자들의 이야기는 잠깐 화제가 되더라도, 뉴스 면에서 금방 사라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대형 시위가 이어지고 국회에서 논의가 한창 이어질 때는 그나마 낫습니다만, 그마저도 하지 않으면 마치 '없는 일'처럼 치부됩니다.
의정갈등 속에서 수개월째 온전히 치료받지 못하는 환자들, 새롭게 발생하는 딥페이크 범죄의 피해자들, 최근에 드러난 또 다른 전세사기 피해까지... 어디 이뿐일까요. 고통받는 이들은 여전히 존재하는데 언론 보도는 예전처럼 이어지지 않습니다. 그나마 이러한 의제들은 정부와 국회의원들이 발 벗고 나서거나, 관련 법이나 대책 등이 만들어진 경우입니다. 이렇다 할 대안도 사회적으로 논의되지 않은 채 묻혀버리는 약자들의 목소리도 많습니다.
그래서 대체로 기자가 부르는 '그거 아세요'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관련된 문제를 담아내는 것에는 실패합니다. 꾸준히 한 주제에 천착하지도 못하고, 자신이 진정 사람들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것이 무엇인지도 잊어버립니다. 결국 천편일률적인, 남들과 똑같은 가사의 노래를 부르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고요.
▲ 2014년 4월 25일 당시 전남 진도 팽목항에서 'JTBC 뉴스9' 손석희 앵커가 생방송으로 뉴스를 진행하고 있는 모습. |
ⓒ 이희훈 |
손석희 전 JTBC 사장이 2015년 중앙일보 미디어컨퍼런스에서 한 말입니다. 사소한 팩트나 유력 정치인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중요시하면서 이슈를 좇는 게 아니라, 아주 중요한 의제나 정보에 대해서 계속 보도하는 아젠다 키핑, 즉 '의제 지키기'를 디지털 시대 보도의 핵심적 가치로 꼽은 것입니다. JTBC 뉴스룸이 세월호 보도를 200일간 이어간 것도 이와 같은 '의제 지키기'에 속하는 일일 겁니다.
우리 사회에 지금 꼭 필요한 뉴스가 무엇인지, 나아가 어떤 가치를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은지에 대한 고민이 없다면 '의제 지키기'는 불가능합니다. 때문에 '의제 지키기'는 결국 한 기자의, 한 언론사의 믿음이나 정체성과도 연결됩니다.
한 이슈의 생명력이 대부분 한 주를 못 버티는, '이슈 쏠림'이 극심한 세상입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의제일지라도, 계속 관심을 갖고 추적하고 관찰하고 분석해서 다시 독자들에게 전하는 것이 저널리즘의 본령일 겁니다.
미국 대선 결과가 전 세계에 미칠 파장, 윤석열 대통령의 기자회견, 명태균 게이트, 그밖에 수많은 저질·연성 기사로 인해서 한동안 세상이 시끄러울 듯합니다. 그러나 적어도 기자들은 '권력'이나 '가십'에 집중된 보도 속에서,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위협하는 일들이 잊히고 지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해선 안 될 것입니다.
박영흠 성신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한겨레21> 칼럼 '언론의 지나친 쏠림, 빠른 망각의 악순환 끊어야'에서 "뉴스 이용자는 오늘 뉴스에 어제와 다른 단편적 사실 하나가 추가됐는지엔 관심이 없다. 중요한 이슈를 친절한 설명과 새로운 접근을 통해 전달함으로써 '실제 나에게 도움을 줬는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라며 '의제 지키기'의 필요성을 강조합니다.
정훈님, 저는 박 교수의 말을 기자들이 명심했으면 좋겠습니다. 기자들이 허공에 기사를 쓰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에게 '그거 아세요'라며 말을 걸듯 기사를 썼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저부터 그래야겠지만요. 끝나지 않는 고통이 있다면, 끝나지 않는 억울함이 있다면, 그것을 전하는 보도도 끝나지 않아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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