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숄츠 인내심 고갈됐다" 獨재무장관 경질에 '신호등 연정' 붕괴

조슬기나 2024. 11. 7.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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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안 등 경제정책 두고 연정 내 갈등 이어져
내년 1월 신임투표 실시...3월 조기총선 관측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경제정책에 반발해 온 재무부 장관을 전격 경질하면서 이른바 '신호등' 연립정부(사회민주당·자유민주당·녹색당)도 무너졌다. 독일 내에서 정치적 혼란이 급격히 확산하는 가운데 숄츠 총리는 내년 1월 자신에 대한 신임투표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 EPA연합뉴스

도이체빌레 등에 따르면 숄츠 총리는 6일(현지시간) 저녁 생중계된 기자회견에서 자유민주당(FDP) 대표인 크리스티안 린드너 재무장관의 해임을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에게 요청했다고 발표했다. 그는 2025년 예산안과 관련한 종합 계획, 새 타협안을 제시했으나 린드너 장관이 거부했다면서 "재무장관은 우리나라의 이익을 위해 제안을 시행할 의지가 전혀 없다. 우리나라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해야 했다"고 경질 이유를 설명했다.

독일 연방정부 각료 해임은 공식적으로는 총리가 대통령에게 요청하고 승인받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도이체빌레는 "폭탄선언 발표"라며 "지루하고 기술관료적이라는 평가를 받아온 숄츠의 인내심이 고갈됐다"고 보도했다. 린드너 장관의 경질은 즉각 볼커 비싱 교통부 장관 등 다른 FDP 소속 각료들의 사임으로 이어졌다.

내년도 예산안은 그간 연립정부 내 세 정당 간 분열 원인 중 하나로 꼽혀왔다. 연립정부의 경제정책에 반기를 들어온 친기업 성향의 린드너 장관은 내년도 예산안을 근본적으로 재편해야 한다면서 지난주 사회복지 예산 삭감, 기후보호 조치 축소, 기업에 대한 세금 인하, 고소득층 감세 등이 담긴 18페이지 분량의 요구안을 공개했다. 이는 사실상의 '최후통첩'으로 해석됐다. 이에 숄츠 총리는 신호등 연정에서 합의된 정책 기조에 맞지 않다며 새 타협안을 제시했으나 결국 격차를 좁히지 못한 셈이다. 숄츠 총리는 현재 연립정부의 예산안에는 기업의 에너지 비용부담을 낮추고, 자동차 산업 일자리를 살리고, 투자를 단행하는 기업에 세금 인센티브를 늘리는 내용이 담겼다고도 강조했다.

특히 숄츠 총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린드너 장관에 대해 "무책임하게 행동하고 있다", "자신의 지지자와 당의 생존에만 관심을 뒀다",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의 이기주의"라며 맹비난을 쏟아냈다. 도이체빌레는 "숄츠 총리의 목소리가 약간 떨렸다"면서 "연설이 너무나 자세해서 오늘에서야 총리가 이 모든 내용을 종합했다는 것을 상상하기 어려웠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일간 가디언 역시 "베를린의 불화, 원한은 가라앉을 조짐을 보이지 않았다"며 "인기 없는 3당 연립정부는 종식됐다"고 보도했다.

자유민주당 소속인 크리스티안 린드너 독일 재무부 장관은 6일(현지시간) 베를린에서 올라프 숄츠 총리가 자신을 해임하겠다고 발표한 직후 관련 입장을 밝히고 있다. · AP연합뉴스

이에 따라 숄츠 총리는 신호등 연정에서 남은 사회민주당, 녹색당을 중심으로 몇주간 소수 정부를 이끌게 된다. 이후 내년 1월15일 연방의회에 자신에 대한 신임 투표를 부치겠다는 계획이다. 현지 언론들은 신임 투표에서 숄츠 총리가 불신임될 가능성이 크다면서 이는 의회 조기 해산, 3월 조기총선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도했다. 당초 예정된 총선일은 내년 9월이다.

숄츠 총리는 야당에 힘을 합쳐줄 것도 촉구했다. 그는 당장 제1야당인 기독민주당(CDU) 프리드리히 메르츠 대표와 조속히 대화를 모색, 방위력 강화, 경제 강화라는 두 시급한 과제에 대한 협력을 구축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우리 경제는 새 총선이 치러질 때까지 기다릴 수 없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마무리된 미국 대선을 언급하면서 "최근 몇주간 미국을 지켜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나라가 깊게 분열돼있음을 확인했을 것"이라며 이런 일이 독일에서는 일어나선 안된다고 했다. 직후 숄츠 총리는 질문도 받지 않은채 자리를 떠났다. 도이체빌레는 "가장 인상적인 연설 후 아무 질문도 받지 않았다"며 "최근 몇주간 숄츠 총리가 얼마나 큰 좌절감을 느꼈는지는 분명하다"고 평가했다. 이 매체는 남은 연립정부 구성원들은 물론, 야당이 그의 계획을 지지할지는 불확실하다고도 덧붙였다.

Ifo연구소의 클레멘스 푸에스트 이코노미스트는 일간 가디언에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라며 "가능한 한 빨리 행동할 수 있는 새 정부가 필요하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진단했다.

린드너 장관은 이날 숄츠 총리의 기자회견 직후 "(숄츠 총리는) 우리나라에 새로운 경제적 각성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오랫동안 인식하지 못했다"며 "국민들의 경제 우려를 하찮게 여겼다"고 비난했다. 그는 "우리는 이 나라에 대한 책임을 질 준비가 돼있다"며 "내년에 다른 정부에서 같은 일을 하기 위해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재정정책을 이끌어 온 린드너 장관은 앞서 숄츠 총리가 경기부양 논의를 위해 재계 관계자들을 소집하자, 같은 날 별도의 재계 간담회를 개최하는 등 노골적으로 숄츠 총리와 충돌을 빚어왔었다. 연정 경제정책 책임자인 로베르트 하베크 경제·기후보호장관(녹색당)과도 친환경 보조금 등을 두고 마찰이 잇따랐다.

조슬기나 기자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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